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네 복음서에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으며(마 26:6-13; 막 14:3-9; 눅 7:36-50; 요 12:1-8), 특히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주간에 벌어진 일로 복음서 기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이 본문에 대한 묵상을 통해,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떠한 사랑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먼저 마가복음 14장 3절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셨습니다. 헬라어 본문에서 ‘나병환자’로 번역된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흔히 말하는 문둥병(leprosy)을 가리키는 말과 동일하게 쓰이지만, 오늘날 임상적 의미의 한센병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문둥병은 ‘부정하다’ 혹은 ‘하나님께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두 가지라고 말합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부정’하다고 여겨지던 자와 기꺼이 식탁을 나누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나병환자는 공동체로부터 격리되고, 성전 출입은 물론 일반인들과 정상적으로 교류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율법적·종교적 장벽을 뛰어넘어 사람을 온전히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셨음을 드러냅니다. 장재형 목사는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고, 치유하시는 모습은 곧 복음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표징”이라고 해석합니다.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며, 그 소식은 죄인과 병자와 연약한 자를 향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격리되어야 마땅한 이가 예수님의 식탁에 동참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복음의 실제 구현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시몬이라는 이름의 함축적 의미입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시몬이라는 이름은 매우 흔하긴 했지만(베드로의 본래 이름도 시몬), 마가복음에서 “나병환자 시몬”이라고 특정하여 적어 놓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에 대해 ‘시몬’이라는 이름이 복음서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임을 상기시키면서, 베드로의 본래 이름이 또한 시몬이었음을 연결 지어 묵상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죄인이나 병자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적용된다는 복음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문둥병은 당시 ‘하나님으로부터의 심판’ 혹은 ‘영적인 부정함’으로 이해되곤 했는데, 예수님께서 그런 시몬과 식사를 나누심으로써, 그를 향한 ‘완전한 용납’을 선언하신 셈이 됩니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가 모두 영적으로 문둥병자였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또한 죄와 허물로 죽었고,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부정한 자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그분의 식탁에 초대되어 함께 교제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이라는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장소에서, 한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 값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막 14:3). 이 여인에 대해 마태복음은 “한 여인”이라고 서술하고, 마가복음도 동일하게 “한 여인”이라고 언급하며, 누가복음은 “죄를 지은 한 여인”이 바리새인 시몬(동명이인 가능성) 집에서 예수님께 나와 울며 향유를 부었다고 전하고, 요한복음은 이 여인을 ‘마리아’라고 명시합니다. 복음서 저자들의 기록은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핵심적으로는 “매우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드렸다”는 동일한 사건 혹은 유사 사건을 전하면서, 그 여인의 행위가 지닌 사랑과 헌신의 의미를 깊이 부각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나드’라는 향유의 의미를 주목합니다. 나드는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채취되는 식물 뿌리에서 추출되는 고급 향유로, 당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매우 귀하고 비싼 기름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한 옥합을 사려면 삼백 데나리온이라는, 서민들이 거의 일 년간 일해야 벌 수 있는 거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향유 옥합 전체를 깨뜨려 예수님께 쏟아 부었다는 것은 그 여인이 지닌 ‘모든 것’을 드렸다는 상징적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주님 앞에서 이 여인은 가장 귀한 것을 내어놓았다. 그녀는 예수님의 임박한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분이 참된 왕이심을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사랑이란 대가나 계산을 따지지 않습니다. 오직 ‘아낌없이 주는 행위’ 자체가 사랑의 본질임을 이 사건이 증언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여인의 행동에서 우리는 무조건적인 사랑, 혹은 ‘조건 없는 헌신’을 발견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두고 “참된 제자도는 언제나 허비처럼 보이는 사랑에서 꽃핀다”라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 여인의 행동은 매우 비합리적이고 낭비처럼 보이지만, 복음서 전체 맥락 속에서는 그 사랑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비하는 예언적이고 상징적인 행위였음을 알게 됩니다. 고대 근동 문화에서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왕이 되거나 제사장이 되는 등 아주 특별한 직무를 맡을 때 이루어지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지극한 사랑을 통해 예수님이 진정한 ‘기름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이심을 선포하는 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7장 38절에서는 이 여인이 울며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고,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신 뒤 자신의 머리털로 닦는 모습이 강조됩니다. 이는 죄인인 자신이 감히 예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예수님의 거룩한 사랑을 신뢰하는 믿음으로써 자신을 가장 낮추어 헌신하는 태도를 상징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여인이 흘렸던 눈물에 주목하며, 이는 죄와 연약함 속에서도 용납하시는 예수님의 긍휼에 대한 감사와, 동시에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경외하는 분의 죽음을 예감하는 슬픔이 뒤섞인 울음이었을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이처럼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벌어진 옥합 파쇄 사건은, 장소 자체의 의미(부정했던 자가 치유되고 예수님과 함께 식사함)와 여인이 드러낸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가장 귀한 기름을 깨뜨려 부음)이 맞물려 예수님의 참된 메시아적 정체성과 복음의 의미를 풍성하게 보여줍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사랑의 사건이 복음 자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 즉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을 드러낸다고 강조합니다. 만약 우리 안에 계산하고 따지는 시선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이 여인이 보여준 사랑을 오히려 ‘낭비’ 혹은 ‘허비’라고 판단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고전 1:25)고 선언하며, 세상의 기준으로는 낭비처럼 보이는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의 지혜이자 구원의 능력임을 알려 줍니다.
결론적으로, 장재형 목사는 베다니에서 벌어진 이 사건이 “가장 낮은 곳, 가장 버림받은 자의 집에서 가장 값진 사랑이 펼쳐진 복음의 진수”라고 이야기합니다. 문둥병으로 인해 격리될 수밖에 없었던 시몬이 회복되어 주님과 식사를 나누었고, 죄인으로 여겨졌던 한 여인이 그 집에서 가장 귀한 기름을 깨뜨려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실제이며, 주님께서는 이런 사랑을 지금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계산적이지 않고, 허비처럼 보이는, 무조건적이고 대가 없는 사랑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자들과 가룟 유다의 시각
한편, 복음서에서 이 옥합을 깨뜨린 사건 직후 혹은 중간에, 제자들의 반응과 가룟 유다의 배반이 언급됩니다(마 26:8-16; 막 14:4-11; 눅 22:3-6; 요12:4-6). 특히 마가복음 14장 45절에 보면,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향해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라며 분노합니다. 마태복음 26장 8절은 이 ‘어떤 사람들’을 ‘제자들’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혔고, 요한복음 12장 45절은 이를 더욱 좁혀 가룟 유다라고 지목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바리새인 시몬이 이 사건을 곁에서 지켜보며 예수님이 진짜 선지자라면 죄 많은 여인이 자신께 다가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즉,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낭비’ 혹은 ‘헛된 열정’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여러 모양으로 복음서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에 대해 “사랑을 진정으로 경험하지 못한 자에게는, 진실한 사랑의 행위가 때로 ‘허비’로 보일 수 있다”고 진단합니다. 제자들과 유다는 매일 예수님 곁에서 말씀을 들었고 여러 기적의 현장을 목격했지만, 그 사랑의 본질을 온전히 깨닫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특히 요한복음 12장 4~6절은 유다가 향유를 낭비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로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을 텐데!”라고 외친 것이, 실상은 돈궤를 맡고 있던 유다가 거기서 돈을 빼돌리려는 악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장면을 가리켜, “사랑의 세계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이 결국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의도를 드러내는 법”이라 지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항변에 대해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막 14:6)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여인의 행위를 크게 기뻐하셨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제자들의 태도를 책망하시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위가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요,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영원히 기념될 것이라 선언하십니다(막 14:8~9).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같은 사건, 같은 장면을 보고도 왜 누군가는 하늘의 비밀을 깨닫고, 누군가는 허비로만 보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담긴 마음을 지닌 자는 기꺼이 옥합을 깨뜨리고도 아깝지 않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고 주님을 향한 시선이 계산적으로 바뀐 자에게는 모든 것이 낭비처럼 보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방법만을 궁리하게 됩니다.
가룟 유다는 이 사건 이후에 ‘결정적인’ 변곡점을 맞이합니다. 복음서의 기록에 따르면, 유다는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은화 서른에 예수님을 넘겨주는 일에 대해 합의합니다(마 26:14-16; 막 14:10-11; 눅 22:3-6). 요한복음 13장 2절에서는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기록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게 된 계기를 깊이 묵상할 때, 바로 ‘향유 옥합 사건’이 그의 배반을 확고히 한 시발점이라고 설명합니다. 유다는 자신이 믿고 따르던 스승이 이토록 엄청난 낭비 행위를 용납하시는 모습을 보고, 더는 예수님이 자신이 꿈꾸던 ‘메시아 왕국의 길’을 걷고 있다고 믿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한마디로 유다는 “이분이 진정한 지도자라면, 이렇게 재정을 낭비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왜 허비하시는 것인가?”라는 자기 논리를 세웠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미 물질에 대한 탐심이 싹트고 있었고,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틀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사역을 재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뜻과 사랑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배반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제자들 중에서 유다는 가장 극단적으로 배반의 길을 택했지만, 사실 다른 제자들도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행동을 낭비로 보고 핀잔하였습니다(마 26:8). 장재형 목사는 이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반면교사가 된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예수님을 알고 따른다고 해도, 여전히 사랑보다는 계산과 이익을 먼저 따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앞두고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를 다투었고(눅 22:24), 주님이 잡히시자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으며(막 14:50),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상황으로 내몰립니다(막 14:66-72). 사랑의 주님 앞에서조차 자기만의 잣대와 이익을 놓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장재형 목사가 반복해서 강조하듯 “우리 모두의 거울”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유월절 만찬이 끝난 뒤 그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한다”(요13:1 참조)고 몸소 보여주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자들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선뜻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한 ‘죄인 여인’은 전 재산과도 같은 옥합을 깨뜨려 주님을 기름부음으로써 죽음과 장례까지 준비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것이며, 그것이 때론 허비처럼 보여도 그것을 통해서 진정한 영광이 드러난다”는 진리를 재차 환기시킵니다. 제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세상의 논리에 갇혀 있었고, 유다는 탐심에 이끌려 배반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그런 허물 많고 연약한 인간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선언합니다.
따라서 장재형 목사는 제자들과 유다의 반응을 깊이 묵상하면서, “내 안에는 혹시 그러한 모습이 없는가?”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예배 자리에 가까이 있으며, 말씀을 많이 들었다 할지라도, 그 심령 깊은 곳에 계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남아 있다면, ‘옳고 그름’을 내세우면서 진정한 사랑과 헌신을 ‘낭비’로 여길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가장 비극적인 형태로는 유다처럼 주님을 배반하는 자리까지 이르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주님을 배반하는 것은 단지 외형적인 ‘예수 팔아넘김’만을 뜻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 혹은 신앙생활 속에서 사랑을 허비하는 마음을 거절하고 손익계산만 내세운다면, 이미 우리 심령 안에 사랑의 주님을 배반하는 씨앗이 자라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복음의 핵심으로서의 허비의 사랑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행위를 두고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막 14:9)고 하신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그 여인의 행위가 복음 메시지와 불가분한 관계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논리로 보면 허비요 낭비처럼 보이는 사랑이야말로 ‘복음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두고 “복음이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거룩한 낭비, 즉 독생자를 기꺼이 내어 주신 사랑”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의 제물로 아낌없이 허비하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구원을 선물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허비’라는 관점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 이하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바울의 선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세상적 가치관으로 보면 십자가는 이해 불가능하고 결코 합리적이지 않은 ‘낭비’에 가깝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굳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죄인을 위해 죽으셔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지혜’가 바로 그곳에 담겨 있다는 것이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모든 향유를 쏟아 부은 사건 역시 “주님 앞에서 낭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진정으로 복음의 깊이를 경험할 수 있다”는 상징적 메시지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단지 옛날 어느 동네에서 일어난 아름다운 장면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각자의 신앙과 삶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과연 얼마나 ‘전부를 드리는 사랑’이며, ‘허비처럼 보일 정도의 사랑’인지를 점검하게 만듭니다. 장재형 목사는 구체적인 예로써, 우리의 시간과 재정, 재능, 그리고 헌신의 태도를 들려줍니다. 시간을 쪼개어 예배하고 기도하며, 재정을 아낌없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며, 재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드리는 행위가 때론 주변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 적당히 하지.”라는 핀잔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그런 말을 들어도 기꺼이 주님께 드리는 자리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장재형 목사는 특별히, “우리의 예배가 형식이 되거나 습관에 그치지 않으려면, 옥합을 깨뜨리는 심정으로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올려 드리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예배 시간에 정성껏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열정 과잉’으로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사랑의 표현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선교와 구제에 힘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많은 돈과 에너지를 들여 해외 선교를 하는가?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결국 복음의 본질은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사랑은 ‘지역’과 ‘조건’을 초월하기에, 어느 편에만 제한되지 않는 허비가 요구됩니다.
또한 장재형 목사는 옥합 파쇄 사건이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의미가 있음을 지적합니다(막 14:8). 예수님께서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속죄의 제물이 되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이루실 터인데, 이 여인은 누구보다 예수님의 ‘미래’, 혹은 ‘운명’을 사랑의 마음으로 내다본 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미래를 알게 된다”는 말처럼, 그녀는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했기에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암시를 직감했는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조차 “주여,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부인하거나(마 16:22), 십자가의 길을 모른 채 다투고 있을 때(막 10:35-45), 여인은 잔치석에 와서 옥합을 깨뜨리는 과감한 순종을 통해, 예수님의 ‘진정한 길’을 헤아려 드렸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점에서 “사랑은 영적 통찰력의 열쇠”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지적 이해나 신학적 지식만으로는 알 수 없는 예수님의 길을, 사랑을 통해 직감하고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복음의 핵심이 ‘사랑의 허비’라는 사실을 놓치면, 쉽게 제자들이나 유다처럼 타산적 관점에 빠져 서로를 비난하고 분쟁에 휩싸일 수 있다고 합니다. 누가 얼마나 봉사하느냐, 헌금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 교회 활동에 열심이냐를 두고 비교하거나, 때로는 누군가의 헌신을 놓고 “왜 저렇게 과한가?”라는 불편함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선포되는 진정한 공동체라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아낌없이 쏟아 부은 여인을 기념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서로의 헌신과 사랑을 기뻐하며 한마음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복음 전파의 목적은 단지 교세 확장이나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바로 이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삶으로 구현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이웃에게 복음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으셨듯이(요 12:24), 우리 또한 주님을 닮아 스스로 허비되는 결단을 내릴 때, 세상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되고 하나님 나라의 실제가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이야기는 모든 복음서 저자들이 각기 다르게 기록했음에도 공통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사랑은 절대 낭비가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랑을 잃어버린 이들에게는 낭비로 보이겠지만,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허비처럼 보이는 그 사랑이야말로 생명과 구원의 원천인 것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본문을 인용하며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전능한 하나님이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방법을 택하신 최고의 사랑이며, 그 사랑을 받아들인 이들은 기꺼이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향유를 부어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세상적 시선에는 낭비로 보일지라도, 바로 그 허비 안에 복음의 능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결단은, 삶의 구체적인 지점에서 ‘옥합을 깨뜨리는 용기’를 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여전히 계산과 이성적 판단, 그리고 손익을 따지는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실제로 경험했다면, 그리고 장재형 목사가 말하듯이 “우리가 본래 영적으로 문둥병자였고 주님께서 치유해 주셨음”을 깨달았다면, 이제 주님께 우리의 옥합을 깨뜨려 드리는 것이 결코 아깝지 않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옥합이 우리의 재물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고, 재능이나 미래의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자신의 자존심이나 세상의 지위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주님보다 더 귀히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깨뜨려’ 주님께 내어드릴 때, 그 헌신이야말로 가장 향기로운 예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세 번째 소주제에서 장재형 목사는 이렇게 요약합니다. 복음은 ‘사랑의 허비’로 완성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며, 그 구원에 동참하는 길 역시 우리가 기꺼이 자신을 허비하는 사랑의 결단으로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바로 “주님이 나를 위해 먼저 허비해 주셨다”는 진실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장 훌륭한 옥합 파쇄의 사건이었던 셈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기에, 이제 우리는 그 사랑을 알고, 또 다시 그 사랑을 주님과 이웃에게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나 병든 자에게나, 혹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때로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에게까지도, 우리는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향유를 부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헌신은 절대로 헛되지 않고,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기억되고 기념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셨습니다.
