장재형목사가 설립한 올리벳대학교(Olivet University, 이하 OU)는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 위치한 본교 캠퍼스의 확장 및 개발 계획에 관한 렌더링을 공개하였습니다.
OU는 2017년부터 약 900에이커(약 110만 1,800평) 규모의 캠퍼스 개발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는 급증하는 학생 수와 전 세계적인 등록의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스터플램팀은 학생, 교수진, 교직원, 동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OU 리버사이드의 미래 캠퍼스에 대한 다양한 제안과 시각적인 구상화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개발에는 학생 숙소, 식당, 강의동, 레크리에이션 공간 확장 및 새로운 예배당 건축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OU의 담당자는 “캠퍼스 생활을 개선하고, 전교생들을 수용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최우선 과제”라며 “자연친화적인 캠퍼스 환경을 유지하면서 증가하는 요구 사항에 맞도록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새로운 예배당은 예배 및 졸업식과 같은 행사를 개최하기에 이상적이며, 야외 원형극장은 다양한 야외 행사와 활동을 위한 다양한 옵션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개발 프로젝트는 아름다운 계곡과 언덕으로 둘러싸인 환경에 맞춰진 것으로, 중요한 서식지를 보존하면서도 개방된 공원으로서의 기능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정문의 새로운 입구는 남동부 및 동부 캠퍼스 경계를 변화시켜 주변 대도시인 팜스프링스, 테메큘라, 샌디에이고, 헤멧, 로스앤젤레스 등과의 더욱 편리한 접근을 제공할 것입니다.
올리벳대학교는 장재형목사가 2000년에 설립한 종합대학교로, 2009년에는 미국 연방정부 인증기관인 기독교고등교육협회(ABHE)의 정회원으로 승격되었습니다. 매년 크리스천유니버시티온라인에서 교육과 재정 분야를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는 등, 온라인 교육에 강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랄프 윈터 도서관(Ralph D. Winter Library)은 미션퍼스펙티브의 저자인 랄프 윈터 박사를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으며, 학문과 신앙을 결합하여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종종 스스로를 피고석에 앉히고 끊임없이 정죄하는 은밀한 법정이 되곤 합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심판』 속 주인공처럼, 현대인들은 무엇 때문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불안의 공기 속에서 숨이 막힌 채 살아갑니다. “내가 과연 온전한 자격이 있는가?”, “나의 은밀한 허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귓가를 맴돌며 영혼을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양심과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고발의 목소리는 매우 집요하고 강력해서, 우리의 힘으로는 그 결박을 스스로 풀기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미국 올리벳대학교 설립자)가 전하는 로마서 8장 31~34절의 강해는, 이처럼 차갑고 절망적인 인간 내면의 재판정 한복판에 완전히 새로운 반전의 음성을 선포합니다. 기독교의 본질인 복음은 인간이 스스로를 치열하게 변호하여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내는 처절한 투쟁의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완벽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선언해 주신 “너는 의롭다”라는 거룩한 판결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이 위대한 말씀의 중심에는 우리가 가진 어떠한 연약함과 죄책감도 능히 뛰어넘는 확실한 구원의 보증이 있으며, 세상의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구원의 확정성과 성도의 견인
사도 바울은 로마서 본문을 통해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라며 장엄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일’이란 결코 단편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획하신 미리 아심과 예정, 그리고 시공간 속에서 우리를 찾아오신 부르심, 십자가의 피로 씻어주신 의롭다 하심을 거쳐 마침내 도달하게 될 영화롭게 하심에 이르는 거대하고 완전한 구원의 전 과정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유한한 시간 속에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 여전히 쓰러지고 낙심하며 영적인 실패를 반복하는 부끄러운 모습만 가득해 보입니다. 구원의 최종 완성이라는 고지는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영원의 관점을 가지신 하나님의 시야 안에서 이 구원의 여정은 흔들리는 불확실한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성취된 명확한 약속입니다. 바울이 미래에 일어날 영광스러운 변화를 두고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는 과거형 표현을 사용한 것은 매우 깊은 신학적 위로를 줍니다. 비록 성도가 오늘을 살아갈 때는 자신의 불완전함 때문에 절망할지라도, 하나님 편에서는 그 구원을 이미 확정된 현실로 바라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이란 내 감정이나 상태가 괜찮다는 주관적인 낙관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상태와 상관없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시작하신 선한 일을 그분의 열심으로 반드시 끝마치실 것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신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선언은 우리의 삶에서 고난과 시험, 내면의 어두운 폭풍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현실의 대적과 위협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우주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이미 내리신 무죄 판결을 그 어떤 대적도 감히 뒤집을 수 없다는 영적 승리의 선포입니다. 성도가 누리는 소망은 감정이 맑고 은혜가 충만한 날에만 일시적으로 작동하는 신기루가 아닙니다. 영혼의 밤이 찾아오고 감정이 지독하게 흐려진 날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법적 판결, 즉 복음의 단단한 기초 위에 세워진 영원한 바위와 같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은혜의 연속성을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라는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적 통찰로 심도 있게 풀어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택하고 부르신 자녀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부들어 이끄신다는 이 진리는, 인간의 도덕적 책임이나 거룩한 삶을 향한 노력을 가볍게 만드는 방종의 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도저히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는 영적 무력감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하셨던 첫사랑을 기억하며 다시금 무릎을 일으켜 세우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주님을 향해 품는 인간적인 결심보다 언제나 먼저 존재하며, 낙심하여 우리의 손귀가 허무하게 풀려버리는 극단의 순간에도 우리를 꽉 쥐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3. 영혼을 가두는 자책의 감옥을 부수는 참된 회개와 순종
그리스도인의 신앙 여정에서 가장 치명적인 대적은 사탄의 외부적인 박해나 환경의 어려움보다, 영혼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드는 스스로를 향한 저주와 자책의 목소리일 때가 많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죄를 들춰내며 고발합니다. 이로 인해 생겨나는 영적 침륜은 겉보기에는 매우 진지하고 경건한 자기 성찰처럼 위장되기도 하지만,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과 십자가의 능력을 내 판단보다 작게 만드는 교묘한 불신앙의 덫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내면의 법정을 허물고 사도 바울이 선포한 진리의 질문을 붙잡으라고 도전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우리를 의롭다고 최종 선언하신 분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시라면, 세상 그 어떤 인간의 비난이나 사탄의 고발도 우리에게 영원한 형벌을 내리는 마지막 판결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도덕적 해이의 언어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회개는 단순히 자신의 허물을 숨기거나 스스로를 가혹하게 벌하는 형벌적 행위가 아닙니다. 진짜 회개는 나의 흉악한 죄악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넓으신 하나님의 자비의 품 안으로 겸손히 도망치는 영적 돌이킴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율법주의적 자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앞에서 사탄이 주는 거짓 정죄의 무거운 짐을 과감히 내려놓고 나를 용서하신 은혜를 기쁘게 수용하는 믿음의 순종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믿음이란 스쳐 지나가는 감정의 고양이 아니라, 진리 위에 서는 가장 견고하고 단단한 영적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평안이 밀려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겨우 믿는 수준을 넘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성경을 통해 먼저 확고하게 선언되었기에 내 요동치는 감정과 불완전한 생각을 그 말씀의 권위 아래 굴복시키는 것이 진짜 믿음의 실력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조건 없이 택하시고 은혜로 부르셨다는 신실한 사실만이 우리 신앙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내 결단과 행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시는 주권적 은혜가 구원의 유일한 근거가 될 때 비로소 자기 정죄의 어두운 그림자는 우리 영혼의 왕좌에서 영원히 쫓겨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8장에 등장하는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의 서사는 이러한 복음의 찬란한 빛을 가장 극적으로 시각화하여 보여줍니다. 당시 종교 기득권자들은 정죄의 돌멩이를 높이 들고 숨이 막힐 듯한 심판의 대형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전혀 없으신 유일한 심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으로 인간의 위선적인 법정을 단번에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리고 고소자들이 모두 떠나간 적막한 자리에서 여인을 향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거룩한 분께서 정죄하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셨다면, 허물투성이인 죄인이 다른 죄인을 향해,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해 치켜들었던 정죄의 돌멩이는 얼마나 쉽게 내려놓아야 마땅하겠습니까. 이 압도적인 은혜의 말씀 앞에서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자신을 난도질하던 자책의 돌을 버릴 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타인을 향해 겨누고 있던 날 선 비판과 정죄의 돌마저도 부끄러움 속에 조용히 내려놓게 됩니다.
4. 부활하신 대제사장의 현재적 중보와 공동체의 회복
로마서 8장 34절에 이르러 바울의 논증은 성도의 구원과 확신을 우주의 심장부이자 하나님의 보좌 우편이라는 가장 영광스럽고 확고한 자리로 이끌어 올립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실 뿐만 아니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신다는 성경의 증언은 우리의 구원이 과거 골고다 언덕에서 끝난 단회적 사건에 머물지 않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완벽하게 청산한 법적 지불의 장소였고 부활이 죽음의 권세가 완전히 패배했음을 알리는 우주적 선포였다면, 지금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의 존재는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현재적 통치와 중보를 의미합니다.
이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는 우리의 영성이 충만하고 기도가 유창하게 잘 터지는 날에만 필요한 보조적인 위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낙심이 깊어 기도의 언어가 완전히 막혀버리고, 마음의 중심이 산산조각 나며, 차마 고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추호의 자격조차 없다고 느끼는 영적 파산의 순간에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소망의 핵심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언어가 빈약해지고 영적으로 완전히 고갈될 때에도 결코 영원한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앞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당당히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끊이지 않는 눈물의 탄원과 간구가 지금도 우리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의 은혜로운 고찰은 이 위대한 중보의 사역을 재판정의 역동적인 이미지로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우리는 사탄의 날카로운 기소 앞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변호해야 할지 몰라 절망하는 미련하고 무력한 피고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완전하고 흠 없는 완벽한 변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엄격한 율법의 잣대로 보면 여전히 드러날 죄와 허물이 산더미 같지만, 우리의 공의로우신 변호인은 “내가 이미 십자가에서 나의 피로 저 사람의 모든 죄 값을 완벽하게 지불했습니다”라며 자신의 상처 난 손과 발을 아버지께 내보이십니다. 그렇기에 “누가 감히 정죄하리요”라는 바울의 위대한 선언은 공허한 수사학적 외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 법정에서 울려 퍼지는 그리스도의 완벽한 중보 사역 위에 든든히 세워진 성도의 가장 담대한 승전가입니다.
더 나아가 이 구원의 확신은 나 개인의 내면적 평안과 안락함이라는 울타리 안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엄위하신 법정에서 정죄의 사슬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자유인은, 더 이상 타인을 정죄하거나 깎아내리는 유치한 방식을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용납받은 은혜의 깊이와 사랑의 넓이가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절실히 깨달은 사람은, 자신이 속한 교회와 가정,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정죄의 칼날을 거두고 치유와 용서, 그리고 회복의 따뜻한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기독교 신앙의 화려한 장식품이 아니라, 정죄 없음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고 조용하게 맺히는 가장 확실한 복음의 열매입니다.