이상으로 살펴본 세 소주제—(1)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과 옥합을 깨뜨린 여인에 대한 장재형 목사의 묵상, (2) 제자들과 가룟 유다의 시각에 대한 경고, (3) 복음의 핵심으로서의 허비의 사랑과 오늘날의 적용—를 통해 우리는 이 사건이 단순히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복음의 정수(精髓)를 담은 중대한 선언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옥합 사건은 곧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그 사랑 앞에 우리가 어떠한 헌신을 드려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묻고 계신다. ‘너는 과연 옥합을 깰 준비가 되어 있느냐?’”라고 질문하며, 그 대답을 통해 우리가 복음의 깊이를 체험하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답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옥합을 깨뜨려 주셨고, 그 안에 담긴 무한한 사랑을 부어주심으로써, 우리도 기꺼이 옥합을 깨뜨릴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큰 사랑은 항상 ‘허비처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허비야말로 세상을 살리는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계산적인 제자들과 유다의 모습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베다니 문둥이 시몬처럼 치유와 용납의 은혜를 입은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감사와 사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우리 삶의 가장 귀한 것들을 헌신의 예배로 바쳐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장재형 목사가 본문을 통해 거듭 일깨우는 복음의 핵심이며, 성도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제자도의 길입니다. 그렇게 허비하는 사랑을 ‘미련하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을지라도, 주님께서는 그 사랑을 결코 외면치 않으시며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함께 기억하겠다”고 약속하셨음을 붙들고, 우리 모두 옥합을 깨뜨리는 삶을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Le pasteur David Jang explique de manière concrète pourquoi nous devons prier et comment nous devons prier, en repassant point par point sur le sens contenu dans la prière du Notre Père. Il souligne d’abord que « notre prière a un but précis et un ordre établi » et met l’accent sur le fait que, dans la première partie du Notre Père, deux requêtes sont mentionnées en premier : que le nom de Dieu soit sanctifié et que le règne de Dieu vienne. Selon lui, ces deux requêtes correspondent à la « raison même de l’existence de l’homme » et à « notre objectif en tant qu’êtres vivants ». Autrement dit, notre vie doit rendre gloire à Dieu et contribuer à l’avancement de son règne sur terre. Toutefois, puisque nous sommes limités et ignorants, il nous arrive de ne pas savoir quoi demander dans la prière. Dans ce contexte, le Notre Père devient le modèle et le cadre de prière que Jésus lui-même nous a enseigné.
Le pasteur David Jang affirme que le Notre Père n’est pas simplement une « prière récitée par cœur », mais une prière très importante qui nous amène à intérioriser la manière même de prier. Beaucoup ne savent pas vraiment ce qu’est la prière ou comment formuler leurs requêtes devant Dieu ; ils finissent souvent par tourner en rond, ou ne prient que pour des besoins quotidiens et triviaux. Mais en comprenant correctement le Notre Père et en le méditant, on saisit clairement la structure fondamentale : « d’abord rechercher la gloire de Dieu et son règne », puis demander d’une manière équilibrée notre pain quotidien et ce dont nous avons réellement besoin.
En citant Romains 8 (« Nous ne savons pas ce qu’il convient de demander dans nos prières, mais l’Esprit intercède pour nous par des soupirs inexprimables »), il souligne à quel point l’être humain est faible et combien il dépend de l’assistance du Saint-Esprit pour prier. Le don des langues ou leur interprétation en est un aspect : cela facilite la communication avec Dieu. Toutefois, il insiste aussi sur l’importance de la prière intelligible : « Si le parler en langues est un don merveilleux qui nous permet de prier Dieu dans un langage que nous ne comprenons pas, la prière avec notre intelligence, nos émotions et notre volonté, afin de la formuler clairement devant Dieu, est tout aussi précieuse ». Citant 1 Corinthiens 14 :19 (« Dans l’Église, je préfère dire cinq paroles avec mon intelligence plutôt que dix mille paroles en langue »), il enseigne qu’il peut être bien plus bénéfique de prier en étant conscient de ce que l’on demande et de son sens.
Ainsi, en étudiant la structure et la signification profondes du Notre Père, le pasteur David Jang rappelle avoir déjà abordé les première et deuxième requêtes, « que ton nom soit sanctifié » et « que ton règne vienne », ainsi que la requête « donne-nous aujourd’hui notre pain quotidien ». Il met en avant que c’est Dieu qui pourvoit à tous nos besoins, et qu’il est le « bon Dieu qui récompense ceux qui le cherchent et répond à ceux qui le prient ». Comme le dit Jésus dans Matthieu 7 :9-10 (« Lequel d’entre vous donnera une pierre à son fils, s’il lui demande du pain ? Ou bien, s’il demande un poisson, lui donnera-t-il un serpent ?»), nous avons raison de faire confiance en Dieu, car il nous donne ce qu’il y a de meilleur.
Mais la prière n’est pas une simple énumération de vœux ; il faut d’abord savoir « qui est Dieu ».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que « la plus grande raison pour laquelle les gens ne croient pas en Dieu, c’est qu’ils ne savent pas qu’il est véritablement bon ». L’être humain se sent en confiance envers quelqu’un lorsqu’il fait l’expérience de la bienveillance répétée de cette personne ; ainsi, pour un enfant, la « bonne personne » qu’il identifie d’abord est souvent sa mère. De même, beaucoup ne croient pas en Dieu parce qu’ils ne le connaissent pas bien. Il insiste donc sur l’importance de montrer, dans l’Église comme à la maison, que « Dieu est réellement bon ». Comme on le chante parfois dans le cantique « Dieu est bon », il s’agit d’intégrer l’idée que Dieu nous nourrit, nous habille et nous lave, de manière à ce que cette image devienne familière.
Le pasteur David Jang porte ensuite son attention sur la scène où les disciples demandent à Jésus : « Seigneur, apprends-nous à prier ». Les disciples de Jean-Baptiste, comme toutes les écoles religieuses juives, avaient leur style de prière ; ainsi, les disciples de Jésus avaient besoin d’apprendre à prier selon leur Maître. Le Notre Père est précisément ce résumé le plus complet de la prière, ce condensé de toutes les dimensions de la prière que Jésus nous a enseigné. Il englobe la glorification de Dieu, la demande de pain quotidien pour nos besoins, et le pardon de nos péchés ainsi que celui envers autrui. Et c’est sur cette notion de « demander et offrir le pardon » que porte le cœur du message à ce stade du discours.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sur l’importance du fait que, dans le Notre Père, la requête du pardon arrive juste après la demande du « pain quotidien ». En somme, l’être humain qui reçoit de quoi subsister et s’épanouir de la part de Dieu est ensuite appelé à pardonner et à recevoir le pardon à son tour. Cet enchaînement suggère qu’une fois qu’une personne, symbolisant le croyant, a reçu abondamment la provision divine, elle doit passer à l’étape suivante : « pardonner aux autres et être pardonnée ». Étant donné la structure progressive du Notre Père, il encourage à ne pas se contenter de le réciter mécaniquement, mais à en saisir la profondeur et à la mettre en pratique.
Pour illustrer l’importance du pardon, il évoque l’histoire de la femme surprise en adultère (Jean 8). Les religieux de l’époque soumettaient Jésus à un piège, demandant : « Faut-il lapider cette femme selon la Loi, ou non ? » Pendant ce temps, Jésus écrit quelque chose sur le sol. Le pasteur David Jang suppose que Jésus y a peut-être tracé la « nouvelle justice » et la « nouvelle Loi ». Jésus ne méprise pas la Loi ; au contraire, il l’accomplit et l’élève à un niveau supérieur. Sans abroger la condamnation que la Loi prononce contre les pécheurs, il déclare : « Que celui qui n’a jamais péché jette la première pierre », amenant chacun à examiner son propre péché. Résultat : tous lâchent leurs pierres et s’en vont. Seul Jésus reste avec la femme, et il lui dit : « Moi non plus, je ne te condamne pas ; va, et ne pèche plus ». Ce geste de Jésus consiste en un « pardon qui libère » – rappelons que dans le texte original grec, « pardonner » signifie « laisser partir, relâcher ». Jésus, dépassant la sanction exigée par la Loi, proclame une justice d’un ordre nouveau.
C’est là le cœur du pardon que l’on trouve dans le Notre Père, et qui rejoint l’enseignement de Jésus : « Pardonne jusqu’à soixante-dix fois sept fois ». Avant de condamner et de s’emporter contre quelqu’un, il faut reconnaître qu’on est soi-même pécheur : « Comment pourrais-je condamner autrui, moi qui ai déjà été pardonné de tant de fautes devant Dieu ? » Puis, pour mettre en pratique cette « nouvelle justice et cette nouvelle Loi » qu’a apportées Jésus, il faut pardonner. Le pasteur David Jang rappelle que Jésus a aimé les personnes adultères, les meurtriers, les voleurs, les cupides ; en le voyant agir, on découvre le « cœur du Père », fait de compassion. Et cela se reflète naturellement dans l’ordre du Notre Père.
Il ajoute que « condamner un pécheur peut sembler relever de la justice », mais « la “nouvelle justice” que Jésus enseigne se situe à un niveau supérieur, celui de l’amour et du pardon ». Il ne s’agit pas de « fermer les yeux sur le mal », mais de s’élever au-delà de la Loi, jusqu’à son but ultime : l’amour et la miséricorde. Ainsi, en Jésus, on voit l’accomplissement de la volonté de Dieu. Il ne s’agit pas d’abolir la Loi, mais d’atteindre « le cœur de Dieu » qui en est la source. De plus, ce pardon ne s’arrête pas à un acte isolé ; il ouvre la voie à une vie renouvelée où l’on ne pèche plus, et où la grâce reçue se transmet aux autres. C’est le message que le pasteur David Jang tire de ce passage.
2. Au-delà de la Loi, la grâce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ensuite que l’humanité, ayant d’abord vécu à l’époque « sans Loi », est ensuite passée sous la Loi, pour finalement entrer à présent dans l’ère de la grâce grâce à Jésus. Le but de la Loi est d’amener l’homme à reconnaître son péché et à maintenir l’équilibre (l’égalité) et l’ordre au sein de la société. Par exemple, dans Exode 21, Lévitique 24 et Deutéronome 19, on trouve la loi du talion : « œil pour œil, dent pour dent », qui cherchait à rendre équitable la punition d’un péché. « La Loi vise la justice et l’égalité, et ainsi procure la paix sociale. »
Cependant, Jésus proclame une réalité qui dépasse cette Loi. Il enseigne : « Ne résistez pas au méchant ; si quelqu’un te frappe sur la joue droite, présente-lui aussi l’autre ; et si quelqu’un veut te forcer à faire un kilomètre, fais-en deux avec lui. » C’est un niveau bien plus élevé que celui du « œil pour œil ». Jésus révèle : « Vous ne pourrez pas entrer dans le Royaume de Dieu avec votre propre justice, mais le monde nouveau que j’apporte, où règnent l’amour, la miséricorde et la bienveillance, dépasse la Loi et en est l’ultime finalité. » Le pasteur David Jang qualifie cela d’« ère de la grâce » ou de « nouveaux cieux et d’une nouvelle terre ». Ceux qui y entrent ne suivent plus la logique de la vengeance, mais celle de la vie totalement renouvelée.
À ce point, il évoque l’histoire de Caïn et Abel dans l’Ancien Testament. Quand Caïn s’irrita à propos de l’offrande, Dieu lui dit : « Pourquoi es-tu irrité ? Le péché est tapi à ta porte ; mais toi, domine-le ! » Or Caïn ne surmonta pas sa colère et assassina Abel. C’est l’exemple même de la « période sans Loi » qui a produit le pire résultat de violence, manifestant la profondeur du péché humain. Malgré cela, Dieu vint trouver Caïn, comme il avait cherché Adam et Ève après leur faute : « Où es-tu ? » Alors que l’homme pécheur et coupable se cache et rejette la faute sur autrui, Dieu, lui, tend toujours la main.
À la question : « Pourquoi Dieu laisse-t-il le péché et Satan exister ? », le pasteur David Jang répond : « Satan, aussi puissant soit-il, ne peut rien face à l’autorité absolue de Jésus, qui lui ordonne de sortir ou d’entrer à sa guise. Tant que nous demeurons en Christ et vivons selon sa Parole, Satan ne peut nous faire de mal. » Le vrai problème, c’est que l’homme ne se défait pas de sa nature pécheresse : orgueil, jalousie, irresponsabilité. Cette nature nous retient dans la « violence ou la Loi », alors que Jésus nous appelle à avancer d’un cran, en pardonnant, en libérant, et en choisissant même de supporter le tort subi pour sauver l’autre. C’est « la nouvelle Loi » qu’il nous a enseignée.
Le pardon, précise-t-il, ce n’est pas « considérer qu’un mal est bon », mais c’est « refuser de se venger, même si on a subi un préjudice, et laisser partir l’offenseur ». Jésus nous exhorte « à pardonner jusqu’à soixante-dix fois sept fois », citant la parabole de Matthieu 18 où un serviteur endetté de dix mille talents est gracié par son maître, mais refuse à son tour de faire grâce à un homme qui ne lui doit que cent deniers. Le maître s’indigne : « Ne devais-tu pas, toi aussi, avoir pitié de ton compagnon, comme j’ai eu pitié de toi ? »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que voilà l’essentiel du pardon : nous sommes tous, devant Dieu, redevables d’une dette impossible à rembourser, et pourtant nous avons été graciés. Il est donc naturel, en retour, de montrer la même compassion envers ceux qui nous doivent peu.
Il enchaîne alors avec la parabole des ouvriers de la vigne dans Matthieu 20 : « Si tu as travaillé toute la journée pour un denier, et qu’un autre, arrivé à la onzième heure, touche le même salaire, comment réagirais-tu ? » Lorsque celui qui a travaillé depuis le matin s’en plaint, le maître répond : « N’ai-je pas convenu avec toi d’un denier ? Pourquoi regardes-tu d’un œil mauvais ma bonté ? » C’est une dénonciation de l’envie et de la jalousie « à la manière de Caïn ».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sur le fait que la grâce de Dieu dépasse toute logique humaine. Nous avons déjà reçu « une grâce immense » et n’avons pas à la « mesurer » ni à la « comparer » par rapport aux autres. Pardonner, c’est ainsi accepter de « libérer » celui qui nous a offensés ou qui nous est redevable. C’est, selon lui, le « cœur du Père » révélé par Jésus.
Dans la perspective de l’Ancien Testament où la justice consiste à punir le coupable et à dédommager la victime, cela peut paraître injuste. Cependant, Jésus nous dit : « Nous sommes tous redevables de dix mille talents. Dieu nous a pardonnés sans condition, alors faites de même pour autrui. » Il ne s’agit pas d’un simple acte de bonté ponctuel, mais d’un changement radical de racine et d’attitude, nourri quotidiennement par la récitation et la méditation du Notre Père. Nous qui étions portés à haïr et à nous venger, nous sommes désormais appelés à cheminer vers « l’amour des ennemis ». Et cela se manifeste clairement dans la partie « Pardonne-nous nos offenses, comme nous pardonnons aussi à ceux qui nous ont offensés » de la prière du Notre Père.
En conclusion de cette partie, le pasteur David Jang explique que ce n’est pas un hasard si, après la demande du pain quotidien, nous avons la requête : « Pardonne-nous nos offenses, comme nous pardonnons aussi à ceux qui nous ont offensés ». Celui qui reçoit du pain pour vivre doit naturellement manifester la miséricorde et le pardon. Il souligne également que Jésus a accompli la Loi en inaugurant une réalité plus vaste et plus profonde : « Vivez désormais dans cet univers riche de grâce ». Cela renvoie à la dynamique du Notre Père, qui va du don de Dieu envers nous à l’amour et au pardon à offrir autour de nous.
3. L’absolu de Dieu et son amour
Enfin, le pasteur David Jang élargit le propos, expliquant les implications spirituelles et théologiques de cette « nouvelle Loi » et de cette « nouvelle ère ». Il fait remarquer que, même aujourd’hui, la technologie et le monde changent de manière spectaculaire, mais que la transformation véritable part du cœur et des valeurs de l’être humain. On peut envoyer des hommes sur Mars, installer des satellites de communication, mais aucune technologie ne peut éliminer le péché dans le cœur de l’homme. Bien qu’on souhaite que l’Évangile soit annoncé partout, même si on le fait, « si l’on n’accueille pas le monde du pardon et de la bienveillance, les conflits, la jalousie, la violence et la persécution persisteront ». Mais Dieu veut que l’Évangile soit proclamé « jusqu’à la fin du monde », et le cœur de cet Évangile, c’est le pardon et la réconciliation.
À la remarque d’un enfant : « Pourquoi ne pouvons-nous pas voir Dieu ? », le pasteur David Jang répond en abordant l’absolu divin. Dieu est l’Être absolu qui voit en même temps le haut, le bas, la gauche, la droite, l’avant et l’arrière. En tant qu’êtres situés, nous ne pouvons pas le voir sous cet angle absolu. Cela indique que Dieu n’est pas de la même nature que nous, et que, peu importe la direction dans laquelle nous allons, nous restons devant l’Absolu immuable. Dans une époque marquée par le postmodernisme et le pluralisme religieux qui proclamait « l’inexistence de toute valeur absolue », il souligne néanmoins que sans absolu, l’homme est vite perdu et privé de sens. Pour les croyants, cet absolu, c’est Dieu, et la Parole de Dieu, laquelle soutient chacun de nous.
Partant de là, il conclut : « Si nous comprenons vraiment ce Dieu absolu, qui est amour, comment pourrions-nous ne pas pardonner aux autres ? » C’est précisément la raison pour laquelle le Notre Père nous demande à la fois de demander et de donner le pardon. Si nous avons déjà reçu et revêtu l’amour et la grâce de notre Père céleste, nous devons, à notre tour, aimer et pardonner. L’attitude d’Adam qui accuse Ève, ou celle d’Ève qui accuse le serpent, ou encore celle de Caïn envers Abel, subsistent en nous sous la forme du péché. Pourtant, Jésus est venu pour restaurer les pécheurs ; il est « l’Agneau de Dieu qui ôte le péché du monde » (Jean 1 :29) et a pris le chemin de la Croix.
Le pasteur David Jang fait aussi allusion aux débats théologiques, comme entre calvinisme et arminianisme, qui surgissent parfois dans l’Église, rappelant le chapitre 14 de l’Épître aux Romains : « que le fort ne méprise pas le faible, et que le faible ne juge pas le fort ». En effet, nous sommes tous choisis par la grâce souveraine de Dieu, et en même temps responsables de répondre par la foi. Derrière ces controverses doctrinales, le fait essentiel demeure : « Dieu nous a aimés inconditionnellement et a effacé notre immense dette, nous devons donc, nous aussi, pardonner aux autres ». Les paraboles des ouvriers de la vigne en Matthieu 20 ou du fils prodigue en Luc 15 illustrent la bonté divine, qui dépasse de loin notre compréhension. Après avoir reçu cette grâce, il est tentant de nous plaindre : « Pourquoi être aussi généreux avec les autres ? », mais c’est une posture semblable à celle de Caïn, un refus du « monde nouveau » dont Jésus parle.
Au final, le pardon que Jésus nous enseigne dans le Notre Père n’est pas facultatif pour le croyant : c’est un engagement pratique et incontournable. « De même que Dieu a effacé nos dettes, nous devons effacer celles de nos frères. » Loin de la logique légale qui voudrait qu’on jette en prison le débiteur afin de rétablir l’équilibre, nous nous souvenons humblement que nous-mêmes avions une dette immense totalement annulée par Dieu. C’est là tout le sens du pardon. Le pasteur David Jang le définit comme « le cœur de Dieu ». La Loi d’autrefois disait : « œil pour œil, dent pour dent », mais Jésus dit : « Aimez même vos ennemis ». Voilà l’invitation du Seigneur : entrer chaque jour dans la prière en considérant le pardon comme un sujet majeur, et renoncer à nos rancunes ou colères pour suivre l’exemple de son amour sacrificiel.
Lorsque nous disons que, par la foi, nous sommes entrés dans « l’ère nouvelle, l’ère de la grâce », cela signifie vivre sous le signe du pardon, de la réconciliation et de l’amour. Ce n’est plus se satisfaire de la réparation légitime du dommage subi ; c’est imiter Jésus, qui a tout donné pour sauver même ceux qui l’avaient offensé. Il n’a pas condamné la femme adultère, mais lui a simplement demandé de ne plus pécher. Il a tendu la main à tous les pécheurs pour leur offrir la repentance et la restauration. Dans notre vie quotidienne, nous sommes appelés à nous souvenir en permanence de ce message et à mettre en pratique la parole : « Si quelqu’un te frappe sur la joue droite, présente-lui aussi l’autre ».
Tout au long de sa prédication,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que, malgré la présence persistante de la lâcheté et de la violence (les traits d’Adam et de Caïn) en l’homme, nous sommes devenus de nouvelles créatures par le sang et la grâce de Jésus. Il faut donc renouveler radicalement nos pensées et nos attitudes. Par ailleurs, même si la technologie avance à grande vitesse et que le monde paraît se transformer, si notre cœur reste emprisonné dans l’« orgueil, l’envie, la colère et la haine », il ne peut y avoir de paix véritable. Seul Dieu peut établir les « nouveaux cieux et la nouvelle terre ». Et cette réalité est dominée par la loi de l’amour et du pardon. C’est en effet la valeur la plus décisive pour ce nouveau monde promis par Dieu.
La Loi que Jésus nous a enseignée sur cette terre, c’est : « Aimez-vous les uns les autres, comme je vous ai aimés ; de même que vous avez reçu mon pardon, pardonnez aussi. » Notre propre force ne suffit pas, mais le Saint-Esprit nous aidera à y parvenir. Romains 8, où il est écrit que « l’Esprit intercède pour nous par des soupirs inexprimables », atteste que Dieu nous soutient dans notre faiblesse. Le Notre Père, de même, nous ouvre un chemin pour rendre notre vie de prière toujours plus riche dans l’Esprit. De même que nous demandons chaque jour à Dieu notre subsistance, nous devons compter sur la même force divine pour pardonner. Alors notre prière deviendra féconde : « Que ton nom soit sanctifié, que ton règne vienne, donne-nous notre pain quotidien, et pardonne-nous nos offenses comme nous pardonnons aussi à ceux qui nous ont offensés », afin que nous entrions dans une communion plus intime avec Dieu.
En conclusion, le pasteur David Jang encourage l’assemblée à réciter le Notre Père en méditant chaque fois sur la « gloire et le règne de Dieu », puis sur « notre subsistance », et enfin sur « le pardon mutuel ». C’est ainsi que nous établissons notre identité et notre objectif de chrétiens. Et c’est aussi de cette manière que, dans la vie concrète, nous pouvons exercer l’amour envers nos ennemis et la bienveillance, qui sont les signes d’une foi mature. En récitant chaque jour cette prière, nous disons : « Seigneur, merci pour le pain dont tu me nourris aujourd’hui. Aide-moi à transmettre à autrui l’amour et le pardon que j’ai moi-même reçus ». C’est ainsi que, peu à peu, nous devenons les serviteurs de cette nouvelle ère, celle de la grâce, de l’amour et du pardon. Le cœur du christianisme n’est pas un ensemble de devoirs religieux, mais un appel à embrasser le regard et les sentiments de Dieu sur le monde, et à les mettre en pratique.
En définitive, dans le Notre Père, le pardon est l’un des aspects fondamentaux de la vie spirituelle. Plutôt que de « rendre coup pour coup » selon l’ancienne justice, Jésus nous invite à la justice plus élevée : « puisque Dieu t’a pardonné, fais de même pour les autres ». Cette attitude reflète la nature même de Dieu, et constitue la clé pour mener à bien la vie que propose le Notre Père : honorer le nom de Dieu, rechercher son règne, demander le pain de chaque jour et instaurer des relations réconciliées dans la communauté. Selon le pasteur David Jang, il ne s’agit pas seulement de réciter inlassablement le Notre Père, mais de ne jamais oublier sa signification profonde et de la pratiquer au quotidien.
Pastor David Jang offers a detailed explanation of why and how we should pray by reflecting on the meaning of each part of the Lord’s Prayer. He first underscores that “there is a clear purpose and sequence in our prayers” and highlights that, at the very beginning of the Lord’s Prayer, two prayer topics are mentioned. The first is that God’s name would be hallowed, and the second is that His kingdom would come. He stresses that these two points are “the purpose for which human beings exist” and “the reason we live”: our lives should glorify God and expand His kingdom on earth.
Yet we are finite and ignorant, sometimes not even knowing what to ask for. At this point, the Lord’s Prayer serves as a model and framework for prayer, personally taught to us by Jesus.
Pastor David Jang points out that the Lord’s Prayer is not just a “memorized prayer,” but rather an extremely important prayer that helps us internalize how to pray. Many people do not really know what prayer is or how to petition before God, so they end up repeating themselves vaguely or merely listing everyday needs, then stop. However, if one understands the Lord’s Prayer properly and continually meditates on it, one clearly gains the broad framework of “first seeking God’s glory and His kingdom,” after which one can also ask for the daily bread and other necessities of life in a balanced way.
He cites Romans 8—“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through wordless groans”—to emphasize that because humans are weak, even our praying requires the Spirit’s help. Speaking in tongues or the gift of interpreting tongues is one form of that help, aiding communication between us and God. At the same time, praying in a language we can understand is also important. He suggests that we view the matter like this: “If speaking in tongues is an amazing gift that allows me to pray to God beyond my own understanding, then being able to pray precisely with my own intellect, emotions, and will is also a great blessing.” Citing 1 Corinthians 14:19—“I would rather speak five intelligible words to instruct others than ten thousand words in a tongue”—he teaches that conscious prayer, in which we recognize what we are asking for and what it means, can be even more beneficial.
In this way, Pastor David Jang examines the profound structure and meaning of the Lord’s Prayer. He explains that he has already looked at the first and second prayer topics—“May God’s name be hallowed, may God’s kingdom come”—and then moved on to the section about asking for “daily bread.” He notes that it is God who meets all our needs and that we should pray in faith to “the good God who rewards those who seek Him and provides for those who ask.” Referring to Matthew 7:9–10, where Jesus says, “Which of you, if your son asks for bread, will give him a stone? Or if he asks for a fish, will give him a snake?”, he argues that because God is the One who gives us the best things, it is right to trust Him in prayer.
But here, prayer is not simply a series of wishes. Pastor David Jang stresses that we must first know “who God is.” “The biggest reason people do not believe in God,” he observes, “is that they do not realize how good He truly is.” When humans sense goodwill from someone, it is usually because they have repeatedly experienced that person doing good to them. In the same way that children recognize their mother as the first “good person” in their lives, people often fail to believe in God simply because they do not really know Him. Hence, it is crucial—whether in church or at home—to teach from the very beginning that “God truly is good.” Like the lyrics of “God Is So Good,” we need to familiarize ourselves with the image of God as the One who feeds us, clothes us, and cleanses us.
Pastor David Jang then focuses on the scene where Jesus’ disciples ask Him, “Teach us how to pray,” referencing the fact that every branch of Judaism or other religious groups had their own traditions and styles of prayer—like John the Baptist’s disciples. Jesus’ disciples, likewise, needed to learn how to pray. He emphasizes that the Lord’s Prayer, personally taught by Jesus, is indeed the most complete summary of our prayers, containing the essence of all that prayer should be. The Lord’s Prayer includes glorifying God, asking for our daily bread to sustain our lives, and seeking forgiveness both for ourselves and for others. And this very theme of “asking for and extending forgiveness” is what he identifies as the central topic of the day.
Pastor David Jang finds critical significance in the fact that “forgiveness” appears in the Lord’s Prayer right after “asking for daily bread.” The ultimate purpose of human survival and being provided for is to practice forgiveness and love. Once believers, symbolized by those who receive God’s abundant provision, are filled with that daily bread, the next necessary step is “forgiving others and being forgiven themselves.” Because the Lord’s Prayer follows a structured progression, it is not something we merely memorize; rather, he repeatedly urges that we ponder its content and meaning and apply them.
In his sermon, he connects directly to the story of the woman caught in adultery (John 8) to illustrate the importance of forgiveness. When the teachers of the Law tested Jesus by asking, “Should we stone this woman or not?” He quietly wrote something on the ground. Pastor David Jang interprets that what Jesus wrote was “a new righteousness and a new law.” Jesus does not ignore the Law at all; in fact, He fulfills it and elevates it to a higher dimension. Rather than indefinitely postponing or nullifying the Law’s requirement to condemn sin, He makes people confront their own sin by saying, “Let any one of you who is without sin be the first to throw a stone,” and eventually they all drop their stones and leave. Left alone with the woman, Jesus says, “Neither do I condemn you. Go now and leave your life of sin,” showing a “forgiveness that releases her (lets her go).” In Greek, the word for “forgive” has the meaning of “to let go” or “to set free,” and thus Jesus here declares a righteousness of a new dimension beyond the Law’s demand for punishment.
He explains that this is precisely the core of the forgiveness taught in the Lord’s Prayer and is consistent with Jesus’ teaching to “forgive seventy-seven times.” Before we judge one another and grow angry, picking up stones, we must first examine our own sin and ask, “How can I condemn someone else when I have already had so much of my own sin forgiven by God?” Then, in order to practice the “new righteousness and new law” fulfilled by Jesus, we must extend forgiveness. Pastor David Jang stresses that “God loved even the woman caught in adultery, murderers, thieves, and the greedy,” and Jesus personally demonstrated this. We, too, must possess such a heart of the Father, a spirit of forbearance. He then reiterates that this naturally flows out of the Lord’s Prayer.