5. 흔들림 속에 피어나는 참된 샬롬과 복음의 실천적 능력
기독교가 말하는 성도의 견인은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아무런 유혹도 받지 않고 영적으로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철인(鐵人)이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성도의 견인이 가진 참된 신비는, 우리가 삶의 수많은 파도 속에서 수없이 흔들리고 가치관이 뒤틀리는 비참함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신자는 여전히 부끄럽게 넘어질 수 있고, 영적인 침체에 빠져 기도가 막힐 수 있으며,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추악하고 어두운 결들을 보며 몸서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영적 행위는 우리를 절망적인 자기 판단의 어두운 감옥으로 밀어 넣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가득한 판결문 앞으로 우리를 다시 안전하게 인도합니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는 이 한 구절의 말씀은, 인간 영혼의 최종 언어가 세상의 비난이나 사탄의 정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뿐임을 영원토록 인쳐 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약속하는 하늘의 ‘샬롬(평강)’은 삶의 모든 폭풍우와 고난의 환경이 기적처럼 소멸하여 찾아오는 일시적인 평온함이 아닙니다. 비록 사방이 우겨쌈을 당하는 환난의 연속일지라도,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온전히 내 편이 되어 주신다”라는 복음의 위대한 진리가 영혼 깊은 곳에 굳게 뿌리내릴 때 찾아오는 신성한 안식입니다. 이 영적 안식은 우리가 마주한 거친 현실을 도피하거나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이 주는 두려움과 협박에 영혼의 최종 왕좌를 결코 내어주지 않는 담대함을 선사합니다. 자기의 가장 소중한 아들마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향한 구원의 계획을 절대 철회하지 않으신다는 확고한 확신이 있기에, 성도는 오늘이라는 흔들리는 하루 속에서도 다시금 믿음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깊이 있는 로마서 강해 설교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믿음에 남기는 영적 유익은 실로 거대하고 분명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결코 도덕적 자만심이나 영적 우월감에 도취하게 만드는 독약이 아니라, 평생을 겸손한 감사와 찬양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마르지 않는 샘 근원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행하는 회개 또한 우리를 만성적인 절망의 습관으로 몰고 가는 굴레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를 반기시는 풍성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걸어 들어가게 만드는 축복의 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라는 복음의 정수를 깊이 묵상하고 삶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내면에서 요동치는 정죄와 두려움의 파도를 성숙하게 다스리는 영적 실력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베풀어진 그 엄청난 하나님의 용서를 거울삼아, 연약한 이웃과 공동체의 지체들을 향해 정죄의 손가락질을 멈추고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랑의 손길을 내밀 줄 아는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 변화되어 갑니다. 이처럼 찬란한 복음은 마음의 가장 깊고 은밀한 영적 법정에서 하나님의 판결을 듣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온도를 바꾸고, 인간관계를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키며,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순종의 방식까지 삶의 모든 영역을 송두리째 성화시켜 나갑니다.
더불어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가 겪는 삶의 두려움과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위선적으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두려움의 방향을 바꾸어 거룩한 경외함으로 승화시킵니다. 바울의 위대한 질문들은 성도가 이 땅의 나그네 길을 걸어가며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환난과 핍박, 기근과 적신, 그리고 육체의 가시와 약함들을 억지로 지워버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든 극심한 고통의 파도들을 하나님의 거대하고 태산 같은 사랑의 품 안에 소스라치게 부딪히게 함으로써, 환난조차도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가지는 신앙의 담대함은 자기의 의지나 힘을 과시하려는 종교적 만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철저한 무력함과 약함 속에서도, 이미 만세 전부터 나를 위하셨고 지금도 나를 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만을 온전히 붙드는 가장 겸손하고도 위대한 영적 용기입니다.
말씀의 최종 결론은 지극히 명료하면서도 우주보다 깊은 울림을 가집니다. 우리의 구원은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은혜로 시작하셨고,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귀한 피로 영원히 확증하셨으며, 지금도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과 보좌 우편의 중보 사역을 통해 단단하게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의 묵상은 “나는 왜 이렇게 오늘도 나약하고 쓰러지는가”라는 자책의 굴레에 갇혀 절망하는 율법의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선을 높이 들어 “이토록 허물 많고 연약한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그토록 사랑하시며 불꽃 같은 눈동자로 끝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가!”라는 경이로운 은혜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사탄과 양심이 고발하던 정죄의 날카로운 소음들이 십자가의 보혈 아래 완전히 잠잠해진 바로 그 거룩한 처소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노랫소리를 듣게 됩니다.
오늘도 세상의 거센 풍파 속에서 지쳐 돌아온 우리의 마음속 법정에는 과연 어떠한 목소리가 가장 크게 메아리치고 있습니까? 여전히 우리를 주저앉히려는 사탄의 고발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정죄입니까? 그 모든 소음보다 더 깊고 엄위한 영원의 보좌로부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손을 보시며 이미 우리에게 영원한 무죄로 선포해 주신 복음의 대판결을, 우리는 오늘 이 아침에 다시금 영혼의 귀를 열어 기쁨으로 경청하고 있습니까?
네덜란드의 거장 렘브란트가 1627년에 완성한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The Apostle Paul in Prison)>**이라는 작품을 응시해 봅니다. 이 화폭 속에서 마주하는 바울의 형상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위풍당당한 영적 거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차디찬 돌방바닥 위에 앉아 있는 그는 세월의 풍파에 씻겨 지치고 노쇠한 한 노인에 불과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그 어두운 공간은 인간적인 절망의 끝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여기서 놀라운 반전을 시도합니다. 어둠이 공간을 집어삼킬 듯하지만, 실제 화면의 주인공은 창살 틈으로 스며드는 예리한 한 줄기 빛입니다. 그 빛은 바울의 주름진 얼굴과 그가 혼신을 다해 적어 내려가는 서신서 위를 눈부시게 적십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지점을 주목하며, 육신은 비록 결박당했을지언정 그의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광채를 뿜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신학적으로 고찰합니다. 이는 고난이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장 극적인 배경이 됨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대목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형통함’을 하나님의 유일한 축복으로 오해하고 ‘시련’을 영적 실패의 증거로 치환하곤 합니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렘브란트의 붓끝이 가리키는 바울의 역설을 빌려, 고난은 결코 피해야 할 불행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으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신성한 관문’임을 일깨워 줍니다. 안락함에 길들여진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메시지는 안일함을 깨우는 날카로운 경종인 동시에, 아픔 속에 있는 자들에게는 가장 깊은 영혼의 위로로 다가옵니다.
좁은 길의 숙명: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화려하게 포장된 꽃길이 아닙니다. 장재형 목사는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을 토대로, 세상이 빛이신 그리스도를 거부했듯이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고난을 겪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연적 숙명’임을 역설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 험하고 좁은 길을 먼저 걸어가셨기에, 그 발자취를 쫓는 우리가 가시밭길을 만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영적 이치라는 설명입니다.
우리는 삶에 고통이 찾아오면 흔히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벌을 받는가?”라는 자책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묵상을 통해 발견하는 고난의 진정한 정체는 단순한 징벌이 아닌 ‘거룩한 연단’입니다. 광석이 뜨거운 용광로를 통과해야 불순물이 제거된 정금이 되듯, 성도 역시 세상의 모순과 시련이라는 불꽃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오직 창조주만을 신뢰하는 법을 체득합니다.
이 과정은 뼈를 깎는 아픔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우리 내면의 교만과 탐욕을 태워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가장 강력한 은혜의 수단이 됩니다. 안락하고 평탄한 삶에서는 결코 만질 수 없는 믿음의 깊이가 바로 이 눈물 골짜기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사명으로 승화된 상흔
바울이 감옥의 어둠 속에서 써 내려간 골로새서의 고백은 현대 신앙인들의 심장을 뒤흔듭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로새서 1:24).장재형 목사는 이 구절에 담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신비로운 개념을 깊이 있게 풀어냅니다. 이는 결코 예수님의 대속 사역이 불완전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구원을 성취하셨다면, 이제 그분의 몸 된 지체인 교회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치러야 할 ‘해산의 수고’를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는 부르심입니다. 바울이 감옥 바닥에서도 찬송하며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상처가 무의미한 소모가 아니라 우주적인 구속 역사에 동참하는 영광스러운 사명의 훈장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감내하는 억울함, 이름 없이 섬기며 흘리는 눈물, 진리를 수호하며 당하는 거절은 결코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기초석이 되며,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려내는 생명의 거름이 됩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바울의 생애를 오늘날 우리가 도달해야 할 성숙한 신앙의 표상으로 제시하며, 고난을 불평의 이유가 아닌 사명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영적 도약을 촉구합니다.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현재형으로 누리는 영광의 소망
고난의 긴 터널을 묵묵히 통과하는 성도에게 허락되는 가장 신비로운 선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만세 전부터 감추어져 왔던 ‘천국의 비밀’, 즉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실재적으로 만나는 기쁨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비밀이야말로 우리가 환난의 폭풍우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근거라고 단언합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은 종이 위에 기록된 딱딱한 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붙드시는 실제적인 능력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선언할 수 있었던 배경은 단순히 먼 미래의 막연한 보상을 기대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심령 속에서 소용돌이치며 역사하시는 부활의 주님, 그 ‘영광의 소망’을 현재 시점으로 누리고 있었기에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외부의 압박은 겉사람을 낡아지게 할지 모르나, 내면의 속사람은 그 시련을 양분 삼아 날마다 새로워지며 영광의 무게를 더해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말 못 할 탄식을 들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 신학적 확신은 고난 속에서 철저한 외로움을 느끼는 성도들에게 거대한 위로의 파도가 됩니다. 우리는 결코 버려진 고아가 아니며, 고통의 가장 깊은 곳에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임재해 계십니다.
결국 장재형 목사가 전하는 메시지의 종착지는 ‘부활의 산 소망’입니다. 십자가를 거치지 않은 부활은 없으며, 고난을 통과하지 않은 영광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렘브란트가 묘사한 바울의 감옥에 쏟아지던 그 찬란한 빛처럼, 고난이라는 어둠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거룩한 배경일 뿐입니다.