Additionally, he emphasizes, “Judging those who have sinned may seem like justice at a glance, but the ‘new righteousness’ that Jesus teaches is on a higher plane of love and forgiveness.” Escaping the perspective of the Law that asks, “Should we keep letting sinners get away with it?” means rising above the Law and reaching its ultimate end goal—“love and forbearance.” Jesus reveals in Himself what it truly looks like for human beings to fulfill the “right” thing God commanded. He does not abolish the Law; rather, the fundamental foundation of the Law—“the heart of God”—is achieved through forgiveness. Such forgiveness does not end after a single act but must be expressed through a life free of further sin, a life that spreads the grace received. Pastor David Jang teaches that this is the real beginning of living the life of forgiveness.
2. Grace That Surpasses the Law
Moving on, Pastor David Jang highlights the theological point that we lived under the Old Testament Law but are now called to a new era of grace through Jesus. First, he explains that there was a period before the Law (the “lawless era”), followed by the period when the Law was given, and now we live in the era of grace. The purpose of the Law was to make people recognize sin as sin and to uphold social equality and order. For example, Exodus 21, Leviticus 24, and Deuteronomy 19 mention the “eye for an eye, tooth for a tooth” form of retributive justice, designed to ensure that the exact damage done was returned so that the scales would remain balanced. “The goal of the Law is fairness and justice, leading to social peace.”
However, Jesus proclaims a new dimension that goes beyond this Law. He says, “Do not resist an evil person. If anyone slaps you on the right cheek, turn to them the other cheek also. If anyone forces you to go one mile, go with them two miles.” This is on a plane far higher than “eye for an eye” and the principle of rightful retaliation. The Lord is telling us, “You cannot enter the kingdom of God by your own righteousness. But I have brought a new world, a world dominated by love, mercy, and forbearance. That is the real destination of the Law.” Pastor David Jang calls this the “era of grace” or “the new heavens and the new earth,” explaining that whoever enters this new era must live by these entirely different principles, not by the old law of retaliation.
Here, Pastor David Jang brings up various examples from the Old Testament, particularly the story of Cain and Abel. When Cain grew angry at God’s response to his offering, God warned him, “Why are you angry? Sin is crouching at your door; it desires to have you, but you must rule over it.” In the end, Cain could not control his anger and killed Abel. This tragedy occurred before the Law, in the lawless era—an ultimate example of violence and a stark display of the depth of human sin. Nevertheless, God comes seeking Cain, just as He sought Adam and Eve when they sinned, saying, “Where are you?” Even though humankind commits sins and tries to hide them in cowardice, God still extends His hand.
Pastor David Jang addresses the theodicy question, “Why does God allow sin and Satan to exist?” by explaining, “No matter how wildly Satan may thrash about, he is powerless before Jesus. When Jesus commands him to ‘come out’ or to ‘go,’ Satan has to obey. Therefore, if we remain in Jesus and follow His Word, Satan cannot recklessly harm us.” The problem is that people themselves will not abandon their sinful nature—pride, envy, jealousy, irresponsibility. This sinful nature tries to keep us bound to a lawless or law-based mindset, but Jesus wants us to go a step further by giving us “a new law” of forgiveness and release, even if it means we suffer some loss, so that the other person can live.
Forgiveness, therefore, is never “calling evil good” but “choosing not to pay back evil by violent means, even if it costs me, letting it go and releasing that person.” Jesus specifically commands, “Forgive seventy-seven times,” and uses the parable in Matthew 18 about the servant who owed ten thousand talents. When the servant whose massive debt was forgiven refuses to forgive his fellow servant who owed him a hundred denarii and throws him in prison, the master rebukes him: “Shouldn’t you have had mercy on your fellow servant just as I had on you?” Pastor David Jang says this is the core of forgiveness. Because human beings have been forgiven a debt (sin) that we could never repay to God, we are obligated to show the same mercy to those around us.
He then mentions the parable of the workers in the vineyard in Matthew 20: “If I contracted to work from early morning for one denarius a day, and someone else who came at five in the afternoon—who barely worked—received the same wage, how would I react?” In this parable, when the early workers complain, the master replies, “Did I not promise you the wage I would give you? Why are you envious because I am generous?” This admonishes the type of “Cain-like jealousy” that resents the generosity shown to someone else. Pastor David Jang explains that God’s grace toward humankind transcends our ability to judge or calculate. We must constantly remember that we have received “incredible grace” from God. Hence, “forgiveness” is about taking that step forward to embrace even those who owe us or who have done us harm. That is what Jesus calls “the Father’s heart,” revealed as a “new righteousness.”
From the Old Testament perspective of retributive justice, this may seem unfair. Justice is normally understood to mean distinguishing the victim from the perpetrator and restoring what was lost or imposing an appropriate punishment to keep the balance. But the path Jesus shows is that “We are all like those who owe ten thousand talents. Nevertheless, God forgave us unconditionally, and we should therefore emulate Him.” This message is not just a “nice thing” but a fundamental teaching that transforms our roots and attitudes when we meditate on and recite the Lord’s Prayer every day. Whereas we used to be people who hated others and sought revenge, we are now recipients of grace, called to “love even our enemies.” And the phrase in the Lord’s Prayer—“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vividly depicts this calling.
Pastor David Jang concludes this portion of the sermon by saying, “It doesn’t end with asking for daily bread. Immediately following that is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implying we must concretely practice this life of forgiveness.” In other words, if we are people who receive life through the provision of bread, we are then obliged to carry out that life-giving power toward others, releasing and forgiving them, ultimately imitating Jesus’ sacrificial forgiveness. Jesus completed the Law and opened a deeper, broader world of forbearance, commanding us to “live in that abundant world.”
3. The Absoluteness and Love of God
Lastly, Pastor David Jang expands on the spiritual and theological implications of this “new law” and “new era.” He states that while our present age has witnessed astounding technological advancements and transformations, true change starts in the human heart and value system. Sending people to Mars or launching satellites that enable global communication may be extraordinary feats, but no technology can transform the “sinful nature of man.” Although it would be wonderful if the gospel were spread everywhere, even once the gospel is heard, if people do not accept this “world of forgiveness and forbearance,” conflicts, envy, violence, and persecution will continue. However, the Lord has ordained that the gospel be preached “to the very end of the age,” and the core of that gospel is “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
He addresses a child’s question, “Why can’t we see God?” by talking about God’s absoluteness: since He can see above, below, left, right, before, and behind simultaneously—He sees all from every vantage point—whereas we are bound by our relative point of view, so we cannot see Him. This is evidence that God is not like us; He is absolute, and His absolute nature does not change no matter which way we move. Then, pointing to postmodernism and religious pluralism, he notes the trend of people claiming, “There are no absolute values,” but argues that humans, without any absolute truth, lose the fundamental meaning of life and drift aimlessly. For believers, that absolute standard is God, or God’s Word, and He is the One who upholds our center.
Once we truly know this “absolute God of love,” the conclusion follows naturally: “How could we not forgive others?” This is the pinnacle of why “we are to both receive and practice forgiveness,” Pastor David Jang insists. Having experienced the love and grace poured out by the heavenly Father, we too must extend the same heart to others. He points out that Adam blamed Eve, Eve blamed the serpent, and sin was passed around in cowardice; Cain murdered Abel out of envy. Those same traits—envy, anger, blame—are still in us. Yet Jesus came to restore sinners despite this nature, walking the path of the cross as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John 1:29).
He further comments on doctrinal disputes such as “Calvinism vs. Arminianism,” which sometimes arise in churches. Citing Romans 14, he urges believers to “stop passing judgment on one another” and not to “treat brothers with contempt,” because we are all chosen by God’s tremendous grace and are simultaneously responsible to respond faithfully for our salvation. These theological issues fundamentally revolve around “God’s sovereign grace” and “human responsibility.” Yet what we must ultimately hold onto is the basic truth: “God unconditionally loved us and forgave our colossal debt, so we must forgive and embrace others.” Reflecting on parables like the workers in Matthew 20 or the prodigal son in Luke 15, we see how God deals with us with kindness far beyond our comprehension. Even after receiving that grace, we are apt to complain, “Why extend the same grace to that person as well?”—an attitude mirroring Cain. But that is precisely rejecting the “new world” that the Lord revealed.
Therefore, the forgiveness Jesus teaches in the Lord’s Prayer is not optional but essential for every believer. “Forgive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is not a suggestion but a directive for practical living. Rather than upholding law-based justice that imprisons the debtor to satisfy fairness, the heart of forgiveness is humility, remembering “I too was forgiven an enormous debt,” and thus showing an even greater love. Pastor David Jang calls this “the heart of God.” The Law once maintained a stage of “eye for an eye, tooth for a tooth” retribution, but Jesus invites us to go further—“Love your enemies.” If we have received this invitation, then we must treat “forgiveness” as a central theme in our daily prayers and, starting with ourselves, lay down our grievances and anger, following the sacrificial love of the Lord.
When we speak of having entered “a new era, an era of grace” through faith, it is an era characterized by forgiveness, reconciliation, and love. No longer are we content to “balance the scales” by returning to the offender the measure of harm done to us. Instead, following Jesus’ example, we go beyond what is owed—at our own expense if need be—to save the other person’s life and redeem their soul. Jesus did not condemn the woman caught in adultery; He told her simply to sin no more and personally offered a path of repentance and restoration to all sinners. We should continually recall this message in our daily lives, practicing the words of the Lord: “If someone strikes you on the left cheek, turn to them the right cheek also.”
Throughout the sermon, Pastor David Jang reiterates that although we still carry within us the cowardice and violence of Adam and Cain, we have become new creations through the blood and grace of Jesus and must completely renew our thinking and attitudes. While science and technology rapidly progress and the world seems to undergo sweeping changes, true peace is impossible if “pride, envy, anger, and hatred” remain unresolved in the human heart. Only God can transform all things into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and Pastor David Jang repeatedly proclaims that the key value of that new heaven and new earth is the law of forgiveness and love.
Ultimately, the law Jesus taught on earth can be summed up as: “Just as God first loved and forgave you, so do likewise.” We cannot accomplish this by our own strength, but the Lord, through the Holy Spirit, helps us walk that path. Romans 8—“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through wordless groans”—demonstrates that God aids us in our weakness, and the Lord’s Prayer also serves as a foundation that enriches our prayer lives in the Spirit. If we rely on this prayer power to obtain our daily bread and live each day, then forgiveness must likewise flow out from the same source of prayer. By obeying the Lord’s teaching, our prayers will bear genuine fruit: “Hallowed be God’s name, His kingdom come, He provides our needs, and we become more reconciled to God by forgiving one another.”
Summarizing these teachings, Pastor David Jang urges us to “meditate again and again on the glory and kingdom of God, our survival, and mutual forgiveness” whenever we recite the Lord’s Prayer. He suggests that real spiritual maturity involves establishing our Christian identity and purpose while also practicing love for enemies and forbearance in everyday life. Reciting the Lord’s Prayer daily with the attitude, “Lord, thank You for giving me the daily bread I need today. Now help me pass on the love and forgiveness I have received to others,” makes us instruments of the new era Jesus opened—an era full of grace, love, and forgiveness. He reminds us that the core of the Christian faith is not just a set of religious obligations but the act of taking on God’s heart toward the world and putting it into practice.
In conclusion, forgiveness in the context of the Lord’s Prayer is a foundational task in the believer’s life. Rather than enforcing the Law’s retributive justice, we pursue the higher righteousness revealed by Jesus: “Just as the Lord forgave us, we too must forgive others.” Such an attitude aligns us with God’s character and serves as the pivotal key that completes the Lord’s Prayer’s blueprint for life: “Exalting God’s name, seeking His kingdom, receiving our daily bread, and reconciling with one another through forgiveness.” As Pastor David Jang emphasizes, this challenge is not merely for rote recitation within the faith community but must be practiced daily, lest we forget its deep meaning each time we repeat the Lord’s Prayer.
El pastor David Jang explica de manera concreta por qué debemos orar y cómo debemos hacerlo, reflexionando paso a paso sobre el significado contenido en el Padre Nuestro. Enfatiza primero que “nuestra oración tiene un propósito y un orden claros” y destaca que en la parte inicial del Padre Nuestro se mencionan primero dos motivos de oración: que el nombre de Dios sea santificado y que venga el reino de Dios. Estas dos peticiones representan tanto “el propósito de la existencia humana” como “la meta de nuestra vida”, recordándonos que nuestra vida debe ser una que glorifique a Dios y extienda Su reino aquí en la tierra. Sin embargo, somos limitados y a menudo ignorantes, y a veces ni siquiera sabemos qué pedir. En esos momentos, el Padre Nuestro se convierte en el modelo de oración que el mismo Jesús nos enseñó, sirviendo como un marco de referencia.
El pastor David Jang afirma que el Padre Nuestro no es simplemente una “oración de recitación”, sino una oración muy importante que nos ayuda a interiorizar el modo de orar. Es decir, muchas personas no saben qué es la oración o cómo pedir ante Dios, de modo que se limitan a pronunciar palabras vagas o repetitivas, o bien se centran únicamente en necesidades cotidianas y superficiales. Pero si comprendemos adecuadamente el Padre Nuestro y lo meditamos continuamente, el gran marco de “buscar primero la gloria de Dios y Su reino” se consolida en nuestras oraciones, y después podemos equilibrar nuestras peticiones relativas al sustento diario y otras necesidades.
Citando Romanos 8, donde dice que “no sabemos pedir como conviene, pero el Espíritu mismo intercede por nosotros con gemidos indecibles”, resalta que el ser humano es débil y por ello necesita la ayuda del Espíritu Santo incluso para orar. Los dones como el hablar en lenguas o la interpretación son uno de los medios que facilitan nuestra comunicación con Dios, pero también es importante orar en un lenguaje que nuestra razón pueda entender. En otras palabras, “si las lenguas son un don maravilloso que nos permite orar a Dios en un idioma que ni siquiera nosotros comprendemos, ¡cuánto mejor si también podemos orar con nuestra inteligencia, emociones y voluntad con claridad ante Dios!” Con este razonamiento, cita 1 Corintios 14:19, donde se afirma que “es mejor decir cinco palabras con entendimiento que diez mil palabras en lenguas”, enseñando que es muy valiosa la oración donde somos conscientes de lo que pedimos y de su significado.
De esta manera, el pastor David Jang examina la sutil estructura y el sentido del Padre Nuestro, y menciona que ya ha explicado la primera y segunda peticiones de la oración (“Santificado sea tu nombre” y “Venga tu reino”), así como la parte relativa a pedir “el pan nuestro de cada día”. Subraya que es Dios quien suple todas nuestras necesidades y que debemos orar con fe ante este “Dios bueno que recompensa a quien Le busca y provee a quien Le pide”. Del mismo modo, cita Mateo 7:9-10, donde Jesús dice: “¿Quién de vosotros, si su hijo le pide pan, le dará una piedra? ¿O si le pide un pescado, le dará una serpiente?”, afirmando que Dios da lo mejor a Sus hijos y por tanto es correcto confiar en Él al orar.
Pero la oración no consiste únicamente en exponer un deseo; se debe comenzar por entender quién es Dios. El pastor David Jang indica que “la razón principal por la que la gente no cree en Dios es porque no sabe que realmente Él es bueno”. Cuando alguien percibe que otra persona le muestra bondad de manera constante, surge la confianza y, del mismo modo que un niño percibe primero a su madre como “alguien bueno” porque lo cuida, en el ámbito espiritual muchos no creen en Dios sencillamente porque no le conocen bien. Por ello, insiste en que, en la iglesia o en el hogar, es esencial enseñar primero “que Dios es realmente bueno”. De ahí la familiaridad del canto “Dios es bueno”, que transmite la idea de que Él nos alimenta, viste y limpia, y que es preciso ayudar a las personas a recibir con confianza esta imagen de Dios.
A continuación, el pastor David Jang hace hincapié en la escena donde los discípulos preguntaron a Jesús: “Señor, enséñanos a orar”. Del mismo modo que existían tradiciones y estilos de oración en el judaísmo y en otras religiones —por ejemplo, los discípulos de Juan el Bautista—, los discípulos de Jesús necesitaban aprender la forma de orar. Jesús, entonces, les transmitió directamente el “Padre Nuestro”, el cual el pastor David Jang describe como la más perfecta síntesis de la oración y el resumen de su esencia. En el Padre Nuestro se busca la gloria de Dios, se pide el sustento necesario, y se aborda el perdón de nuestras faltas y de las de los demás. Precisamente este tema del “perdón que se pide y se otorga” constituye el eje central de la reflexión que él propone en este mensaje.
El pastor David Jang considera muy relevante que en el orden del Padre Nuestro, el tema del “perdón” aparezca a continuación de la petición del “pan nuestro de cada día”. El propósito de la existencia y del sustento que Dios nos provee conduce, inevitablemente, a la práctica del perdón y del amor. Sugiere que, una vez que la persona (símbolo del creyente) ha sido satisfecha con el pan que Dios le da, el paso siguiente es, por fuerza, “perdonar a los demás y ser perdonado uno mismo”. Dado que el Padre Nuestro presenta este desarrollo de manera escalonada, no debe quedarse en la mera recitación: hay que profundizar en su contenido y aplicarlo. Él conecta de inmediato con la historia de la mujer adúltera (Juan 8) para enfatizar la importancia del perdón. En aquel momento, las personas que pretendían hacer cumplir la Ley preguntaron: “¿Es correcto apedrear a esta mujer o no?”, poniendo a prueba a Jesús. Jesús guardó silencio y escribió algo en la tierra. El pastor David Jang interpreta que lo que Jesús escribió en el suelo fue una “justicia y ley nuevas”. Enfatiza que Jesús no desprecia la Ley, sino que la lleva a su plenitud, elevándola a una dimensión superior. No se trató de una cancelación simple e ilimitada de la condena que la Ley establecía, sino que, al decir “El que de vosotros esté sin pecado sea el primero en arrojar la piedra”, hizo que cada uno reflexionara sobre su propio pecado, de modo que todos dejaron caer las piedras y se fueron. Cuando quedaron solos Jesús y la mujer, Él dijo: “Ni yo te condeno; vete, y no peques más”, mostrándole un “perdón liberador (dejar ir)”. Tal como la palabra griega traducida como “perdonar” implica “dejar ir” o “soltar”, Jesús va más allá del castigo ordenado por la Ley para declarar una justicia de un orden nuevo.
Según el pastor David Jang, este es el centro del perdón en el Padre Nuestro y está en sintonía con la enseñanza de Jesús de “perdonar hasta setenta veces siete”. Antes de juzgar y enfurecernos hasta el punto de levantar piedras contra los demás, debemos primero ver nuestro propio pecado y reconocer: “Siendo yo un pecador perdonado por Dios, ¿cómo podría condenar a otro?”. Así, para practicar esta “nueva justicia y ley” que Jesús cumplió, hay que perdonar. El pastor David Jang recalca: “Jesús amó a la mujer adúltera, y ama también al homicida, al ladrón y a los codiciosos; Él encarnó esa obra. Nosotros, por tanto, debemos adoptar ese corazón de Padre, ese corazón de misericordia”. Añade que el Padre Nuestro refleja esta misma lógica de modo natural.
Además, insiste en que “condenar a quien peca podría parecer un acto de justicia, pero la ‘justicia nueva’ que Jesús enseña consiste en un amor y un perdón de un nivel superior”. Más allá del punto de vista de la Ley, que argumentaría: “No podemos solapar el pecado así como así, hace falta aplicar castigo”, Jesús, cumpliendo la Ley, llegó al corazón de ésta —el corazón de Dios— y lo mostró a través del amor y la indulgencia. No se trata de abolir la Ley, sino de trascenderla, llevando a todos hasta su meta final: “el amor de Dios”. Y este perdón no se queda en un acto puntual; requiere una vida libre del pecado y que transmita la gracia recibida, según señala el pastor David Jang.
La gracia que va más allá de la Ley
El pastor David Jang pasa a recalcar que, junto al concepto de “perdón”, la humanidad ha sido llamada a la era de la gracia a través de Jesús, tras haber vivido en la era de la Ley en el Antiguo Testamento. En primer lugar, explica que hubo un tiempo sin ley, luego vino la Ley y ahora ha llegado la era de la gracia. El objetivo de la Ley era que el pecado se reconociera como tal y que se mantuvieran la equidad y el orden social. Por ejemplo, Éxodo 21, Levítico 24 y Deuteronomio 19 contienen la llamada “Ley del talión” —“ojo por ojo, diente por diente”—, cuyo propósito es devolver el daño en la misma medida para mantener la balanza en equilibrio. “La Ley busca equidad y justicia, y con ello produce paz social”.
Pero Jesús proclama un nuevo nivel que supera esta Ley. Él dice: “No resistáis al que es malo; antes, a cualquiera que te hiera en la mejilla derecha, vuélvele también la otra; si alguien te obliga a llevar carga por una milla, ve con él dos”. Esto va mucho más allá de la reciprocidad justa —“ojo por ojo”— para mantener la equidad. Jesús anuncia: “Ustedes no pueden entrar en el reino de Dios con su propia justicia, pero hay un mundo nuevo que yo he traído, un mundo gobernado por el amor, la misericordia y la indulgencia. Ese es el destino último de la Ley”. El pastor David Jang se refiere a esta era como “la era de la gracia” o “cielos nuevos y tierra nueva”. Quienes entren en esta nueva era deben vivir conforme a un principio de vida completamente distinto al de la venganza.
Aquí el pastor David Jang menciona relatos del Antiguo Testamento, en particular el de “Caín y Abel”. Cuando Caín, ofendido por la aceptación de la ofrenda de Abel, mostró su enojo contra Dios, este le advirtió: “¿Por qué te has ensañado? Si te ensañas, el pecado está a la puerta, esperándote; pero tú debes dominarlo”. Sin embargo, Caín no pudo controlar su ira y mató a su hermano. Esto sucedió en la era previa a la Ley, y refleja cuán profunda es la maldad humana. Aun así, Dios salió al encuentro de Caín, del mismo modo que cuando Adán y Eva pecaron, les preguntó: “¿Dónde estás?”, buscándolos a pesar de que se habían avergonzado y echado la culpa mutuamente.
Ante la pregunta teológica de “¿Por qué Dios no elimina el pecado y a Satanás de una vez por todas?”, el pastor David Jang responde: “Por mucho que Satanás se rebele, ante Jesús no puede oponerse. Jesús posee la autoridad absoluta para ordenarle que salga o entre, y Satanás no tiene más opción que obedecer. Por tanto, si estamos en Jesús y seguimos Su Palabra, Satanás no podrá dominarnos”. El problema es que el hombre no deja a un lado su naturaleza pecadora: “la arrogancia, la envidia, los celos y la irresponsabilidad”. Estos pecados nos mantienen atrapados en la dimensión de la no-ley o de la Ley, pero Jesús nos llama a dar un paso más allá: “Perdonar, soltar y, aun asumiendo pérdidas, salvar al prójimo con una nueva ley”.
El perdón no significa llamar “bueno” a lo que es malo, sino que consiste en “aunque haya sufrido daño, no actuar con violencia para devolverlo; dejar ir a la persona y soltarla”. Jesús enseña: “Perdona setenta veces siete”, y presenta la parábola del “siervo que debía diez mil talentos” en Mateo 18. Ese siervo, tras ser perdonado de su inmensa deuda, encontró a un compañero que le debía cien denarios y lo metió en la cárcel por no pagar. El señor que había perdonado la deuda le reprochó: “¿No debías tú también tener misericordia de tu consiervo, como yo tuve misericordia de ti?”. El pastor David Jang señala que aquí está la esencia del perdón: somos deudores ante Dios con una suma imposible de pagar, pero hemos recibido el perdón; por ende, debemos ser indulgentes con quienes nos rodean.
Luego menciona la parábola de los obreros de la viña en Mateo 20: “¿Qué pasaría si tú trabajaras desde la mañana por un denario y otro llegara a las cinco de la tarde, casi sin haber hecho nada, y recibiera el mismo pago?”. Cuando el trabajador de la mañana se quejó, el dueño respondió: “Te prometí un denario, y te he pagado lo pactado. ¿Por qué dices que soy injusto? ¿O acaso tu ojo es malo porque soy bueno?”. Esto se refiere a la “envidia de tipo caínico”: “¿Por qué aquel recibe la misma gracia?”. Dios puede otorgar Su gracia a quien Él quiera, y nosotros ya hemos recibido de Él una gracia inmensa. Por tanto, el pastor David Jang recalca que “el perdón” implica llegar al punto en que, aunque haya alguien que me deba o me haya hecho daño, yo lo reciba y lo suelte. Este es el “corazón del Padre” y la “nueva justicia” que Jesús reveló.
Desde la perspectiva de la Ley, esto podría parecer injusto, puesto que la justicia consiste en restituir a la víctima y castigar al culpable para que se cumpla la equidad. Pero la senda que Jesús propone es: “Todos ustedes son como deudores de diez mil talentos; sin embargo, Dios los ha perdonado sin condiciones. Ahora ustedes deben imitar esta misericordia”. Este mensaje no es un mero acto benéfico de ocasión; es la enseñanza radical que encontramos en el Padre Nuestro y que ha de moldear nuestra raíz y nuestra actitud. Donde antes éramos dados a odiar a otros y buscar venganza, ahora somos llamados, como recipientes de la gracia divina, a “amar incluso a nuestros enemigos”. Y esto se ve reflejado claramente en la petición del Padre Nuestro que habla de “perdonar”.
Al concluir, el pastor David Jang señala que no basta con pedir “el pan nuestro de cada día”, sino que en la frase siguiente —“Perdónanos nuestras deudas, como también nosotros perdonamos a nuestros deudores”— se invita a vivir el perdón de manera concreta. Quien recibe el sustento de Dios debe poner en práctica el amor, liberando y reconciliándose con el prójimo. Jesús llevó a su plenitud la Ley y abrió un camino más amplio y profundo de misericordia, y nos ordena: “Vivan ahora en ese mundo abundante”.
La absoluta soberanía de Dios y Su amor
Por último, el pastor David Jang expone de modo más amplio el significado espiritual y teológico que trae consigo esta “nueva ley” y “nueva era”. Afirma que, aunque en la época actual se dan avances tecnológicos y cambios sorprendentes, la verdadera transformación comienza en el corazón y los valores humanos. Por muy asombroso que sea poder llevar gente a Marte o tener cobertura satelital mundial, ninguna tecnología puede cambiar la “naturaleza pecaminosa del ser humano”. Él desea que el Evangelio se extienda por todo el mundo, pero, incluso donde llega el Evangelio, si no se acepta “un mundo de perdón y tolerancia”, seguirán existiendo conflictos, envidias, violencias y persecuciones. Sin embargo, el Señor quiere que “hasta el fin del mundo” se proclame el Evangelio, y su eje principal es la “reconciliación y el perdón”.
El pastor David Jang responde a la pregunta de un niño que dice: “No veo a Dios, ¿por qué no aparece?” explicando la absoluta soberanía de Dios. Él está en lo alto, abajo, a la izquierda, a la derecha, delante y detrás: por ello nosotros, seres limitados, no podemos verlo directamente. Esto señala que Dios no es un ser como nosotros, que Su soberanía es inmutable, sin importar a dónde nos movamos. Luego, en un contexto posmoderno y pluralista donde se afirma a menudo que “no existen valores absolutos”, él subraya que, en realidad, cuando el ser humano carece de un valor absoluto, se pierde y vaga sin sentido. Para los creyentes, ese valor absoluto es Dios y Su Palabra, y Él es quien sostiene nuestro interior.
De ahí se deduce que “si de veras comprendemos y conocemos a este Dios absoluto, un Dios de amor, ¿cómo podría ser que no perdonemos a los demás?”. El pastor David Jang destaca que ahí reside la razón por la cual “en el Padre Nuestro se nos ordena pedir y practicar el perdón”. Si el Padre celestial, quien es absoluto, nos ha derramado Su amor y Su gracia, nosotros también debemos extender lo mismo a los demás. Menciona la cobardía de Adán al culpar a Eva, y de Eva al culpar a la serpiente, y también la envidia homicida de Caín hacia Abel: todos ejemplos de la naturaleza pecaminosa que permanece en nosotros. Aun así, Jesús vino para restaurar a estos pecadores, haciéndose el “Cordero de Dios que quita el pecado del mundo” (Juan 1:29) y ofreciendo su propia vida en la cruz.
El pastor David Jang hace notar que, incluso dentro de la iglesia, a veces hay conflictos doctrinales —como entre calvinismo y arminianismo—, y cita Romanos 14 para señalar que ni el fuerte ni el débil deben juzgarse ni menospreciarse. Todos hemos sido elegidos por la infinita gracia de Dios y, al mismo tiempo, tenemos la responsabilidad de responder con fidelidad para nuestra salvación. En cualquier caso, la verdad fundamental que debemos abrazar es “Dios nos amó sin condiciones y canceló nuestra enorme deuda, así que nosotros también debemos perdonar y amar a los demás”. La parábola de los obreros de la viña en Mateo 20 o la del hijo pródigo en Lucas 15 nos recuerdan que la bondad de Dios excede ampliamente nuestra lógica. Aunque a veces nos quejamos de que Él muestre la misma gracia a otros, eso revela una actitud “caínica” y rechaza ese “mundo nuevo” del que habló el Señor.
En definitiva, el perdón que enseña Jesús en el Padre Nuestro no es opcional para el creyente, sino un aspecto fundamental y práctico de su vida. “Así como Dios ha perdonado nuestros pecados, nosotros hemos de perdonar a quienes nos ofenden”. En vez de encerrarlos para hacer justicia a la manera de la Ley, debemos ser conscientes de que a nosotros se nos ha perdonado una deuda inmensa y, por humildad, extender un amor aún mayor. El pastor David Jang define esta práctica como “el corazón de Dios”. En el Antiguo Testamento, la Ley mantenía la equivalencia mediante la venganza (“ojo por ojo, diente por diente”); pero Jesús, al decir “amad a vuestros enemigos”, nos invita a un nuevo nivel. Y quienes recibimos esta invitación, al orar cada día el Padre Nuestro, debemos considerar el “perdón” como un tema primordial, dejando a un lado nuestras heridas y enojos, siguiendo el camino de amor sacrificado que Jesús mismo recorrió.
Así, si decimos que en la fe hemos entrado a la “nueva era, la era de la gracia”, nos referimos a la época del perdón, de la reconciliación y del amor. Ya no nos conformamos con castigar justamente al que nos hace daño, sino que, a ejemplo del sacrificio de Jesús, vamos más lejos para salvar a los demás y rescatar sus almas. Jesús no condenó a la mujer adúltera, sino que le dijo: “no peques más” y abrió camino de restauración a todos los pecadores. Del mismo modo, nuestra vida cotidiana debe ser un espacio para recordar este mensaje y poner en práctica las palabras de Jesús: “Al que te hiera en una mejilla, preséntale también la otra”.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a lo largo de toda la predicación que “aunque la cobardía y la violencia de Adán y Caín subsisten en el corazón humano, al haber sido hechos nuevas criaturas por la sangre y la gracia de Jesús, debemos renovar por completo nuestro pensamiento y actitud”. Señala asimismo que, por mucho que avance la ciencia y parezca que el mundo cambia vertiginosamente, mientras no se resuelva el problema del “orgullo, la envidia, la ira y el odio” en el corazón humano, no habrá verdadera paz. Destaca que sólo Dios, quien promete “cielos nuevos y tierra nueva”, puede hacerlo todo nuevo, y que el valor decisivo que encarna ese reino renovado es la ley del amor y el perdón.