오늘 당신의 삶이 고난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지금 단순히 고통을 견디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빚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과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했듯, 이 시련 뒤에 예비된 영원한 영광의 무게를 바라보십시오. 그 믿음의 눈이 열리는 순간, 당신의 삶은 고통을 넘어선 위대한 승리의 찬가로 변화될 것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장에서 보여준 고백은 종교적 성취를 뽐내는 자의 자랑이 아니임을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복음의 압도적인 힘에 사로잡힌 자’가 던지는 가치 전복의 선언입니다. 그는 태생적 정통성, 혈통의 자부심, 학문적 권위, 그리고 율법을 향한 완벽한 열심 등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자산들을 나열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는 단 한 마디로 뒤엎습니다. 바울에게 복음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모든 유익을 배설물처럼 여기게 하고 삶의 무게중심을 완전히 옮겨놓은, 존재의 재정의를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관계적 지식과 ‘발견됨’의 신비
바울이 언급한 “고상한 지식”은 머리로 외우는 정보가 아니라 인격을 뒤흔드는 만남의 빛입니다. 배울수록 자기 확신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누구의 소유인지가 더 분명해지는 지식입니다. 바울은 지식을 소유하려 하기보다 그 지식의 주인인 분에게 소유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는 표현은 이러한 복음의 핵심을 관통합니다. 내가 주님을 설득해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예비하신 은혜의 품 안에서 진정한 나를 되찾는 과정입니다. 이 신비로운 교환을 통해 신앙은 ‘비워냄’으로써 ‘참된 가치’에 참여하는 제자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는 ‘복음의 고상함’과 삶의 전환
장재형(장다윗, 올리벳대학교) 목사는 복음의 본질을 “고상함”이라는 가치로 환기하며,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일깨워온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사역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해석과 논의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핵심 축은 바울의 고백과 궤를 같이합니다. 즉,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탁월함이 실제 삶에서 어떠한 결단과 헌신을 이끌어내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의 가르침이 힘을 얻는 지점은 복음을 추상적인 교리에 가두지 않고 삶의 현장으로 끌어내는 감각에 있습니다. 복음이 진리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것이 시간과 재정, 관계의 방향, 그리고 공동체의 질서를 실제로 변화시키게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자기부정이 따르는 일입니다. 바울이 ‘배설물’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복음이 세상의 가치 체계를 완전히 전복시키기 때문입니다. 장재형 목사가 선교와 헌신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복음의 고상함이 단순한 감상을 넘어, 우리가 붙잡고 있던 가치들의 위계를 새롭게 정렬하는 ‘선택의 고상함’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회심의 빛과 이신칭의의 질서
카라바조의 명화 ‘성 바울의 회심’에서 말 위에서 떨어진 사울의 모습은 복음이 인간의 자기 확신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기초를 세우는 장면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바울은 그 빛을 본 후 ‘자기 의’라는 단단한 갑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장재형 목사가 이신칭의(以信稱義)와 은혜를 반복해서 붙드는 이유 역시 교회의 언어가 성과주의나 자격론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의는 인간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 뿌리내려야 할 자리를 바르게 정돈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뿌리가 되고 순종이 열매가 되는 ‘복음의 질서’를 회복할 때, 교회는 비로소 사람을 소모하지 않고 온전히 세우는 공동체가 됩니다.
사람을 세우는 선교와 다음 세대를 향한 비전
바울이 도시마다 공동체를 세우고 일꾼들을 양육했듯, 참된 선교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양육의 구조를 지녀야 합니다. 장재형 목사가 현지 지도자를 제자로 길러내는 방식을 강조해 온 흐름은 이러한 바울의 목회적 선교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복음은 멀리 뻗어 나가는 확장성인 동시에, 한 사람의 영혼에 깊이 뿌리내리는 심장의 운동입니다. 청년 사역과 교육 기관 설립을 향한 그의 열의는 미래 세대를 단순한 인력 충원 대상이 아닌, 복음의 고상함을 전수받아야 할 교회의 현재로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은혜의 탕자적 귀향과 십자가의 고난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감싸 안은 손길은 회개가 인간의 결단보다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장재형 목사가 말하는 복음의 고상함이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귀결될 때, 교회는 정죄의 칼날을 거두고 회복의 언어를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이 은혜는 안락함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바울이 부활의 권능과 함께 고난에의 참여를 소망했듯,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필연적으로 십자가의 현실을 수반합니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 속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고난은 신앙의 실패가 아니라 때로 신앙의 필연적인 경로가 되기도 합니다.
연합과 문화선교: 십자가 아래에서의 항복
교회는 개인의 성취를 과시하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합하는 곳입니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해 온 연합 사역의 핵심은 제도적 통합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공동분모 아래서의 협력에 있습니다. 또한 그는 문화를 복음을 전하는 언어로 보았습니다. 과거에 도로와 인쇄술이 그러했듯, 오늘날에는 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이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전략적 식견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수단이 목적을 삼키지 않도록, 플랫폼이 커질수록 메시지는 더욱 십자가를 향해 단순해져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합니다.
결론: 복음이 우리를 붙든다
영적 성장은 더 많은 일을 해내는 기술의 습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의 리듬을 체득하는 과정입니다. 장재형 목사의 사역에서 나타나는 제자훈련, 신학 교육, 묵상의 강조는 결국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소망의 언어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의지하는 세상의 것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성공과 평판은 변하지만, 복음은 세대를 넘어 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장재형 목사의 언어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내 자존심과 기득권을 내려놓을 용기가 있는가? 고난 속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노래하며 연합을 선택할 성숙함이 있는가?
결국 복음은 나를 꾸미는 장식품이 아니라, 나를 죽이고 다시 살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사건입니다. 그 사건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덜 자랑하고 더 사랑하며, 덜 소유하고 더 나누는 복음의 길을 걷게 됩니다. 교회가 이 탁월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단순해질수록, 세상은 교회를 통해 비치는 진리의 빛을 더 선명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주기도문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를 중심축으로 삼아,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인간의 일상적 필요, 그리고 영성과 사랑의 실천을 연결한다. 익숙한 한 문장이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과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열쇠임을 그는 강조한다.
이 기도는 단순한 생계 청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흐름 속에서 경제적 필요와 타자를 향한 사랑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드리는 깊은 신학적 고백이다. 그의 결론은 명확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소유(having) 중심이 아니라 사랑(loving)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주기도문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로 시작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목적을 규정한다. 이 땅의 삶은 하늘나라라는 본체의 그림자이자 그 완성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그런데 이 장엄한 선언 바로 뒤에 “일용할 양식”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놓인다. 성경은 인간의 생계 필요를 외면하지 않지만, 그 필요가 절대 가치가 되도록도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서 주기도문에만 등장하는 단어 ‘에피우시오스(epiousios)’가 중요해지는데, 이는 탐욕적 축적이 아니라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갈 만큼의 충분함”을 의미한다.
누가복음은 하나님 나라–일용할 양식–용서라는 구조 속에 이 기도의 깊이를 드러낸다. 특히 “밤중에 친구에게 떡 세 덩이를 구하는 사람”의 비유에서, 장재형 목사는 “세 덩이”가 자기 몫을 넘어 타자를 위한 여분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일용할 양식은 “내 최소한의 생존”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넉넉함”이다. 밤중의 강청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배고픈 손님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 행동이며, 예수께서는 이 사랑의 집요함을 긍정하신다.
이때 having mode와 loving mode의 대비가 선명해진다. 소유 중심의 삶은 결핍을 전제하지만, 사랑 중심의 삶은 나눔을 통해 풍요를 드러낸다. 성령은 인간의 욕망 구조를 변혁해, 나만을 위한 양식이 아니라 “세 덩이의 빵”을 구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분이다. 그래서 기도의 궁극적 선물은 성령이며,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타자를 위해 담대히 구하게 만든다.
결국 “일용할 양식”의 기도는 물질을 포함해 사랑, 용서, 인내 같은 보이지 않는 자원 전체를 포괄하는 요청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파송된 존재로서 우리가 오늘 살아갈 힘과, 이웃에게 나누기 위한 여백을 구하는 기도이며, having에서 loving으로의 회심을 이끌어 낸다. 그리고 이 기도의 핵심은 “나만 위한 생존”에서 “누군가를 살리는 세 덩이의 빵”을 향한 영적 전환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에는 하나님 나라, 역사, 경제, 영성, 용서, 성령, 그리고 사랑 중심의 존재 방식이 한데 응축되어 있다. 이 기도를 삶 전체로 실천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앞당기는 사랑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은 종교적인 어려운 말로만 가득한 교리가 아닙니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보는 장면—밭에 씨 뿌리는 농부, 반죽에 넣는 누룩, 바다에 던지는 그물—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고 자라고 완성되는지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이 비유들을 “지금 여기”의 삶으로 끌어와 설명합니다. 구약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제가 되었고, 그 실제가 오늘 우리의 선택과 습관, 관계와 일터의 방식까지 바꾸는 힘이 있음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그래서 이 장을 읽으면 “신앙은 일요일의 의식”이 아니라 “매일의 방식”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이 비유들이 나온 배경을 잠깐 짚고 가면 더 명확해집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힌 채 흔들립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라는 질문은 믿음 없는 사람의 비아냥이 아니라, 시대의 경계에 서 있던 사람이 느끼는 진짜 고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긴 설명 대신, 눈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메시아의 표지를 상기시키셨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여기를 “옛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떠오르는 분기점”으로 봅니다. 세례 요한은 오실 이를 기다리던 마지막 증인이었고, 제자들은 오신 이를 따르는 첫 증인이었죠. 그러니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는 말은 공격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미루지 않는 결단을 말합니다. 주저하지 않고 복음 앞에 서기로 마음먹는 그 순간, 새 시대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로 그때, 하나님 나라의 큰 지도를 비유로 펼쳐 보이셨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출발점을 보여줍니다. 시작은 “말씀”이라는 씨앗입니다. 씨앗은 살아 있고, 밭은 우리의 마음과 공동체입니다. 길가처럼 굳어 있으면 말씀은 쉽게 빼앗기고, 돌밭처럼 얕으면 환난이 오자마자 시듭니다. 가시덤불처럼 걱정과 욕심이 가득하면 뿌리가 숨 쉴 자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땅—회개로 부드러워진 정직한 마음—은 씨앗이 자라도록 공간을 내줍니다. 장재형목사는 “말씀을 많이 듣는 것”만큼 “마음 밭을 가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조용한 기도, 꾸준한 말씀 묵상, 작은 순종, 정직한 대화, 필요 없는 허세를 덜어내는 절제 같은 것들이 밭을 기경합니다. 열매는 당장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씨앗은 때가 되면 반드시 싹이 납니다. 우리의 몫은 조급함 대신 신뢰로 하루를 쌓는 일입니다.
가라지 비유는 선과 악이 섞여 있는 현실을 다룹니다. 좋은 씨가 뿌려진 밭에 원수가 밤에 몰래 가라지를 뿌립니다. 사람들 눈에는 당장 뽑아내는 게 정의처럼 보이겠지만, 주인은 “지금 뽑다가는 곡식도 다칠 수 있다”며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둡니다. 교회와 세상에 왜 이런 혼합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현실적인 답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분별의 한계”를 인정하라고 권합니다. 진리는 분명히 붙들되, 사람을 쉽게 단정하지 않는 겸손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최종 심판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우리의 자리에서는 인내와 기도가 더 안전합니다. 가라지를 보고 낙심하거나, 반대로 자신을 알곡이라 생각하며 우쭐대지 말고, 오늘 내가 자라야 할 방향을 확인하는 게 먼저입니다. 공의는 반드시 드러나고, 그때까지는 자비가 시간을 붙듭니다.