En conclusión, la “ley” que Jesús enseña en este mundo es: “Así como Dios les amó y perdonó primero, háganlo también ustedes”. Es difícil en nuestras propias fuerzas, pero el Señor, a través del Espíritu Santo, hace posible que lo logremos. Romanos 8 afirma que “el Espíritu mismo intercede por nosotros con gemidos indecibles” cuando somos débiles, y esto muestra que, incluso en la oración, Dios nos ayuda. El Padre Nuestro también, dentro de la oración en el Espíritu, fortalece nuestra vida de oración. Si pedimos el pan de cada día y vivimos gracias a ese sustento, del mismo modo debemos experimentar y practicar el perdón por la fuerza de la misma oración. Cuando obedecemos la enseñanza del Señor, nuestra oración finalmente produce sus verdaderos frutos: “Santificado sea el nombre de Dios y venga Su reino; nuestros requerimientos diarios son suplidos; y, al perdonarnos unos a otros, entramos en una comunión más profunda con Dios”.
El pastor David Jang concluye animándonos a meditar cada vez que recitamos el Padre Nuestro en “la gloria y el reino de Dios”, “nuestra subsistencia” y “el perdón mutuo”. Para él, la verdadera madurez cristiana radica en establecer la identidad y el propósito del creyente y, al mismo tiempo, encarnar el amor a los enemigos y la tolerancia en la vida práctica. Repetir cada día el Padre Nuestro con la actitud de “Señor, gracias por el pan de hoy; permíteme ahora compartir con otros el amor y el perdón que he recibido”, nos convierte en colaboradores de esa nueva era llena de gracia, amor y perdón que Jesús inauguró. El pastor recalca que la esencia de la fe cristiana no es sólo un deber religioso, sino llevar el corazón de Dios y actuar según Él en el mundo.
En definitiva, dentro del contexto del Padre Nuestro, el perdón es una cuestión fundamental de la vida de fe. No se trata de aplicar la justicia vengativa de la Ley, sino de seguir la “justicia superior” que Jesús abrió, cumpliendo la palabra: “Perdona nuestras deudas, como también nosotros perdonamos a nuestros deudores”. Tal disposición constituye el camino de la semejanza con Dios y la clave que completa el esquema del Padre Nuestro: “Glorificar el nombre de Dios, pedir la venida de Su reino y el sustento diario, y perdonarnos unos a otros para estar en más plena comunión con Dios”. Tal como destaca el pastor David Jang, esta tarea recae en la comunidad de fe, que recita innumerables veces el Padre Nuestro y que debe esforzarse por no olvidar su profundidad, poniéndola en práctica cada día.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주기도문에 담긴 의미를 하나씩 되새기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하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먼저 “우리가 기도를 하는 데에는 분명한 목적과 순서가 있다”라고 강조하며, 주기도문 앞부분에서 두 가지 기도제목이 먼저 언급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 두 가지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이자 “우리가 사는 목적”으로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그러나 우리는 유한하고 무지하며, 때로는 무엇을 구해야 할지도 알지 못한다. 이때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의 표본이자 하나의 틀이 된다.
장재형목사는 주기도문이 단순한 ‘암송기도’가 아니라, 기도하는 법을 체화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기도라고 말한다. 즉, 많은 사람들은 기도가 무엇인지, 혹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구해야 할지를 몰라 막연하게 중언부언하거나, 일상적이고 사소한 필요만을 늘어놓다가 끝내기 쉽다. 하지만 주기도문을 올바로 이해하고 계속 묵상한다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한다’라는 큰 틀이 확실해지고, 그다음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양식과 여러 피로도 균형 있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로마서 8장의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기도 자체도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방언이나 통변 등의 은사는 그 중 하나로, 우리와 하나님의 소통을 도와주지만, 동시에 우리의 지성을 열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기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방언이 내가 알지 못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올릴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은사라면, 내가 내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담아 정확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라는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 19절에 “다섯 마디를 깨달은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구절을 예로 들며, 내가 무엇을 구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인식하는 기도가 더욱 유익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장재형목사는 주기도문의 오묘한 구조와 의미를 살펴보며,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도제목인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구하는 데 이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대목까지 이미 살펴보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찾는 자에게 상 주시고, 간구하는 자에게 공급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향해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전한다. 마태복음 7장 9~10절에서 예수님께서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있겠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좋은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시기에 그분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것이 옳다는 논리다.
그러나 여기서 기도는 단순한 소망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정말로 좋으신 분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인간이 누구에게 호의를 느낄 때는 그가 자기에게 지속적으로 선을 베풀고 있음을 경험할 때인데, 그래서 어릴 때 아이들이 가장 먼저 인식하는‘좋은 사람’의 대표가 어머니가 되듯이, 우리의 영적 차원에서도 하나님을 잘 몰라서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교회 안에서든 가정 안에서든, 가장 먼저 “하나님이 정말 좋으신 분”임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노래로도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씻기시는 분이라는 이미지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돕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어 장재형목사는 예수님께 제자들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던 장면에 주목한다. 모든 유대교 혹은 다른 종교 집단에도 나름의 기도 전통과 스타일이 있었기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제자들도 기도의 방식을 배워야 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이야말로 우리 기도의 가장 완성된 요약본이며, 모든 기도의 골자가 들어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주기도문 안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또 우리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자신과 타인의 죄를 용서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그리고 바로 이 “용서를 구하고 베푸는 기도”가 오늘 본문에서 다룰 핵심 주제라고 말한다. 장재형목사는 “용서”가 주기도문 순서상 “일용할 양식을 구한 뒤” 이어서 나오는 것을 매우 중요한 맥락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생존하고, 양식을 공급받는 목적이 결국 용서와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를 상징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충만히 누리면, 그다음 단계로는 필연적으로 ‘남을 용서하고, 스스로도 용서받는 일’에 나서야 함을 암시한다. 주기도문은 이처럼 단계적인 구조를 지녔기에, 그저 암송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내용과 의미를 곱씹어 적용해야 한다고 그는 지속적으로 촉구한다.
그는 설교 중에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요한복음 8장)로 바로 연결해 용서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당시 율법을 들고 나온 자들이“이 여자를 돌로 쳐야 옳습니까, 말아야 옳습니까?”라며 예수님을 시험할 때, 예수님께서 잠잠히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장재형목사는 예수님이 땅에 쓰신 그 내용이 ‘새로운 의와 새로운 법’이었을 것이라 해석한다. 예수님은 율법을 전혀 무시하시는 분이 아니고, 오히려 율법을 완성하고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시는 분이다. 율법이 죄인에게 내리는 정죄를 한없이 유예하거나 해체해버리는 식이 아니라,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라” 하심으로 사람들 스스로 자기 죄를 성찰하게 만드셨고, 결국 모두가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떠나게 하셨다. 예수님과 그 여인만 남았을 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심으로 ‘그 여인을 놓아주시는(떠나보내는) 용서’를 보여주셨다. 헬라어 원어로 ‘용서’가 “떠나보내다, 풀어주다”라는 의미를 지니듯이, 예수님은 율법의 틀이 명령하는 처벌을 넘어, 뭔가 새로운 차원의 의를 선언하신 것이다.
그는 이것이 곧 주기도문에 나타난 용서의 핵심이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서로를 정죄하고 분노하여 돌을 들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이미 많은 죄를 사함 받은 내가 어찌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그 ‘새로운 의와 법’을 실천하기 위해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간음한 여인, 혹은 살인자, 절도자, 탐욕 많은 자들조차도 하나님은 이처럼 사랑하셨고, 예수님은 그 일을 몸소 보여주셨다. 우리가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 관용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거듭 역설한다. 그리고 이 순서가 주기도문에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고 말한다.
또한 “죄를 범한 자를 정죄하는 일은 얼핏 공의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이 가르치는 ‘새로운 의’는 더 높은 차원의 사랑과 용서에 있다”고 강조한다. “죄인들을 무작정 봐주어서 되겠느냐?”라는 율법의 시각에서 벗어나, 율법을 초월해 그 궁극적인 목적지인‘사랑과 관용’에 이른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완성하는 모습이 예수님에게서 드러난다.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근본인 “하나님의 마음”에 도달하는 길이 곧 용서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용서는 단 한 번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며, 다시 죄를 짓지 않는 삶,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삶의 실천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장재형목사는 말한다.
2.율법을 넘어서는 은혜
장재형목사는 이어 “용서”의 핵심 개념과 함께 인간이 구약의 율법 안에서 살아오다가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은혜 시대로 부름받았다는 점을 부각한다. 먼저 그는 율법시대에 앞서 무법의 시대가 있었고, 그 뒤 율법이 주어지고, 지금은 은혜의 시대가 임했다고 설명한다. 율법이 생긴 목적은 죄를 죄로 깨닫게 하여 사회적 형평(equality)과 질서를 지키도록 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21장, 레위기 24장, 신명기 19장 등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법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죄를 범한 만큼 그대로 돌려주어 저울이 수평을 이루게 하려는 의도였다. “법은 형평과 정의를 목적으로 하고, 그 결과 사회적 평화를 가져온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율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을 선포하신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가 네 뺨을 치거든 다른 뺨을 돌려대라. 오리를 가자 하면 십 리를 동행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눈에는 눈”이라고 하여 정당한 보복으로 형평을 맞추는 수준보다 훨씬 높은 단계다. 주님은 “너희가 너희 의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지만, 내가 가져온 새로운 세계, 곧 사랑과 자비, 관용이 지배하는 세계가 있다. 그 세계가 진정한 율법의 목적지다”라고 알려주신다. 그는 이 시대를 “은혜의 시대” 혹은“새하늘과 새땅”으로 비유하며, 이 시대로 들어오는 자는 이전의 보복원칙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삶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장재형목사는 구약에서 예시되는 다양한 사건들, 특히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꺼낸다. 가인이 제물 드리는 일을 두고 하나님께 화를 내었을 때,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화를 내면 어찌됨이냐, 죄가 문밖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너는 그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경고하셨다. 결국 가인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아벨을 죽였다. 이것은 율법 이전의 무법 시대가 빚어낸 최악의 폭력적 결과이며, 동시에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인을 찾아오시고,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며 찾아오신다. 즉, 인간이 부끄럽고 비겁하게 범죄해놓고도 서로 떠넘기는 상황을 마주하시면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향해 손을 뻗으신다.
장재형목사는 “하나님이 왜 죄와 사탄을 그냥 두시는가?”라는 식의 신정론적 질문에 대해, “사탄이 아무리 날뛰어도 결국 예수님 앞에서 꼼짝 못한다. 예수님은 사탄에게도 ‘나오라면 나오고, 들어가라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절대 권세를 가지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주님의 말씀대로 산다면 사탄은 우리를 함부로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인간 스스로가 죄된 본성, 즉 “교만과 시기와 질투, 무책임”을 버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죄성이 끊임없이 우리를 무법 혹은 율법의 차원에 묶어두려 하지만, 예수님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용서하고 풀어주고, 스스로의 피해를 감수함으로써라도 상대를 살려주라”는 ‘새로운 법’을 주셨다.
이처럼 용서는 결코 ‘악을 선하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손해를 보았어도 폭력적 방식으로 되갚지 않고, 놔주고 떠나보내는 선택”이다. 이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며,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8장의 “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다. 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자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고 옥에 가두었을 때, 주인은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기는 게 마땅하지 않으냐?” 하고 책망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이 용서의 핵심이라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죄)을 탕감받은 존재이기에, 마땅히 주변 사람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어서 “내가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약속받고 아침부터 일했는데, 오후 다섯 시에 와서 거의 아무 일도 못한 자가 똑같은 품삯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 비유를 언급한다. 아침부터 일한 자가 불평하자, 주인은 “네가 받을 품삯을 줄 것이라 약속했다. 네가 왜 내 선함을 악하다 하느냐?”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왜 더 늦게 온 사람에게까지 똑같은 은혜를 베푸느냐?”고 따지는, 일종의 ‘가인적 시기심’을 꾸짖는 이야기다. 장재형목사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혜는 인간이 재단할 수 없고, 따질 수 없는 그 무엇”이며,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엄청난 은혜’를 받았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용서”라는 것은 내게 빚진 자나 내게 해를 끼친 자가 있다 해도, 그를 품고 놓아주는 차원으로 나아가라는 말이다. 그것이 예수님이 새로운 의로 드러내신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구약적 보복 개념으로 보면, 이것은 부당해 보일 수 있다. 정의란 피해자와 가해자의 차이를 정확히 가려서, 빼앗긴 것을 되찾거나 적절한 징벌을 통해 형평을 맞추는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예수님이 제시하신 길은 “우리가 모두 만 달란트 빚진 자와 같다. 그럼에도 우리를 조건 없이 용서하신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특정 순간의 ‘좋은 일’ 수준이 아니라, 주기도문을 매일 암송하고 묵상하며 우리의 뿌리와 태도를 바꿔버리는 근본적 가르침이다. 늘 누군가를 미워하고 보복하려 드는 존재였던 우리가, 이제 은혜 받은 자로서 ‘원수까지 사랑하는 길’로 부름받았다는 점이 주기도문의 “용서” 구절에 분명히 드러난다.
장재형목사는 설교 말미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어지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대목에서 용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라고 한다. 이 말은 공급해주시는 양식을 받아 사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 생명력으로 다른 사람을 품고, 그들을 놓아주고, 더 크게는 예수님의 ‘희생적 용서’를 따라야 함을 뜻한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시며 더욱 넓고 깊은 관용의 세계를 여셨고, “이제 그 풍요로운 세계 안에서 살아가라”는 것이 주님의 명령이다.
3.하나님의 절대성과 사랑
마지막으로 장재형목사는 이 “새로운 법”과 “새로운 시대”가 가져다주는 영적, 신학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확대해 설명한다. 그는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놀라운 기술 발전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진정한 변화는 결국 인간의 마음과 가치관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한다. 화성에 사람을 보낸다거나, 전 세계 어디서나 통신이 가능한 위성을 띄운다거나 하는 미래 기술의 이야기는 대단히 흥미롭지만, 동시에 그 어떤 기술로도 “인간의 죄성”을 바꾸지는 못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좋겠지만, 복음이 전해진 뒤에도 “용서와 관용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전히 분쟁과 시기질투, 폭력과 핍박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복음이 증거되기를 원하시고, 이 복음 안에는 바로 ‘용서’와 ‘화목’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하나님이 안 보인다”는 어떤 어린아이의 질문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상하, 좌우, 전후 그 모든 위치를 다 볼 수 있는 절대자이시므로, 상대적 위치에 있는 우리는 그분을 직접 볼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존재가 아님을 나타내고,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 하나님의 절대성은 변함없음을 뜻한다. 이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서 “절대가치란 없다”라는 식의 주장들이 늘어나지만, 사실 인간은 절대가 없으면 삶의 근본 의미를 상실하고 방황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믿는 이들에게는 그 절대적 기준이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분은 인간의 중심에서 우리를 붙드시는 분이다.
그렇다면 “이 절대자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진정 깨닫고 알았다면, 왜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겠는가?”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 지점이 “주기도문에서 용서를 구하고 실천하라는 이유”라고 역설한다. 하늘의 절대자이신 아버지가 우리에게 부어주신 사랑과 은혜를 덧입었다면, 우리 역시 같은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품어야 함을 강조한다. 아담이 하와를 탓하고, 하와는 뱀을 탓하며 죄를 전가했던 비겁함이나, 가인이 아벨의 제물을 시기한 끝에 살인에 이르는 모습은 우리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죄의 본성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죄성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친히 오셨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요한복음 1장 29절)으로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다.
그는 또 “칼비니즘과 아르미니안주의”처럼 교리적 대립이 교회 내에서 종종 일어남을 지적하며, 로마서 14장의 원리를 들어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서로 비판하지 말고, 형제를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이미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로 선택받은 존재이고, 동시에 나의 구원을 위해 신실하게 반응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교리상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이라는 큰 틀 안에서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가장 근본 진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고, 큰 빚을 탕감하셨으니, 우리 역시 다른 이를 용서하고 품어야 한다”는 명령이다.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 비유나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비유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인간의 이해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선함으로 우리를 대하신다. 우리는 은혜를 입고도 오히려 원망을 토하며 ‘왜 저 사람에게까지 똑같은 은혜를 주십니까?’라고 불평하기 쉽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인적 태도이며, 주님이 말씀하신 “새로운 세계”를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용서는 모든 신자의 삶에 있어 선택적인 항목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필수적인 실천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빚진 자를 사하여 주어야 한다.” 빚진 자를 옥에 가두어 형평을 맞추는 율법적 정의가 아니라, 내가 이미 엄청난 빚을 탕감받은 자임을 기억하는 겸손으로 더 큰 사랑을 베푸는 것이 용서의 핵심이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과거 율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며 보복으로 형평을 맞추는 단계를 유지했지만,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우리를 초청하신다. 이 초청을 받은 자는 하루하루 기도할 때마다 “용서”를 중요한 주제로 삼아야 하고, 나 자신부터 억울함이나 분노를 내려놓고, 주님이 보여주신 희생적 사랑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장재형목사는 설명한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새로운 시대, 은혜의 시대”에 들어왔다고 할 때, 그것은 용서와 화목, 사랑으로 대표되는 시대를 말한다. 더 이상 나를 해친 사람에게 정당한 수준의 피해를 되갚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을 본받아 내가 더 많은 것을 내어줌으로써라도 상대를 살리고, 영혼을 건지려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으며,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을 뿐 아니라, 모든 죄인들을 향해 손을 내미셔서 회개와 회복의 길을 열어주셨다. 우리의 일상 또한 그러한 메시지를 계속적으로 되새기고, “왼뺨 맞으면 오른뺨까지 내어주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제의 삶에서 적용하는 연습장이 되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설교 전반에서 “아담과 가인 같은 비겁함과 폭력성이 여전히 인간 안에 흐르고 있으나, 예수님의 보혈과 은혜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 된 이상, 그 생각과 태도를 완전히 새롭게 해야 한다”라고 촉구한다.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빠르고 세상이 크게 변해가는 것처럼 보여도, 인간의 마음 중심에 ‘교만과 시기, 분노와 미움’이 해결되지 않으면 결코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모든 것을 “새하늘과 새땅”으로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새하늘과 새땅에서 결정적으로 구현되는 핵심 가치가 바로 용서와 사랑의 법임을 거듭 천명한다.
결국 이 땅에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법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용서해주셨듯,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렵겠지만,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서 그 길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우신다. 로마서 8장의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는 말씀은,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증거이며, 주기도문 역시 성령 안에서 우리의 기도생활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근거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그 양식을 힘입어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면, 용서 역시 같은 기도의 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우리의 필요한 양식이 공급되고, 우리가 서로를 용서함으로써 하나님과 더욱 화목하게 되는” 참된 열매를 맺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내용을 정리하며,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 그리고 “우리의 생존”과 “서로에 대한 용서”를 거듭 묵상할 것을 권면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목적을 확립하고, 동시에 실제 생활 속에서 원수 사랑과 관용을 체화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 성숙이라는 것이다. 매일 주기도문을 반복하며 “주님 오늘도 제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사랑과 용서를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게 하소서”라는 심정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이 보여주신 새로운 시대, 은혜와 사랑과 용서가 충만한 시대의 일꾼이 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며, 그 마음을 실천하는 데 있음을 그는 거듭 상기시킨다.
결론적으로, 주기도문의 맥락 속에서 용서는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신앙생활의 근본 과제다. 이는 율법의 잣대로 보복의 정의를 집행하기보다는, 예수님이 열어주신 더 높은 차원의 의를 따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용서를 베푸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를 용서한다”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곧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길이며, 주기도문을 통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 일용할 양식을 구함으로 생존을 유지하는 삶”을 완성으로 이끄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리고 이는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듯, 신앙공동체가 주기도문을 수없이 암송할 때마다 그 깊은 의미를 잊지 말고, 날마다 실천해 나가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1) La souffrance présente et la gloire future : l’espérance du salut
Le pasteur David Jang, à travers l’étude de Romains 8 à partir du verset 18, a médité et interprété en profondeur la relation entre les souffrances auxquelles nous faisons face aujourd’hui et la gloire à venir. Dans ce passage, l’apôtre Paul déclare : « J’estime que les souffrances du temps présent ne sauraient être comparées à la gloire à venir qui sera révélée en nous » (Rm 8.18). Cela signifie que toutes les épreuves et souffrances diverses de la vie quotidienne ne peuvent se mesurer au poids de la gloire qui attend les croyants en Christ. Même s’il y a des bénédictions que nous ne pouvons pas recueillir ici-bas, Paul affirme que la gloire céleste réservée au croyant est sans commune mesure et indescriptible.
Ainsi, Paul part du postulat que la vie du chrétien est nécessairement accompagnée de souffrance. C’est aussi l’essence même de ceux que l’on appelle à « participer aux souffrances qui manquent au Christ ». Le pasteur David Jang exprime cela comme les deux faces d’une pièce : le côté « gloire » et le côté « souffrance ». Aux yeux du monde, la souffrance qui frappe le chrétien peut sembler vaine, sans récompense ni espérance. Mais dans la foi, nous sommes convaincus que la promesse de Dieu pour l’avenir est une réalité et qu’il y aura une compensation finale. Ainsi, les diverses épreuves et douleurs que nous subissons aujourd’hui deviennent, en Christ, une occasion de contempler la gloire ultime.
Paul déclare : « C’est en espérance que nous avons été sauvés » (Rm 8.24). Sur le plan grammatical, cette phrase est fascinante : « nous avons été sauvés » est au passé, alors que « en espérance » projette vers l’avenir. Les croyants sont déjà sauvés en Christ, tout en attendant encore l’accomplissement complet de ce salut. C’est la tension théologique du « déjà » et du « pas encore ». Autrement dit, depuis la croix du Christ, le croyant a reçu le pardon des péchés et la justice, mais la plénitude du salut demeure future et ne sera entièrement révélée que le jour de la gloire.
Le pasteur David Jang enseigne que, si nous tenons fermement cette espérance, quels que soient les vents contraires, nous pouvons endurer le présent en gardant les yeux fixés sur « la gloire future ». Aux yeux du monde, la souffrance et l’adversité évoquent l’échec et la défaite, tandis que pour le croyant, elles deviennent une bénédiction car elles nous unissent aux souffrances du Christ. Le chemin que Jésus a montré est celui de la croix, et après la croix est venue la gloire de la résurrection. De même, la vie du chrétien est inévitablement marquée par la souffrance suivie de la gloire.
Dans le Sermon sur la montagne, Jésus dit : « Heureux ceux qui sont persécutés pour la justice, car le royaume des cieux est à eux » (Mt 5.10). Ce passage nous montre que la persécution subie à cause de la justice n’est jamais vaine. L’affirmation de Jésus selon laquelle « le royaume des cieux est à eux » implique que cette souffrance est récompensée dans l’avenir. Le pasteur David Jang appelle cela la « foi en la rétribution », et souligne que la confiance solide dans la promesse biblique concernant l’avenir soutient la vie de foi au présent.
La gloire à venir, dont parle Paul, ne se limite pas à une consolation individuelle ou à un apaisement intérieur ; elle renvoie à la pleine manifestation du royaume de Dieu. Même si nous ne voyons pas de récompense immédiate et que nous subissons parfois des pertes dans le monde à cause de notre fidélité, nous pouvons persévérer avec joie si nous croyons que ce sacrifice n’est pas vain. Selon le pasteur David Jang, Paul veut, en annonçant « la gloire à venir incomparable », implanter dans le cœur des croyants les valeurs du royaume de Dieu, contraires à celles de ce monde.
Paul ne se limite pas au réconfort intérieur ou à une paix spirituelle personnelle. Il est convaincu que l’ordre de l’univers, détruit par le péché, sera un jour rétabli par la main de Dieu. Le salut en Christ s’accomplit à l’échelle cosmique, et au jour de l’achèvement, les enfants de Dieu entreront dans la liberté et la gloire véritables. Voilà la « grande fresque » que le croyant est appelé à contempler dans le futur. Nous pensons souvent à nos petites souffrances présentes, mais elles ne peuvent se comparer à la grande gloire qui nous attend, tant pour cette terre que pour la vie du croyant.
Le pasteur David Jang déclare : « Même si nous quittons cette vie terrestre sans avoir goûté à cette joie glorieuse, nous sommes assurés de la récompense et de la gloire qui nous attendent dans le ciel ». Aux yeux du monde, les chrétiens peuvent apparaître comme de simples rêveurs, vivant dans une espérance trompeuse et peinant inutilement. Mais au cœur de la foi chrétienne demeure la conviction d’une « espérance future certaine ». Cette conviction a soutenu des multitudes de croyants à travers l’histoire, qui, malgré les plus terribles persécutions, n’ont pas faibli.
Paul n’est pas un idéaliste naïf. Il accepte la réalité telle qu’elle est, mais il discerne clairement ce qui se trouve au-delà. Lorsqu’il déclare : « Les souffrances du temps présent ne sont pas comparables à la gloire à venir » (Rm 8.18), il nous encourage à faire confiance à Dieu qui nous donne « l’Esprit comme gage de la gloire ». Ainsi, dans les moments d’épreuve et de découragement, les paroles de Paul nous permettent de nous accrocher plus fermement au « plan et à la promesse de Dieu ». Dans la bonne nouvelle qui nourrit l’espérance, le croyant peut, même au milieu de la souffrance, expérimenter la joie et puiser la force pour pratiquer la foi, l’amour et la persévérance.
De plus, pour Paul, le salut « en espérance » ne signifie pas seulement la vie éternelle après la mort, mais l’assurance que le royaume de Dieu, c’est-à-dire la souveraineté universelle de Dieu, viendra pleinement. Alors que le péché et l’injustice brisent l’ordre de la création, au dernier jour, l’univers retrouvera son équilibre initial et louera la gloire de Dieu. Nous ne voyons pas encore cette réalité, mais nous la recevons déjà par la foi. Le croyant n’est pas appelé à fuir la terre ni à fermer les yeux sur la réalité, mais à interpréter correctement la souffrance présente et à goûter par avance la gloire future.
Le pasteur David Jang met l’accent sur la « foi orientée vers l’avenir » de Paul : il nous invite à poser un nouveau regard sur la souffrance. Avant tout, il souligne que les épreuves présentes sont placées dans la providence de Dieu et que l’objectif final de cette providence est la restauration de la gloire. Cette gloire ne concerne pas seulement la consolation ou la satisfaction personnelle du croyant, mais va jusqu’à l’accomplissement du salut universel, attendu par l’ensemble de la création. Ainsi, la « théologie de la souffrance présente et de la gloire future » que propose David Jang devient la force motrice qui nous permet de courir vers la ligne d’arrivée sans désespérer.
(2) Le gémissement de la création et le salut cosmique
Le pasteur David Jang interprète, selon une perspective de « salut cosmique » (cosmic salvation), les versets 19 à 23 de Romains 8 qui décrivent « l’attente » et le « gémissement » de la création. Paul écrit : « La création attend avec un ardent désir la révélation des fils de Dieu » (Rm 8.19). Nous pourrions penser que c’est l’être humain qui attend l’avenir, mais ici, de façon inattendue, c’est la « création elle-même » qui désire ardemment le salut.
Le terme grec traduit par « attente » (apokaradokia) décrit l’image de quelqu’un tendant le cou et attendant avec impatience. C’est comme un enfant excitant la veille d’une sortie scolaire, qui ne ferme pas l’œil de la nuit et attend anxieusement l’aube. En chinois, le mot évoque aussi l’idée d’« attendre dans la souffrance ». Pour le pasteur David Jang, la création tout entière, malgré ses douleurs, attend passionnément le futur.
Ici, le terme « création » ne désigne pas seulement la nature ou le monde animal, mais l’univers tout entier soumis au péché et qui gémit. Dans Genèse 3.17, Dieu déclare à Adam : « Le sol sera maudit à cause de toi… ». À partir de là, le monde a perdu l’harmonie et la beauté initiales. Le mandat « soumets la terre » confié à Adam était, au départ, un appel à servir et à prendre soin de la création en tant qu’intendant, et non un ordre d’opprimer et de détruire. Mais le péché a transformé l’humanité en exploiteur cupide, faisant gémir la création.
Lorsque Paul écrit que la création « a été soumise à la vanité » (Rm 8.20), il indique qu’en raison du péché, elle subit la domination vaine et destructrice de l’homme.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qu’à l’origine, l’homme devait régner avec amour et miséricorde, mais en raison de la chute, il est devenu violent et avide, infligeant à la terre une domination perverse. C’est là la tragédie actuelle : la création, qui devait trouver en l’humanité son protecteur, subit désormais des agressions de la part de cet « usurpateur ».
La dégradation physique et écologique du monde est une conséquence directe de la chute de l’homme. Dans la Genèse, Dieu se lamente : « L’Éternel se repentit d’avoir fait l’homme sur la terre » (Gn 6.6). Paul, lui, s’exclame : « Misérable que je suis ! » (Rm 7.24), en prenant conscience de sa condition de pécheur. Il ajoute : « La création tout entière soupire et souffre encore les douleurs de l’enfantement » (Rm 8.22). Tel est l’impact universel du péché.
Face à cette réalité, le pasteur David Jang affirme que la mission chrétienne ne se limite pas au salut individuel ou à la paix intérieure, mais qu’elle doit également s’étendre à la restauration de l’ordre de vie à l’échelle cosmique. Paul explique que la création attend la révélation des fils de Dieu (Rm 8.19), parce que ce sont justement ces fils de Dieu qui sont les « vrais maîtres » de la terre. Quand ils seront pleinement rétablis, la création pourra aussi partager « la liberté de la gloire des enfants de Dieu » (Rm 8.21).
Selon le pasteur David Jang, l’expression « fils de Dieu » ici vise tous les croyants sauvés en Jésus-Christ et devenus enfants de Dieu par le Saint-Esprit. Ils ne reçoivent pas seulement le pardon de leurs péchés, mais aussi la responsabilité et le privilège spirituels de prendre soin de toute la création. Cependant, de même que le croyant attend l’accomplissement de la rédemption, la création attend ce jour où tout sera restauré. Il s’agit là de la grande vision de Paul : un « salut cosmique » où tout l’univers est renouvelé.