겨자씨와 누룩 비유는 확장과 변화를 설명합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지만 나중엔 새가 깃드는 큰 그늘을 만들고, 누룩은 얼마 되지 않지만 반죽 전체를 바꿉니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겨자씨는 “관계망의 확산”이고 누룩은 “문화의 침투”입니다. 작아 보이는 선한 선택, 눈에 띄지 않는 정직, 조용한 환대, 꾸준한 중보기도가 퍼져서 어느 순간 상식과 제도를 바꾸는 힘이 됩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원리를 믿으라고 말합니다. 숫자와 규모에 매이지 말고, 씨앗과 누룩의 로직—작지만 본질적인 것—을 꾸준히 심고 섞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작은 성실이 내일의 큰 그늘과 향기가 됩니다.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의 비유는 우선순위의 재편을 말합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최고의 진주를 찾던 상인은 “기쁨으로”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것을 삽니다. 핵심은 바로 그 “기쁨”입니다. 억지뿐인 희생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보았기에 자연스럽게 바뀌는 선택입니다. 장재형목사는 복음을 “옵션”으로 두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복음은 목록 중 하나가 아니라, 목록 전체를 새로 쓰게 만드는 중심입니다. 그래서 제자도는 특정 시기의 열심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바꾸는 결단입니다. 시간 계획, 돈과 재능의 사용, 관계 맺는 방식, 일의 목적—이런 것들이 줄줄이 다시 정렬됩니다. 주일 예배만으로 끝나지 않고, 일터의 공정함, 가정에서의 책임과 사랑,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태도, 창조 세계를 아끼는 습관까지 바뀝니다. “보화와 진주 때문에 기쁘게 지불한 대가”가 또 다른 기쁨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경제학입니다.
그물의 비유는 넓은 초청과 분명한 기준을 함께 보여 줍니다. 바다에 던진 그물은 온갖 것을 끌어올립니다. 복음은 출신, 신분, 과거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나뉩니다. 초청은 넓지만 기준은 흐려지지 않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넓게 초청하되, 안에서는 훈련과 분별, 성숙과 거룩을 배우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값싼 은혜는 없습니다. 제자의 길은 흐릿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포용성과 거룩 사이의 좋은 긴장을 배우고, 개인은 은혜에 기쁘게 응답하면서 순종의 훈련으로 삶을 새로 편집해 갑니다.
비유들을 마치신 뒤 예수님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이야기를 하십니다. 옛것과 새것을 곳간에서 함께 꺼내 오는 집주인처럼, 제자는 구약(옛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복음(새것)을 함께 이해해 세상에 필요한 말씀을 때에 맞게 꺼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성경을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입체적으로 읽는 훈련을 강조합니다. 구약과 신약, 율법과 복음, 전통과 새로움을 대립시키지 않고 복음 안에서 조화시키는 시각입니다. 이런 눈으로 사회 문제를 보면, 윤리·경제·과학·문화·정치·교육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창조 질서와 인간의 존엄을 기억하면 기술 발전을 환영하되 사람을 수단화하지 않게 되고, 이웃 사랑은 감정적 선행을 넘어 구조적 정의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옛것과 새것을 함께 다루는 지혜가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이 비유들을 한 흐름으로 읽으면 하나님 나라를 움직이는 세 가지 동력이 보입니다. 첫째, 말씀의 씨앗이 개인과 공동체의 깊은 층을 바꿉니다. 둘째, 하나님의 인내가 역사와 교회의 시간을 붙잡아 줍니다. 셋째, 기쁨의 헌신이 가치의 서열을 새로 씁니다. 이 동력은 가정과 일터, 학교와 도시, 온라인과 오프라인 어디서나 작동합니다. 작은 큐티, 정직한 보고, 과소비를 줄이는 절제, 시간을 내어 약자를 돌보는 환대, 잘못했을 때 먼저 사과하는 용기, 관계 회복을 위한 화해, 쓰레기를 줄이고 자연을 아끼는 생활 습관—이런 평범한 선택들이 겨자씨와 누룩처럼 퍼져 나갑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풍경을 바꿉니다.
그래서 장재형목사는 “결과보다 방향”을 보라고 거듭 말합니다. 열매는 하나님이 주시고, 방향을 정해 그쪽으로 걷는 건 우리의 몫입니다. 마음 밭을 갈아엎는 회개가 방향을 잡아 주고, 가라지 앞에서의 인내가 방향을 지켜 주며, 보화와 진주를 본 기쁨이 끝까지 밀어 줍니다. 현실 감옥에서 요한처럼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복음의 표지를 다시 확인하면 됩니다. 약한 사람이 힘을 얻고, 눈먼 사람이 다시 보며, 낙심한 사람이 소망을 붙드는 자리—그곳에 예수님이 일하십니다. 그 표지를 따라가면 비유의 말씀이 발 앞을 밝히는 등불이 됩니다.
이제 한국 교회와 전 세계의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이 비유들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고 실천할 차례입니다. 그러면 신앙은 사적인 취미가 아니라 공적 책임으로 확장됩니다. 예배는 삶 전체의 리듬이 되고, 선교는 타 문화를 존중하는 환대가 되며, 제자도는 비교와 경쟁을 넘어서는 성숙으로 드러납니다. 작은 씨앗과 누룩처럼 지역사회의 허브가 되고, 가라지 앞에서 겸손을 배우며, 그물 안에서 진리와 사랑을 함께 훈련합니다. 옛것과 새것을 함께 들고 가는 성경적 상상력은 전통을 지키되 굳어지지 않게 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되 뿌리를 잃지 않게 합니다. 본문을 신뢰하고, 그 신뢰가 만들어 내는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를 믿으라고 장재형목사는 권합니다.
결국 마태복음 13장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묻습니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떤 밭인가? 나는 무엇을 기쁨으로 팔고 무엇을 사는가? 나는 어떤 어부로서 어디에 그물을 던지는가? 이 질문에 대한 솔직한 대답이 오늘의 순종입니다. 순종이 쌓이면 풍경이 달라집니다. 가정의 공기가 부드러워지고, 직장의 문화가 정직해지고, 도시의 일상이 너그러워집니다. 누룩처럼 천천히, 그러나 틀림없이. 씨앗처럼 보이지 않게, 그러나 결국 확실하게.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임했고, 지금도 자라고 있으며, 마침내 영광스럽게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가라지를 참고 견디며, 겨자씨와 누룩처럼 스며들고, 보화와 진주 때문에 기쁘게 결단하고, 그물을 넓게 던지되 거룩함의 기준을 지키고, 옛것과 새것을 함께 꺼내는 지혜를 구합시다. 그렇게 살 때 우리도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으로 부르심을 살아가게 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큰 이야기이고, 우리는 그 이야기의 오늘 장을 함께 쓰는 사람들입니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에베소서 3장을 중심으로 오늘의 교회가 어디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지 또렷하게 보여준다. 장재형목사 강해의 초점은 프로그램이나 성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에 있으며, 이 사랑을 아는 깨달음이 기도의 중심을 바꾸고 교회의 체질을 바꾼다는 데 있다. 옥중에서도 낙심하지 않았던 바울의 기도는 현실을 즉시 바꾸는 주문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하는 길이었다. 그래서 장재형 목사는 기도를 통해 문제의 목록을 줄이는 노하우가 아니라,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배우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지혜가 자리 잡으면 선택의 방향이 정리되고, 삶은 느리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바울은 자신이 겪는 시련 때문에 성도들이 낙심하지 않기를 당부하며, 오히려 그 일이 교회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고백을 신앙의 시선 전환으로 읽어 낸다. 복음을 선택한 결과로 오는 오해와 손해, 박해와 고난은 실패의 징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침투하고 있다는 표지라는 것이다. 고난을 미화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만 신자는 고난을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만 대하지 않고,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게 열리는지 더듬어 본다. 이 시선이 생기면 우리는 상황의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사랑의 증언자로 선다. 낙심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유대인의 일반적 기도 자세가 서 있는 형태였음을 기억하면, 바울의 “무릎 꿇는 기도”는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언어다. 장재형 목사는 무릎이 굽혀질 때 비로소 마음이 낮아지고, 마음이 낮아질 때 공동체가 안전해진다고 설명한다. 전략보다 먼저 무릎을 점검하라는 말은 낭만적인 수사가 아니다. 교회가 무릎에서 출발하면 언어가 부드러워지고, 부드러운 언어는 상처를 흡수해 공동체에 여유를 만든다. 그 여유 속에서 성령의 위로와 지혜가 흘러간다. 반대로 무릎이 굳어 있으면 말은 날카로워지고, 날카로운 말은 사역을 소모전으로 바꾸어 버린다. 장재형목사의 에베소서 3장 설교는 이 단순한 진실을 오늘의 교회 형편 속에서 구체적으로 상기시킨다.
그가 특별히 되뇌는 구절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는 기도다. 겉사람은 피곤하고 낡아지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다. 속사람은 단순한 심리 상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거하시는 자리이자 성령께서 능력을 공급하시는 내부의 성소다. 장재형 목사는 성령의 강건함이 주로 사랑을 실천하는 힘으로 나타난다고 해석한다. 용서해야 할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얼어붙을 때, 손 내밀어야 할 순간에 계산이 먼저 올라올 때, 성령이 주시는 강건함은 계산을 이기게 만든다. 그래서 진짜 영성은 특별한 체험보다 일상의 작은 순종에서 검증된다. 사랑으로 반응하려는 짧은 기도, 불평 대신 축복을 말하려는 결심, 하루 한 번의 실제 감사가 속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바울이 묘사한 사랑의 네 차원—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도 단지 수사나 개념이 아니다. 넓이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을 품는 보편성이고, 길이는 창세 전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신실함이며, 높이는 하늘 보좌의 영광과 맞닿은 초월이고, 깊이는 죄인을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성육신의 겸손이다. 네 방향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한 점으로 모인다. 장재형목사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와 사망의 결박을 풀어낸 능력임을 강조하며, 이 능력이 오늘도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이 사랑은 논리만으로는 닿지 않는다. 성령의 조명이 있을 때 마음이 이해하고, 이해가 삶으로 번역된다. 그러니 에베소서 3장의 공부는 곧 기도이며, 기도는 곧 사랑을 배우는 학교다.
교회가 이 사랑으로 충만해질 때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모든 충만(플레로마)”이 현실이 된다. 충만은 감정의 일시적 고조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가득 채우시는 상태다. 충만한 교회에서는 예배가 관람이 아니라 참여가 되고, 사역은 성과 경쟁이 아니라 생명 나눔이 된다. 설교자는 반응을 얻는 연사가 아닌 사랑의 증언자가 되고, 성도는 소비자가 아닌 동역자가 된다. 은사는 권력의 근거가 아니라 서로를 세우는 도구가 되며, 재정은 행사를 크게 만드는 데 쓰이기보다 사람을 살리고 관계를 세우는 데 흘러간다. 실패를 비난하는 대신 회복을 돕는 문화가 자리 잡고, 그래서 낙심이 줄어든다. 장재형목사는 이 분위기를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의 정서라고 부른다.
그의 시선은 개인 구원을 넘어 교회와 세상을 잇는 하나님의 큰 그림으로 확장된다. 에베소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곧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모아지는 경륜(엡 1:10)은 3장의 기도와 긴밀히 연결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이며 성령으로 지어진 하나님의 거처다. 이 정체성이 흔들리면 교회는 자기 확장의 브랜드가 되지만, 정체성이 선명하면 교회는 세상의 균열 속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실험장이 된다. 신학적 정통과 사회적 책임이 서로를 보완하고, 예배와 봉사, 선교와 정의가 분리되지 않는다. 모든 사역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일 때 교회는 본질을 지키며 시대에 창의적으로 응답할 수 있다.
현장의 적용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회의와 계획을 줄이고 무릎을 함께 굽히는 시간을 회복한다. 소그룹에서는 정보를 나누기보다 서로의 상처를 듣고 중보하는 연습을 한다. 리더십은 권한을 모으기보다 은사를 순환시키도록 설계하고, 재정은 행사 비용보다 사람을 세우는 곳으로 흐르게 한다. 배움의 목표를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랑의 순종으로 잡고, 예배의 초점을 연출이 아니라 임재에 둔다. 이런 작은 전환이 반복되면 체질이 바뀐다. 안전해진 공동체에서 복음은 멀리까지 흘러가고, 그 흐름 속에서 낙심은 힘을 잃는다. 장재형 목사는 복잡한 비전 구호보다 이런 단순한 실천이 더 오래간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자리에서도 길은 분명하다.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결단이 출발점이다. 아침의 첫 시간을 말씀과 기도로 드리며 하루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사랑으로 반응하기로 작정한다.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축복을 선포하는 짧은 기도를 반복하고, 하루에 한 번은 감사의 말을 실제로 건넨다. 이런 습관들이 쌓일 때 속사람은 강해지고, 외적 조건의 흔들림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신앙은 결국 사랑을 배우는 느린 길이며, 성령께서 그 길 위에서 우리를 단단하게 하신다. 그렇게 우리는 상황의 피해자에서 사랑의 증언자로 옮겨 선다.
마침내 바울의 기도는 영광송으로 끝난다.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장재형 목사는 이 마지막 문장을 오늘의 교회가 점검해야 할 최종 기준으로 제시한다.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면 우리는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연출하는 유혹에서 벗어난다. 선교의 중심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면 숫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봉사의 중심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면 박수와 칭찬이 없어도 기쁘게 섬길 수 있다. 교육의 중심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면 지식의 과시가 아닌 사랑의 실천을 추구하게 된다. 출발점은 한결같다. 무릎을 꿇어 속사람의 강건함을 구하고, 지식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일. 그렇게 배우는 교회는 어떤 환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법을 익히며, 세상은 그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얼굴을 본다. 간단히 말해 장재형목사가 전하는 에베소서 3장의 메시지는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가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이며, 그 사랑은 지금 이 자리에서 무릎으로 시작된다.
Le pasteur David Jang a étudié avec l’assemblée la scène où Jésus ressuscité apparaît à ses disciples, pour mieux comprendre la mission que le Seigneur nous a confiée. Le chapitre 21 de l’Évangile selon Jean se divise en trois grands volets : le premier traite de la mission (l’œuvre missionnaire), le deuxième concerne le soin pastoral (l’œuvre pastorale) et le troisième se rapporte au temps de la fin (l’eschatologie). Selon ces trois thèmes, nous pouvons discerner l’exhortation profonde que le Seigneur a laissée à ses disciples : qu’il n’y ait pas de confusion, mais que chacun accomplisse pleinement la tâche qui lui est confiée. Même après sa résurrection, le Seigneur leur révèle de nouveau qui Il est et ce à quoi ils sont appelés. Le même principe s’applique encore aujourd’hui : en tant que croyants au Seigneur ressuscité, nous devons, en gardant à l’esprit l’évangélisation, le soin pastoral et l’espérance de la fin des temps, remplir clairement la mission qui nous est confiée et assumer nos responsabilités.
Après cette méditation sur Jean 21, l’Église a achevé l’étude des deux épîtres aux Thessaloniciens. Ces lettres contiennent un enseignement profond sur l’eschatologie, ainsi que des avertissements et des exhortations pastorales pratiques adressés à la belle Église de Thessalonique, et ces enseignements restent riches pour l’Église d’aujourd’hui. Ensuite, la suite logique nous mène aux épîtres pastorales de Paul (Première et Deuxième à Timothée, Tite), auxquelles le pasteur David Jang souhaite attirer notre attention. Ces épîtres pastorales sont des lettres où Paul, le mentor, donne des directives sur le ministère pastoral à ses disciples Timothée et Tite : elles abordent la gestion de l’Église, l’attitude pastorale, la manière de prendre soin des fidèles, l’ordre au sein de la communauté, etc. Ce sont donc des textes fondateurs pour comprendre le fonctionnement et l’organisation de l’Église.
Le pasteur David Jang a également expliqué comment la théologie pastorale s’est développée au fil de l’histoire de l’Église. Il y eut la Réforme protestante (Reformation) face à l’Église catholique romaine (l’ancienne Église), menée par Luther, Calvin (Calvin), Zwingli et d’autres grands réformateurs. De là est né le protestantisme orthodoxe (Protestant Orthodoxy), auquel s’est opposée la théologie libérale (liberalism). Devant l’ampleur de la désintégration qu’occasionnait la théologie libérale dans l’Église, un mouvement de retour à l’orthodoxie protestante a surgi, appelé « néo-orthodoxie » (Neo-Orthodoxy). Des théologiens comme Karl Barth (auteur de La Dogmatique ou Kirchliche Dogmatik), Paul Tillich, Emil Brunner et Reinhold Niebuhr se sont investis dans la défense de l’Évangile. Parmi eux, Karl Barth travaillait à Bâle (en Suisse).
Eduard Thurneysen (1888-1974), un théologien originaire de Bâle, en Suisse, a grandement influencé la pensée de son époque en élaborant la théologie pastorale. Il a étudié à l’université de Bâle, puis a ensuite enseigné à l’université de Berlin. Son ouvrage majeur, Le ministère pastoral (Die Lehre von der Seelsorge ou Die Pastorale selon les éditions), donne des indications concrètes sur la manière d’exercer le ministère pastoral dans la réalité quotidienne de l’Église. Le pasteur David Jang se souvient combien, dans sa jeunesse, il était passionné par les écrits de Thurneysen et combien il rêvait de visiter Bâle chaque fois qu’il se rendait en Europe.
La théologie pastorale fait partie de la théologie pratique (practical theology), l’une des grandes branches de la théologie. Classiquement, on étudie la théologie de la manière suivante : en première année, on acquiert les bases générales ; en deuxième année, on étudie la théologie biblique et l’histoire de l’Église (histoire ecclésiastique) ; en troisième année, on se consacre à la théologie systématique (systematic theology), c’est-à-dire la doctrine, et enfin, en quatrième année, on aborde la théologie pratique. Dans cette dernière, la prédication (homilétique) et la théologie pastorale (pastorale) occupent une place centrale. Or, la théologie pastorale puise ses racines dans l’Écriture. Parmi les textes bibliques, les épîtres pastorales de Paul (Première et Deuxième à Timothée, Tite) contiennent l’essentiel et la structure fondamentale du soin de l’Église. Ainsi, pour quiconque a la responsabilité de prendre soin de l’Église, ces lettres pastorales constituent un guide majeur.
Après les épîtres pastorales, on trouve l’épître à Philémon. Même si Paul la destine initialement à un individu (Philémon), elle renferme des exhortations précieuses à lire en communauté. Ainsi, après les treize épîtres de Paul (de l’épître aux Romains à celle de Philémon), se trouve l’Épître aux Hébreux, dont l’auteur n’est pas explicitement mentionné, ce qui a nourri de longs débats. Le style ne correspond pas à une épître classique de Paul (sa formule d’ouverture et de conclusion, ses salutations spécifiques ne s’y retrouvent pas). Toutefois, dans les dernières lignes d’Hébreux, on lit : « Sachez que notre frère Timothée a été relâché ; s’il vient bientôt, je vous verrai avec lui » (Hé 13.23). Certains spécialistes se fondent sur ce rapport étroit entre Paul et Timothée (souvent souligné par Paul) pour attribuer l’Épître aux Hébreux à Paul, mais la question reste ouverte.
Quoi qu’il en soit, Timothée, un collaborateur très proche de Paul, apparaît dans de nombreuses lettres pauliniennes. Parmi ceux à qui Paul confiait la charge pastorale effective dans son équipe (Timothée, Tite, et d’autres), Timothée et Tite se distinguent particulièrement. D’innombrables serviteurs anonymes ont aussi œuvré sans être cités. Rien qu’en Romains 16, Paul mentionne une multitude de collaborateurs. Il valorisait la « mission d’équipe » et menait avec eux la double mission d’évangélisation et de soin pastoral. Parmi ces collaborateurs, Timothée occupe une place de choix, au point d’être mentionné comme « co-auteur » dans six lettres (2 Corinthiens, Philippiens, Colossiens, 1 et 2 Thessaloniciens, Philémon).
Pour comprendre qui est Timothée, rappelons qu’il fut recruté par Paul lors de son deuxième voyage missionnaire, quand celui-ci repassa par Derbe et Lystres (Ac 16.1-3). Sa mère était une Juive croyante, son père un Grec, et sa grand-mère Loïs était également une femme de foi, nous apprend Paul dans la Deuxième épître à Timothée. Timothée était doux de caractère et, placé dans des situations difficiles (en proie aux persécutions de l’extérieur comme aux faux docteurs dans l’Église), il était de nature inquiète, au point de souffrir de maux d’estomac (1 Tm 5.23). Dans la Deuxième à Timothée (1.4), Paul rappelle aussi qu’il était un homme qui pleurait facilement.
Lors du premier voyage missionnaire, Paul était parti d’Antioche avec Barnabas et Marc pour proclamer l’Évangile dans plusieurs régions. À Lystres, il guérit un homme impotent de naissance, ce qui suscita un vif émoi parmi la population, qui voulut diviniser Paul et Barnabas. Mais Paul rejeta fermement cet excès et poursuivit la proclamation de l’Évangile. Les Juifs, jaloux, allèrent jusqu’à lapider Paul à Lystres et le laissèrent comme mort hors de la ville. Cependant, Dieu le releva (Ac 14.19-20). Fait intéressant, « Lystres » signifie « troupeau de brebis », pourtant, ce fut là que Paul faillit mourir. Il y connut souffrances et larmes, puis une résurrection miraculeuse. Or, au cours du deuxième voyage missionnaire, quand Paul revient dans cette région, il rencontre Timothée (dont le nom signifie « honorer Dieu ») et l’emmène comme collaborateur. À Lystres, un lieu chargé de sang et de larmes pour Paul, Dieu avait préparé pour lui Timothée, un précieux compagnon de ministère.
La Première épître à Timothée est généralement datée des années 63-65 apr. J.-C. : Paul, après avoir été assigné à résidence à Rome pendant deux ans, aurait été libéré et aurait repris la route missionnaire. Au cours de ce périple, il laissa Tite en Crète (Tt 1.5) et Timothée à Éphèse. L’Église d’Éphèse était l’une des plus importantes, où Paul avait servi trois années entières (Ac 20.31), et qui avait connu une grande croissance. Paul rêvait de se rendre jusqu’en Hispanie (l’actuelle Espagne) pour y prêcher l’Évangile (Rm 15.28), toujours prompt à franchir de nouvelles frontières. Pourtant, il devait maintenir un lien avec l’Église d’Éphèse, en proie aux faux docteurs. Il chargea donc Timothée de rester sur place pour faire face à ces perturbateurs et consolider l’Église.
Le pasteur David Jang a lu et commenté la Première à Timothée, mettant en lumière le sens et le contexte de la lettre. Dès l’introduction, Paul salue ainsi :
« Paul, apôtre de Jésus-Christ par ordre de Dieu notre Sauveur et de Jésus-Christ notre espérance » (1 Tm 1.1).
Le terme « Sauveur » (sôtêr, σωτήρ en grec) était habituellement réservé à l’empereur romain. En l’appliquant à Dieu, Paul souligne que le véritable Sauveur n’est pas l’empereur, mais Dieu seul. De même, le Christ Jésus est « l’espérance » de Paul et Timothée.
« À Timothée, mon enfant légitime dans la foi : Que la grâce, la miséricorde et la paix te soient données de la part de Dieu le Père et de Jésus-Christ notre Seigneur ! » (1 Tm 1.2).
Paul appelle Timothée « mon enfant légitime dans la foi », montrant ainsi le lien unique qui les unit. Dans la salutation, on trouve la formule « grâce, miséricorde et paix ». Habituellement, Paul utilise souvent « grâce et paix », mais l’ajout du terme « miséricorde » (ou « compassion ») est caractéristique de la Première et de la Deuxième à Timothée, où Paul médite profondément la miséricorde divine dont il a bénéficié.
Paul précise la raison pour laquelle il a laissé Timothée à Éphèse : « afin d’exhorter certaines personnes à ne pas enseigner d’autres doctrines » (1 Tm 1.3). À l’époque, de faux docteurs, s’appuyant sur des traditions juives ou des spéculations (mythes, généalogies interminables), déformaient l’Évangile accompli en Jésus-Christ. Par ailleurs, l’influence du gnosticisme semait la confusion et la discorde au sein de l’Église.
Le ministre pastoral doit protéger l’Église des « enseignements étrangers ». Aujourd’hui encore, des idéologies extérieures (sécularisme, etc.) s’infiltrent dans l’Église et menacent de dénaturer l’Évangile. C’est pourquoi le pasteur, en tant que gardien de l’Église, doit maintenir fermement la vérité et enseigner l’essentiel avec clarté. Telle est l’une des missions fondamentales du berger.
Paul souligne à quel point ceux qui se perdent en débats stériles, mythes et généalogies interminables se fourvoient (1 Tm 1.6-7). Il rappelle que la Loi est bonne (1 Tm 1.8), mais qu’elle a pour but de révéler le péché (1 Tm 1.9-11) et de conduire au Christ, seul capable de sauver. La Loi ne donne pas le salut, elle sert seulement de « pédagogue » (Ga 3.24) pour conduire les hommes à la grâce.
Paul qualifie l’Évangile de « l’Évangile de la gloire du Dieu bienheureux » (1 Tm 1.11) et exprime son immense reconnaissance d’avoir reçu cette bonne nouvelle, lui qui était si indigne :
« Je rends grâces à celui qui m’a fortifié, à Jésus-Christ notre Seigneur, de ce qu’il m’a jugé fidèle, en m’établissant dans le ministère » (1 Tm 1.12).
Le pasteur David Jang met particulièrement en valeur ce passage. Paul remercie le Seigneur qui l’a appelé et établi au ministère pastoral. Autrefois, Paul n’était pas seulement un incroyant, mais un persécuteur et un blasphémateur (1 Tm 1.13). Cependant, il a obtenu miséricorde, et il se décrit comme « le premier des pécheurs » (1 Tm 1.15). Cette confession sincère touche profondément aussi bien les pasteurs que les fidèles.
Selon le pasteur David Jang, « Le point de départ de tout ministère est la prise de conscience que nous sommes tous des pécheurs ». Un pasteur ignorant sa propre condition de pécheur pardonné ne peut pas servir l’Église avec amour. Comme l’exprime l’idée du « guérisseur blessé » (wounded healer), ce n’est que lorsqu’on a personnellement expérimenté le pardon et les larmes de la repentance que l’on peut porter et soigner les fautes et les blessures des autres.
« Mais j’ai obtenu miséricorde, afin qu’en moi le premier, Jésus-Christ manifestât toute sa patience, pour servir d’exemple à ceux qui croiraient en lui pour la vie éternelle » (1 Tm 1.16).
Paul déclare que, s’il a obtenu miséricorde bien qu’il fût « le premier des pécheurs », c’était pour devenir un modèle : si Christ a pu sauver le pire de tous, il peut sauver tout le monde. La grâce se révèle ainsi d’une puissance extraordinaire.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encore l’importance de mener « le bon combat de la foi » (1 Tm 1.18) dans la réalité concrète du ministère. Il s’agit de s’opposer à de faux docteurs, de préserver l’essence de l’Évangile, d’aimer et de prendre soin des fidèles, de travailler en équipe et de partager joies et peines. Pourtant, il faudra parfois affronter la tristesse de voir certains faire naufrage dans la foi (1 Tm 1.19-20). Tel est le dur et beau paysage du service pastoral.
Paul termine le premier chapitre en rendant gloire « au Roi des siècles, immortel, invisible, seul Dieu » (1 Tm 1.17). Selon le pasteur David Jang, c’est là le but ultime de tout ministère et de toute vie de foi : rendre gloire à Dieu. Cette gloire n’est pas liée à nos mérites, mais au résultat de la compassion et de la grâce divines.
2. Un ministère édifié par la miséricorde
À ce stade,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le thème central de la Première à Timothée, qui est le « ministère » soutenu par la « miséricorde ». Dans le chapitre 1, Paul dresse d’abord le constat des menaces qui pèsent sur l’Église (les faux docteurs, etc.), puis il conclut que la force motrice du ministère pastoral vient avant tout de la compassion (miséricorde) de Dieu. Souvenant qu’il était le « premier des pécheurs », Paul insiste sur la nécessité pour le pasteur de se rappeler sans cesse la miséricorde qu’il a lui-même reçue, afin de prendre soin de la communauté avec humilité.
Selon le pasteur David Jang, c’est précisément cette miséricorde qui rend possible l’amour. Dans 1 Tm 1.5, Paul écrit : « Le but de cette recommandation, c’est un amour venant d’un cœur pur, d’une bonne conscience, et d’une foi sincère. » Toute mise en garde et tout enseignement dans l’Église doivent avoir pour finalité « l’amour ». Or, cet amour jaillit naturellement dès lors que l’on prend la pleine mesure de la miséricorde infinie reçue du Seigneur. C’est là l’essence même du pastorat.
Le pasteur doit donc veiller attentivement aux événements tant à l’intérieur qu’à l’extérieur de l’Église : les influences séculières qui menacent la pureté du message, les faux docteurs, les querelles inutiles, mais aussi la souffrance silencieuse des membres qui servent avec dévouement. Pour gérer tout cela, il faut de l’humilité et des larmes. Comme Paul le témoigne en Actes 20.17-19, lorsqu’il fait ses adieux aux anciens d’Éphèse, il rappelle avoir servi « en toute humilité et avec beaucoup de larmes ». De la même manière, le pasteur David Jang ne cesse de répéter : « Le soin pastoral est une œuvre de larmes. » Timothée, certes timide, enclin aux pleurs, voire à un estomac fragile, n’en est pas moins la personne choisie pour conduire l’Église, car Dieu se plaît à utiliser ce qui est faible pour confondre les forts (1 Co 1.27).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aussi la nécessité d’un ministère d’équipe. Paul comptait une multitude de collaborateurs, dont Timothée, Tite, Silas, Luc, Aquilas et Priscille, Épaphras, etc. L’Église ne saurait être le terrain de jeu d’un seul individu ; c’est la communauté qui porte la force de la mission, en partageant à la fois peines et joies.
De même, on ne peut séparer l’évangélisation (la mission) du soin pastoral. Lorsque le Seigneur ressuscité a confié sa mission aux disciples, Il leur a dit : « Vous serez mes témoins jusqu’aux extrémités de la terre » (Ac 1.8) et aussi « Pais mes agneaux » (Jn 21.15). Paul, dans ses voyages missionnaires, visitait à nouveau les Églises qu’il avait fondées, y laissait des responsables, ou leur écrivait pour les accompagner. L’Évangile suscite de nouveaux croyants, et il faut prendre soin de ces âmes. Ce soin pastoral est l’essence même du pastorat.
Or, le soin pastoral consiste avant tout à aimer. Sans amour, le soin pastoral ne peut s’exercer. Selon 1 Tm 1.5, cet amour provient d’un cœur pur, d’une bonne conscience et d’une foi sincère. Mais il s’agit aussi d’un amour qui n’est pas simplement le fruit de nos efforts, mais qui découle de la miséricorde de Dieu envers des pécheurs. Pour cette raison, Paul se qualifie de « premier des pécheurs » et se rappelle ce qu’il était auparavant. Ayant expérimenté un salut immense et l’amour de Dieu, Paul pouvait prêcher l’Évangile avec une ardeur incomparable, tout en craignant toujours que l’Église ne se disperse ou ne s’effondre, d’où ses nombreuses larmes pour son ministère.
C’est donc pour cela que les épîtres à Timothée et à Tite (dénommées « épîtres pastorales ») occupent une place à part parmi les lettres de Paul : elles détaillent ses principes pastoraux et sa vision de l’Église. En les parcourant, nous découvrons des indications concrètes sur les qualités requises pour l’encadrement de l’Église, l’attitude à adopter envers les fidèles, la prière et le culte, la gestion des faux enseignements et l’établissement de l’ordre ecclésial. Aujourd’hui encore, elles servent de socle théologique et pratique pour tout pasteur, dont le pasteur David Jang, dans l’accomplissement de son ministère.
Le pasteur David Jang relie ces considérations à 1 Tm 1, relevant notamment que les larmes de Timothée, mentionnées aussi en 2 Tm 1.4 (« me rappelant tes larmes »), ne sont pas un signe de faiblesse, mais bien l’expression d’un authentique dévouement pour protéger le troupeau. Paul, jusqu’au bout, a encouragé Timothée à ne pas baisser les bras, s’appuyant sur le souvenir de la miséricorde que Dieu avait d’abord manifestée à Paul lui-même.
La source la plus fondamentale du ministère, c’est la grâce et la miséricorde divines. Celui qui a reçu cette grâce et cette miséricorde se sent rempli de gratitude envers Dieu et, de ce fait, prend soin de l’Église. Ainsi, Paul affirme : « Je suis reconnaissant qu’il m’ait jugé fidèle et m’ait établi dans le service » (1 Tm 1.12). Le ministère n’est pas une fonction que l’on obtient par ses propres mérites ou ses résultats, mais un appel à servir au sein de l’Église, qui doit être perçu comme un honneur et un sujet d’action de grâce. Paul, persécuteur de l’Église, a reçu cette miséricorde en Christ. Chaque jour, il en était profondément reconnaissant, et c’est cette gratitude qui alimentait toute sa vie de service.
De même, si certains, comme Hyménée et Alexandre, persistent à nuire à l’Église et à rejeter la foi (1 Tm 1.19-20), le pasteur doit prendre les mesures nécessaires. Paul dit : « Je les ai livrés à Satan, afin qu’ils apprennent à ne plus blasphémer. » On comprend qu’il y a eu certainement une tentative de les ramener, mais que leur comportement destructeur envers l’Église a fini par exiger l’exclusion. Une telle fermeté est parfois indispensable pour préserver la sainteté de la communauté.
Il apparaît clairement que le ministère pastoral n’est pas un chemin aisé. Le pasteur David Jang le répète souvent dans ses sermons et conférences : « Le pastorat est à la fois une œuvre sacrée, car on prend soin du corps du Seigneur, et une entreprise impossible sans larmes. » Dans le duo formé par Paul et Timothée (ou par Paul et Tite), on entrevoit la réalité du pastorat. Un enseignement dénué d’amour mène au conflit et à la division. Mais celui qui s’enracine dans l’amour, issu de la grâce et de la miséricorde divines, va ranimer les âmes et édifier la communauté.
De nos jours, l’Église affronte de nombreux défis : sécularisation, pluralisme, matérialisme, humanisme menacent de diluer la vérité de l’Évangile. À l’intérieur même, on voit des erreurs théologiques, des manipulations égoïstes, des divisions entre fidèles, et la difficulté de se relever d’une crise comme celle de la Covid. Plus que jamais, nous devons puiser dans la sagesse que Paul adresse à Timothée. Au final, tout se ramène à l’amour, fruit de la grâce et de la miséricorde de Dieu, et à la persévérance dans « le bon combat de la foi » (1 Tm 1.18).
Le Seigneur ressuscité, en Jean 21, ordonne : « Pais mes brebis », et, en Actes 1.8, Il envoie ses disciples « jusqu’aux extrémités de la terre » pour être ses témoins. Cette double mission – évangélisation et soin pastoral – est inséparable. Paul, avec ses collaborateurs, a uni ces deux dimensions, au prix de bien des larmes et d’innombrables sacrifices. Ceux qui ont la charge de l’Église doivent se souvenir de la miséricorde dont ils ont eux-mêmes bénéficié, aimer les brebis et poursuivre l’annonce de l’Évangile jusqu’aux confins de la terre.
Le pasteur David Jang, dans son enseignement pour l’Église tant en Corée que dans le monde, ne cesse de souligner ce double enjeu (mission et pastorat) et d’inviter à adopter une attitude pleinement enracinée dans l’Écriture. En lisant la Première à Timothée, nous devons rendre gloire au Dieu qui nous sauve et remercier pour sa miséricorde envers nous, pécheurs. Cette reconnaissance doit nous pousser à dépasser les vaines discussions, à apaiser les troubles dans l’Église et à faire grandir un amour qui donne la vie.
Le chapitre 1 de la Première à Timothée s’achève sur l’appel de Paul à Timothée : « Défends l’Église et argumente pour l’Évangile, mais n’oublie jamais que toi aussi tu étais le premier des pécheurs et que tu as reçu la miséricorde. » Il n’y a point de place pour les mythes, les généalogies ou les controverses inutiles : le cœur du ministère de Paul se nourrit de la grâce et de la miséricorde du Seigneur. Aujourd’hui encore, responsables et fidèles doivent sans cesse revenir à cette base, pour que l’Église ne se transforme pas en arène de débats vains, mais demeure un lieu où règnent l’amour et la grâce.
Ce n’est certes pas un combat facile, comme l’a montré la situation de l’Église d’Éphèse, en proie à de puissantes secousses. Pourtant, de la même manière que Paul a pu se relever à Lystres, et que Timothée, fragile, a pu tenir bon, quiconque s’appuie sur l’amour et la compassion de Dieu reçoit la force nécessaire. Forts de cette force, nous pourrons édifier l’Église, servir Dieu notre Sauveur et le Christ notre espérance, et porter l’Évangile jusqu’aux extrémités de la terre. Voilà l’esprit que le pasteur David Jang n’a de cesse de prôner : un ministère et une mission fermement arrimés à la perspective eschatologique, avec les yeux fixés sur le retour du Seigneur.
Ainsi, l’enseignement de Jean 21 et l’exhortation de Paul à Timothée se rejoignent dans le même courant. Le commandement du Seigneur ressuscité et le témoignage pastoral de Paul convergent pour poser la base de la théologie pastorale. L’Église doit aimer son troupeau, repousser les faux enseignements, et se préparer au retour du Seigneur. Dans tout cela, comme le répète le pasteur David Jang, nous devons puiser à la « miséricorde de Dieu ». Nous étions des pécheurs, mais nous avons été sauvés, et c’est là le moteur impérissable qui alimente l’évangélisation et le ministère pastoral.
Pastor David Jang examined what mission the Lord entrusted to us in the scene where He appeared to His disciples after His resurrection. John 21 can be divided into three main sections. The first section deals with missions, the second with shepherding, and the third with “time,” that is, the end times. Following these three themes, we can see the profound exhortations the Lord Himself left with His disciples. The core of these exhortations is to fulfill the calling entrusted to each of us without confusion. Even after His resurrection, the Lord once again made clear to the disciples who He was and what they had been called to do. That same calling applies to us today. In other words, as believers in the resurrected Lord, we must carry out our clear mission and responsibility in the context of missions, shepherding, and the anticipation of the end times.
Following this message, the church finished studying First and Second Thessalonians. These letters to the beautiful Thessalonian church contain profound teachings and warnings about eschatology, along with practical pastoral advice. This is valuable instruction for our church today as well. Next, in Paul’s epistles, we come to the so-called “Pastoral Epistles”—First and Second Timothy, and Titus. Pastor David Jang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paying attention to this section. The Pastoral Epistles are letters in which Paul provides pastoral guidance to his disciples in ministry, Timothy and Titus. These documents provide specific teachings on church administration, the attitude of shepherding, methods of caring for believers, and church order.
Pastor David Jang also gave a brief account of how pastoral theology has developed over the course of church history. The Catholic Church (the old church) experienced the Reformation, giving birth to the Reformed churches, i.e., Protestantism, with key reformers such as Martin Luther, John Calvin, and Ulrich Zwingli. Afterward, Protestant Orthodoxy emerged, which in turn faced backlash with the rise of Liberal Theology. However, when Liberal Theology began to threaten and undermine the church seriously, a movement called Neo-Orthodoxy arose to return once more to Protestant Orthodoxy. Leading figures such as Karl Barth, author of Church Dogmatics, Paul Tillich, Emil Brunner, and Reinhold Niebuhr strove to defend the gospel, with Karl Barth residing in Basel, Switzerland.
Eduard Thurneysen (1888–1974), a Swiss theologian from Basel, had a significant impact in establishing pastoral theology for that era. He studied at the University of Basel and later taught at the University of Berlin. His major work, Pastoral Care, offers specific guidance on how to conduct pastoral ministry in real-life settings. Pastor David Jang recalled that in his younger years, he was deeply immersed in Thurneysen’s writings and that when he visited Europe, he always wanted to visit Basel.
Pastoral theology falls under the broader discipline of Practical Theology within the study of theology. Typically, in theological education, students learn foundational subjects in the first year, biblical theology and church history (historical theology) in the second year, systematic theology (doctrine) in the third year, and practical theology in the fourth year. Homiletics (preaching) and pastoral theology fall under practical theology. The root and basis of practical theology is Scripture. Among biblical texts, Paul’s Pastoral Epistles (First and Second Timothy, Titus) contain the core principles and framework for church ministry. Hence, for those entrusted with caring for the body of Christ, these Pastoral Epistles serve as vital guides.
Following the Pastoral Epistles comes Philemon, which, though addressed to a single individual (Philemon), contains important truths meant to be read by the entire community. Then, after the thirteen Pauline Epistles (Romans through Philemon) comes the Book of Hebrews. Hebrews has long been a subject of debate because its author is not clearly identified. Its format differs from Paul’s epistles, and it lacks Paul’s customary greetings at the beginning and end. However, Hebrews 13:23 says, “You should know that our brother Timothy has been released, with whom I shall see you if he comes soon.” Because Paul so often highlighted his close relationship with Timothy, some scholars have suggested that Hebrews may be Paul’s work.
One of Paul’s beloved co-workers was Timothy, whose name appears frequently throughout Paul’s letters. Among Paul’s pastoral team, Timothy and Titus stand out as those who actually took on pastoral leadership. Of course, there must have been many unnamed servants who devoted themselves without seeking recognition. Even by looking at Romans 16, we see numerous co-laborers of Paul mentioned. Paul valued team ministry, fulfilling the mission of both evangelism and shepherding together with his many co-workers. Among them, Timothy held a particularly special role, appearing as a co-author in no fewer than six of Paul’s letters (2 Corinthians, Philippians, Colossians, 1 & 2 Thessalonians, Philemon).
When we look more closely at who Timothy was, we learn that Paul took him on as a co-worker during his second missionary journey when revisiting the region of Derbe and Lystra (Acts 16:1–3). His mother was a believing Jew, his father was a Greek, and his grandmother Lois was also a woman of sincere faith, as Paul notes in Second Timothy. Timothy was known for his gentle character, yet he was also anxious under difficult circumstances. The church faced false teachers internally and external persecution, so much so that Timothy suffered from stomach troubles (1 Timothy 5:23). According to 2 Timothy 1:4, “recalling your tears,” he was someone who shed many tears.
During the first missionary journey, Paul set out from Antioch with Barnabas and Mark, traveling through various regions to proclaim the gospel. In Lystra, he healed a man lame from birth, and the locals attempted to deify Paul and Barnabas. Paul firmly corrected their error and kept preaching, which incited some jealous Jews to stone Paul, leaving him for dead. However, God “raised him up” (Acts 14:19–20). The name “Lystra” means “a flock of sheep,” yet it was a place where Paul suffered greatly and then experienced a miraculous recovery. On the second missionary journey, when Paul returned to that land, he met Timothy, whose name means “one who fears God.” Though Lystra was a place stained with Paul’s blood and tears, it was there that God introduced Timothy, a precious co-laborer.
First Timothy is believed to have been written around AD 63–65, after Paul’s two-year house arrest in Rome when he was briefly released. After his release, Paul embarked on further travels, leaving Titus on the island of Crete and Timothy in Ephesus. The Ephesian church was a major congregation where Paul had invested three years of intense pastoral work. It was a church that experienced significant revival, making it all the more crucial to safeguard. Meanwhile, Paul was eager to go even to Spain (Rom. 15:28) and pressed on to other mission fields. However, false teachers had infiltrated the Ephesian church and were causing confusion, so Timothy had to stay and straighten things out.
Reading through the opening of First Timothy, Pastor David Jang explained in detail the meaning and background of the letter Paul wrote to Timothy:
“Paul, an apostle of Christ Jesus by the command of God our Savior and of Christ Jesus our hope” (1 Tim. 1:1).
Here, the word “Savior” is sōtēr (σωτήρ, sōtēros in the genitive form) in Greek. This was a title customarily given to the Roman Emperor at that time, but Paul uses it for God, declaring that it is God, not the emperor, who is the true Savior of the world. Furthermore, Christ Jesus is “our hope” for both Paul and Timothy:
“To Timothy, my true child in the faith: Grace, mercy, and peace from God the Father and Christ Jesus our Lord.” (1 Tim. 1:2)
Paul refers to Timothy as his “true child in the faith,” emphasizing Timothy’s special place in his life. Also, whereas Paul frequently opens his letters wishing “grace and peace,” here in First and Second Timothy he adds “mercy” as well. In chapter 1, Paul deeply reflects on God’s mercy shown to him, a sinner.
Paul states that he left Timothy in Ephesus “so that you may charge certain persons not to teach any different doctrine” (1 Tim. 1:3). Certain people in the Ephesian church were devoting themselves to “myths and endless genealogies” (1 Tim. 1:4). These individuals, relying on the Old Testament and various traditions, exaggerated or misinterpreted myths and genealogies, diverging from the fulfillment of the gospel in Christ. Also, influenced by Gnosticism, some were causing arguments and disputes within the church.
A pastor has the responsibility to protect the church from “different doctrines.” Even in this age, various foreign ideologies—such as secularism—attempt to infiltrate the church and distort the essence of the gospel. Therefore, pastors, as those entrusted with the care of God’s people, must hold firmly to the gospel and faithfully teach its core truths. This is a fundamental pastoral calling.
Paul points out that those who indulge in myths, genealogies, and contentious discourse have fallen into “vain discussion” (1 Tim. 1:6–7). He explains that, although the law itself is good (1 Tim. 1:8), its role is to make sin known and point people to the gospel (1 Tim. 1:9–11). In other words, the law can condemn sinners but cannot save them; it is a guardian leading us to the gospel (cf. Gal. 3:24).
Paul then again refers to “the gospel of the glory of the blessed God” (1 Tim. 1:11) that he had received, and he expresses his gratitude for having been entrusted with this gospel:
“I thank him who has given me strength, Christ Jesus our Lord, because he judged me faithful, appointing me to his service” (1 Tim. 1:12).
Pastor David Jang emphasized this verse in particular. Paul regarded the responsibility of his calling not merely as a burden but as an occasion for gratitude. He considered it a joy and a privilege that someone so undeserving—who was not even worthy of salvation—had been chosen for this immense task of “pastoral” ministry.
Continuing, Paul confesses,
“though formerly I was a blasphemer, persecutor, and insolent opponent. But I received mercy…” (1 Tim. 1:13).
He discloses how he once opposed Jesus Christ and took the lead in destroying the church. Recognizing that he, sinful and weak, received mercy, he can say,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 of whom I am the foremost” (1 Tim. 1:15). This humble admission resonates powerfully with both pastors and believers.
Quoting this verse, Pastor David Jang insisted that “all pastoral ministry begins with the recognition that we are sinners.” A pastor who does not truly grasp that they themselves have been forgiven and shown mercy cannot lovingly serve the church community. Like the expression “wounded healer,” only those who know what it is to be forgiven and to weep in repentance can embrace and care for the sins and wounds of others.
Paul continues,
“But I received mercy for this reason, that in me, as the foremost, Jesus Christ might display his perfect patience as an example to those who were to believe in him for eternal life” (1 Tim. 1:16).
Paul believes he, the worst of sinners, was shown mercy to serve as a model for all who would later believe and receive eternal life. In other words, the gospel’s power is proven by the fact that it not only saves the unworthy and broken but also uses them.
Pastor David Jang underscored how practical and crucial this exhortation is for real-life ministry: “wage the good warfare” (1 Tim. 1:18). In actual pastoral settings, this can be both painful and beautiful. You must guard the church from “different doctrines,” preserve the gospel’s essence, care for believers in love, and work in teams with fellow workers who share in weeping and rejoicing. Sometimes, though, there are those whose “faith is shipwrecked” (1 Tim. 1:19–20), and you must bear that pain. Such is the reality of ministry.
Paul concludes the chapter by giving “honor and glory” to “the King of the ages, immortal, invisible, the only God” (1 Tim. 1:17). Pastor David Jang stated that this is the ultimate goal of both ministry and faith. Ultimately, our life and service aim to glorify God, and that glory is possible not because of who we are, but because of the Lord’s mercy and grace.
2. Ministry Built on Mercy
Pastor David Jang then highlighted “ministry” as the overarching theme of First Timothy, and specifically the “mercy” that underpins it. In chapter 1, Paul first explains why the church must be guarded, i.e., how dangerous false teachings can be. In the end, he concludes that the driving force of ministry is the mercy of God. Recalling that he was the foremost sinner who received mercy, Paul teaches that a pastor must remember and testify to the mercy they have received, thereby caring for the congregation.
Pastor David Jang stressed that this is the power that brings forth “love.” First Timothy 1:5 declares, “The aim of our charge is love that issues from a pure heart and a good conscience and a sincere faith.” The ultimate purpose of all teaching and warning in the church is none other than “love.” And love flows naturally when we deeply realize the great mercy we have received from the Lord. This is the essence of shepherding.
A pastor must pay close attention to everything that happens inside and outside the church. This includes worldly influences that disrupt the church, false teachers within who promote erroneous doctrines, pointless debates, and even the weariness of unnamed servants who sacrifice themselves for the church. Addressing all of these requires humility and tears. As Acts 20:17–19 shows, when Paul took leave of the Ephesian elders, he said he served the Lord “with all humility and with tears.” Likewise, Pastor David Jang repeatedly said, “Pastoral ministry is tears.” Timothy, who was timid, tearful, and even suffered from stomach problems, was precisely the one God chose to place in the pastoral field—an example of how God uses “what is weak to shame the strong” (1 Cor. 1:27).
Additionally, Pastor David Jang mentioned that ministry must be carried out in teams. Beyond Timothy and Titus, Paul had many co-laborers: Silas, Luke, Aquila and Priscilla, Epaphras, and many more who were all dedicated to preaching the gospel and building up church communities. A church must never become a one-man show. Its great strength lies in weeping together, rejoicing together, and bearing one another’s burdens.
He also emphasized that evangelism (missions) and shepherding (pastoral care) are inseparable. When the risen Lord directly gave His disciples their commission, He gave them the Great Commission: “You will be my witnesses to the end of the earth” (Acts 1:8). At the same time, He also said, “Feed my lambs” (John 21:15). During his first, second, and third missionary journeys, Paul constantly revisited the churches he had planted or established, sending letters to ensure they were thriving. Whenever the gospel is preached, it reaches people; nurturing these people and guiding them is the heart of shepherding.
Shepherding is love. Without love, there can be no true shepherding. According to First Timothy 1:5, this love “issues from a pure heart and a good conscience and a sincere faith.” On the other hand, the love found in Scripture is not simply a result of our striving or hard work; it originates in grasping how God first showed mercy to us, though we were sinners. That is why Paul keeps recalling, “I am the foremost” of sinners. Because he continually remembered who he had been, and the unfathomable grace of God, he was able to preach the gospel fervently while simultaneously grieving over any possibility that a church might scatter or collapse.
It is for this reason that First and Second Timothy and Titus, among Paul’s letters, are so important, for they offer specific pastoral directives and insight into Paul’s pastoral philosophy. Reading First and Second Timothy and Titus, we learn about the qualifications for church leadership, how to interact with congregants, the priority of worship and prayer, how to respond to false teachers, and the order of the church. These are foundational truths that guide how modern pastors—like Pastor David Jang—should conduct ministry.
Tying these points back to First Timothy 1, Pastor David Jang noted that even when a church is shaken, the phrase “I remember your tears” (2 Tim. 1:4) suggests that a pastor’s tears are not a sign of weakness, but rather a holy offering to protect the congregation. Paul earnestly hoped Timothy would never give up. He reminded him that both he (Paul) and Timothy had received mercy, and in that remembrance, they would encourage one another.
The most fundamental driving force in ministry is grace and mercy. Those who have received grace and mercy become thankful stewards of God’s church. That is why Paul says, “He judged me faithful, appointing me to his service” (1 Tim. 1:12). A pastoral or ministerial office is not some position you seize through achievement or merit. When you receive a post in the church, whether you treat it as an honor and privilege, or merely a burden, will determine your fundamental attitude toward ministry. Paul, once a fierce persecutor of the church, was appointed by God’s mercy to be a preacher of the gospel. That fact alone made him grateful every day, and that gratitude became the source of his ministry.
Thus, even when encountering individuals who harbor hostility toward the church or who disrupt it, pastors must attempt correction. If that fails, they must take firm measures to preserve the church’s holiness. In First Timothy 1:19–20, Paul mentions Hymenaeus and Alexander as examples of those who made “shipwreck of their faith.” Paul says, “I have handed them over to Satan that they may learn not to blaspheme.” Though he likely tried to embrace them in love, they persisted in attacking the church and distorting the gospel, leaving no choice but expulsion. Such resolve is also needed in real ministry.
In short, pastoral ministry is not easy. In countless sermons and lectures, Pastor David Jang has repeatedly said, “Pastoral ministry is the precious work of tending the body of Christ, yet it cannot be done without tears.” We can glimpse the reality of ministry in the relationship between Paul and Timothy and between Paul and Titus. Teaching that lacks a foundation of love eventually leads to divisions and conflict. But when teaching is rooted in love, sustained by grace and mercy, it revitalizes souls and strengthens the community.
Today, the church faces numerous challenges. Secularism, pluralism, materialism, and humanism all attempt to dilute the truth of the gospel. Within the church, theological errors and selfish ambitions also arise, causing divisions among believers, compounded by the post-COVID slump. Now more than ever, we should seek wisdom from these instructions Paul gave Timothy 2,000 years ago. Ultimately, everything hinges on the love that springs from God’s grace and mercy. We must not abandon “the good fight of faith” (1 Tim. 1:18).
After His resurrection, the Lord said in John 21, “Feed my lambs,” and in Acts 1:8, “You will be my witnesses to the end of the earth.” These two commands cannot be separated, and many co-workers—like the Apostle Paul and his team—poured out tears and dedication as they engaged in both missions and pastoral care. Those who have been entrusted with the church must remember that they themselves have received mercy, love the flock, and carry the gospel to the ends of the earth.
Pastor David Jang has continued to exhort pastors and congregations worldwide, including in Korea, to maintain a biblical foundation and a correct attitude toward these two tasks (missions and shepherding). Every time we open First Timothy, we should give glory to God our Savior and remember with gratitude the “mercy” that came to us, the foremost of sinners. That gratitude should free us from meaningless debates, genealogies, and hollow words, enabling us to build up the church, resolve confusion, and guide people to life through genuine love.
First Timothy 1 shows Paul telling Timothy, “Guard the church, defend the gospel, and never forget that you, too, were once the foremost sinner who received mercy.” Paul’s vision of ministry is not adorned with lofty rhetoric. It is not preoccupied with myths or genealogies or complex reasoning. At its heart lies the love that springs from the Lord’s grace and mercy. Therefore, modern church leaders and believers must constantly revisit the basics of ministry and strive to make the church community a place of love and grace rather than contention and argument.
The reason this task is not easy is that even a major church like Ephesus faltered, and today’s churches face no fewer difficulties. Yet just as Paul was able to rise again, just as Timothy endured despite his frailties, so will those who cling to God’s love and mercy find the strength to persevere. With that strength, we can establish our churches firmly and, in obedience to the command of our Savior God and our hope Christ Jesus, take the gospel to the ends of the earth. This, according to Pastor David Jang, is the true substance of “the proper posture toward ministry, missions, and the end times.”
Hence, we see that John 21 and Paul’s counsel to Timothy form a continuous thread. The commission of the risen Lord and Paul’s exhortation to uphold the church both serve as foundational pillars of pastoral theology. The church must lovingly care for the flock, guard itself from deceptive doctrines, and prepare for the Lord’s return. Throughout all of this, as Pastor David Jang’s messages repeatedly affirm, we must remain rooted in “the mercy of God.” The mercy that saved us from our sins is the eternal power that sustains both evangelism and pastoral c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