Le point culminant de ce « salut cosmique » annoncé par Paul s’harmonise avec la description de l’Apocalypse 21 sur « les nouveaux cieux et la nouvelle terre ». Dieu « fait toutes choses nouvelles » (Ap 21.5), et il essuiera toute larme, fera disparaître la mort et tout chagrin (Ap 21.4). Le pasteur David Jang attire l’attention sur le fait que Dieu ne laisse pas la création brisée disparaître, mais la renouvelle. Ainsi, l’eschatologie chrétienne n’est pas la fuite d’une terre dévastée vers un ciel lointain, mais la grande histoire d’une restauration cosmique accomplie par Dieu lui-même.
Cette foi en la restauration du monde évite au croyant de céder au désespoir face aux crises écologiques et au chaos social que nous traversons.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 « Malgré la chute, la Bible nous assure que Dieu n’abandonnera pas sa création et qu’il établira une nouvelle souveraineté ». Dès lors, le croyant, quand il voit la nature souffrir, ne demeure pas indifférent, mais se repent et agit pour remédier à la situation. Préserver l’environnement, protéger les plus faibles, œuvrer pour la justice sociale sont autant de manières de participer à l’avènement du règne de Dieu.
Quand le royaume de Dieu s’établira, la création elle-même sera libérée. « Elle sera affranchie de la servitude de la corruption » (Rm 8.21) et ne subira plus la domination du péché et de la destruction, mais célébrera librement la gloire de Dieu. C’est pourquoi Paul évoque « le gémissement de la nature », affirmant qu’elle aussi sera transformée et goûtera la restauration en compagnie des fils de Dieu.
Dans Actes 3.21, il est dit que Jésus-Christ restera au ciel « jusqu’aux temps du rétablissement de toutes choses ». Non seulement le salut individuel, mais aussi la restauration universelle se déploieront à la fin. Selon le pasteur David Jang, c’est cette vision du salut cosmique que Paul exprime de manière condensée dans Romains 8. Les croyants doivent donc élargir leur regard afin d’englober à la fois le salut de l’âme et le salut de tout l’univers. L’Église, en tant que corps du Christ, est appelée à proclamer cette grande restauration au monde et à se souvenir qu’elle fait partie de ce processus.
Certes, ici-bas, nous restons soumis à nos limites et au péché ; la destruction de l’environnement se poursuit et l’injustice gagne du terrain. Néanmoins, comme Paul le dit, nous attendons en « soupirant » la venue de l’aube dans la nuit. Le pasteur David Jang exhorte l’Église à ne pas cesser d’entendre et de porter dans la prière le « gémissement de la création », mais aussi à prendre soin de la nature qui nous entoure. La promesse de Dieu à propos de l’avenir est sûre, et nous savons donc que nos efforts et notre engagement ne sont pas vains. C’est avec joie que nous pouvons supporter ce travail.
Le salut cosmique n’est pas entièrement réalisé par la force humaine, mais s’accomplira par la souveraineté et la grâce de Dieu. Cependant, dans ce processus, l’Église ne doit pas rester simple spectatrice alors que la création « attend impatiemment la révélation des fils de Dieu ». Cette vision du gémissement de la création et du salut cosmique, que le pasteur David Jang met en avant, confère au croyant une vocation qui englobe à la fois « le ciel et la terre ». Puisque Dieu, par Jésus-Christ, a déjà implanté en germe la « nouvelle création » et que l’Esprit-Saint ne cesse de la manifester, nous avançons par la foi, au sein de ce « déjà » et de ce « pas encore ».
(3) L’aide du Saint-Esprit et le secret de la prière
Aux versets 26 et 27 de Romains 8, Paul prononce ces mots extraordinaires : « De même aussi l’Esprit nous aide dans notre faiblesse… ». Il sait combien l’être humain est faible et limité. Souvent, nous ne savons pas quoi demander dans la prière, ni comment prier. Le pasteur David Jang commente ce texte en soulignant que le croyant doit s’appuyer sur le Saint-Esprit, le « parfait intercesseur ».
Paul dit : « Nous ne savons pas ce qu’il nous convient de demander dans nos prières. Mais l’Esprit lui-même intercède pour nous par des soupirs inexprimables » (Rm 8.26). Cela signifie que l’Esprit dépasse notre ignorance et notre incapacité pour présenter à Dieu une prière conforme à sa volonté. Le « soupir » de l’Esprit n’est pas un simple gémissement de tristesse, mais l’expression d’une profonde passion et d’un amour ardent pour intercéder en notre faveur.
La Bible désigne Jésus-Christ comme l’unique médiateur entre Dieu et les hommes (1 Tm 2.5) : « Il est vivant pour intercéder en leur faveur » (Hé 7.25). Grâce à son sang versé sur la croix, nous pouvons nous approcher de Dieu avec assurance (Hé 10.19-20). En outre, l’Esprit-Saint, qui habite en nous, rectifie et oriente nos prières. C’est un grand privilège pour le croyant que de bénéficier de la médiation à la fois du Christ au ciel et de l’Esprit au-dedans de soi.
Selon le pasteur David Jang, « Prier en appelant Dieu ‘Père’ n’est pas un droit acquis, mais une immense grâce ». Le péché interdisait à l’homme l’accès direct à Dieu, mais grâce à l’œuvre de Jésus-Christ déchirant le voile, nous entrons dans sa présence, et l’Esprit-Saint, demeurant en nous, nous assiste même dans la prière.
Paul ajoute : « Celui qui sonde les cœurs connaît la pensée de l’Esprit » (Rm 8.27). Celui qui sonde les cœurs, c’est Dieu le Père. Lorsque nos prières sont maladroites ou contraires à la volonté de Dieu, l’Esprit-Saint, au-delà de nos insuffisances, intercède conformément à la pensée divine. Ainsi, nos prières, bien que faibles et imparfaites, sont « traduites » et ajustées dans la volonté de Dieu grâce à l’intercession du Saint-Esprit.
C’est une source de profonde liberté et de réconfort dans la prière. Ce n’est pas la perfection de nos mots et de nos intentions qui assure l’exaucement. Au contraire, la prière consiste à reconnaître humblement nos limites et à nous abandonner à l’intercession de l’Esprit. Le pasteur David Jang décrit la prière comme « la connexion du cœur de l’homme au cœur de Dieu » : sans l’aide du Saint-Esprit, cette voie serait bloquée ou déformée.
Pour le croyant conscient de cela, la prière n’est plus une « obligation rituelle » ni un moyen d’auto-affirmation, mais un moment de dépendance totale envers la grâce de l’Esprit. Cela se manifeste dans l’humilité face à la Parole, dans la mise à l’écart de l’orgueil, et dans l’ardent désir de discerner la volonté de Dieu. Lui seul connaît l’intimité de nos cœurs, et il a déjà préparé des chemins que nous ne pourrions même pas imaginer. Ainsi, la doctrine de « l’intercession du Saint-Esprit » présentée en Romains 8 est un puissant réconfort pour tout croyant.
Cette prière dépasse aussi le cadre individuel pour devenir la force spirituelle qui unit l’Église. Paul compare l’Église au « corps du Christ » (1 Co 12 ; Ep 4). À l’image des membres d’un corps étroitement liés, la prière renforce la communion entre nous. Lorsque l’Esprit voit la faiblesse d’un membre et qu’il « soupire », ce même sentiment peut être communiqué dans la prière d’un autre. Ainsi l’Église pleure et se réjouit ensemble, et devient une communauté spirituelle unie dans l’Esprit.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que « l’Esprit intercède pour chacun de nous et conduit l’Église à l’unité ». C’est là le secret de la véritable communion.
Paul ajoute aussi : « Mais si nous espérons ce que nous ne voyons pas, nous l’attendons avec persévérance » (Rm 8.25). L’enseignement sur l’aide du Saint-Esprit et la prière rejoint la « théologie de la persévérance ». Bien que Dieu accomplisse son grand dessein de salut cosmique, nous ne voyons pas encore la perfection qui sera révélée. Le péché, l’injustice et la corruption continuent de sévir ; les croyants restent marqués par la faiblesse de la chair et l’Église est tiraillée entre son idéal et la réalité. Paul exhorte alors à affronter tout cela avec « endurance » et l’aide de l’Esprit qui « intercède pour nous avec des soupirs ».
Le pasteur David Jang compare l’expansion du règne de Dieu et la croissance spirituelle du croyant à « un peu de levain qui fait lever toute la pâte », un processus qui requiert de la persévérance. Comme la graine qui, pour germer et porter fruit, a besoin de temps, l’Église doit se montrer patiente, cherchant la volonté de Dieu dans la prière, sous la direction de l’Esprit. C’est au cours de ce cheminement que l’Esprit déploie des voies diverses et réalise son œuvre, parfois à notre insu.
Dans la seconde partie de Romains 8, Paul élargit cette idée : « Nous savons que toutes choses concourent au bien de ceux qui aiment Dieu, de ceux qui sont appelés selon son dessein » (Rm 8.28). Le Saint-Esprit nous conduit, même dans notre faiblesse et dans toutes les circonstances, vers le bien ultime et vers le salut. Ainsi, même quand surgissent des événements incompréhensibles à nos yeux, le croyant place sa confiance dans l’intercession de l’Esprit et implore la providence bienveillante de Dieu.
En somme, le « secret de la prière » que Paul présente ici, et que le pasteur David Jang met en lumière, permet au chrétien d’expérimenter la puissance de Dieu dans sa vie quotidienne, à l’Église de s’édifier mutuellement, et aux croyants de participer à la vision du salut cosmique. Le pasteur David Jang résume cela en disant : « L’Esprit est infiniment personnel, universel et réside en chacun de nos cœurs ». Par l’Esprit, le plan de salut à l’échelle cosmique s’accomplit, tandis que la plus humble des prières du croyant monte devant Dieu et reçoit une réponse appropriée.
Pour résumer, dans l’ensemble de Romains 8, Paul décrit la souffrance présente, le salut cosmique et l’aide du Saint-Esprit. L’assurance que « les souffrances du temps présent ne sont pas comparables à la gloire à venir » nous donne une espérance ferme. Le fait que « la création attend avec un ardent désir la révélation des fils de Dieu » élargit cette foi à la restauration de tout l’ordre créé, au-delà du salut individuel. Enfin, la déclaration selon laquelle « l’Esprit intercède pour nous par des soupirs inexprimables » nous rassure sur l’œuvre active du Saint-Esprit dans ce processus.
Le pasteur David Jang applique cet enseignement paulinien à la vie actuelle de l’Église et des croyants, en mettant en avant trois messages essentiels :
La route de la foi est inévitablement marquée par la souffrance, mais cette souffrance n’est jamais vaine.
L’ordre cosmique brisé par le péché sera finalement restauré par Dieu, et nous devons avoir cette vision universelle.
Dans tout ce processus de salut, le Saint-Esprit soutient notre prière et nous conduit pour accomplir la volonté bienveillante de Dieu.
Ces trois messages constituent la base théologique qui nous empêche de désespérer, et qui nous permet de « persévérer en espérant ce que nous ne voyons pas ». Au sein de l’Église, cette espérance nous incite à nous servir les uns les autres, à partager la souffrance du monde et à vivre avec la certitude de la gloire future. Même si nous subissons échec ou découragement, la prière guidée par l’Esprit nous maintient fermes et nous fait progresser vers la ressemblance au Christ.
En somme, Romains 8 est le chapitre où s’illustre le mieux la théologie du salut selon Paul. Il révèle aussi la vision théologique du pasteur David Jang, qui intègre la dimension cosmique et la dynamique de l’Esprit. Pour ceux qui sont tourmentés par la souffrance, la perspective de la gloire à venir et de la restauration de l’univers offre un puissant réconfort. Pour ceux qui peinent à prier et à discerner la volonté de Dieu, l’intercession du Saint-Esprit assure qu’ils ne sont pas abandonnés dans leur faiblesse.
Le pasteur David Jang qualifie ainsi Romains 8 : « Le croyant est celui qui voit déjà ‘l’aube transpercer la nuit’ ». Et c’est la lumière de cette aube qui nous permet de supporter le présent, de prêter l’oreille aux cris de la création et de comprendre « ce qu’il convient de demander dans nos prières », par la lumière du Saint-Esprit. Dans cette lumière spirituelle, même sur le chemin épineux d’aujourd’hui, nous avançons avec l’espérance de voir éclore la fleur de demain.
Avant tout, l’enseignement de Romains 8 offre à l’Église d’aujourd’hui des orientations concrètes. Même si le monde semble dériver vers la confusion et le désespoir, le croyant a en lui « la gloire future incomparable ». Même si la destruction de l’environnement et le mépris de la vie se répandent, nous entendons « le gémissement de la création » et nous avançons vers le salut cosmique. Même si nous sommes pressés par les crises économiques et sociales, nous ne cessons de prier, en nous appuyant sur « les soupirs inexprimables de l’Esprit ».
C’est pourquoi, dans son interprétation de Romains 8, le pasteur David Jang indique trois orientations pour l’Église et le croyant :
Ne jamais se laisser abattre par la souffrance, en la comparant toujours à la gloire future.
Devant la détresse de la nature et de la société, garder la vision du salut universel et agir avec responsabilité.
Livrer nos prières et nos vies à l’aide du Saint-Esprit, en cherchant et en obéissant quotidiennement à la volonté de Dieu.
Voilà la « mission pour laquelle Dieu nous a appelés » et la manière dont « son royaume » se réalise parmi nous.
Le pasteur David Jang rappelle que « le royaume de Dieu » est le cœur de l’enseignement de Jésus, la conclusion du livre des Actes (Ac 28.31) et le but ultime auquel nous conduit Romains 8. Ainsi, nous devons toujours garder à l’esprit la parole du Seigneur : « Cherchez d’abord le royaume et la justice de Dieu » (Mt 6.33). Si nous regardons seulement aux incertitudes du monde, nous sombrerons vite dans le découragement. Mais si nous portons nos yeux sur la souveraineté de Dieu et sur la fin de l’histoire qu’il a préparée, notre foi ne vacillera pas.
En définitive, les versets 18 à 27 de Romains 8 occupent une place clé dans la théologie du salut de Paul. Selon l’interprétation du pasteur David Jang, « la souffrance présente et la gloire future », « le gémissement de la création et le salut cosmique », et « l’aide du Saint-Esprit et le secret de la prière » sont trois éléments intimement liés. La souffrance présente n’est pas vaine si nous plaçons notre espérance dans le salut universel, et cette espérance devient réalité dans la prière grâce à l’intercession de l’Esprit. C’est la logique qui sous-tend toute la pensée paulinienne.
Dans l’ensemble de l’Épître aux Romains, Paul aborde d’abord le péché, la justice, la loi et l’Évangile, puis culmine au chapitre 8 avec l’exaltation de la puissance du salut et de l’Esprit. Cela correspond à la conclusion de l’Ancien Testament en Jésus-Christ et à la conclusion du Nouveau Testament dans l’établissement du royaume de Dieu. Le pasteur David Jang affirme qu’en restaurant la vision de ce salut complet, l’Église peut proclamer l’Évangile avec discernement et les croyants résister aux valeurs du monde en menant le bon combat de la foi.
Notons que le salut cosmique n’est pas une idée vague ou abstraite. Paul évoque concrètement le retour de Jésus-Christ, la défaite de la mort, la résurrection, et le règne glorieux dans le nouveau ciel et la nouvelle terre. Le pasteur David Jang qualifie cette perspective de « l’eschatologie biblique de l’espérance », qui s’oppose à la plupart des eschatologies religieuses ou idéologiques du monde, souvent marquées par l’effondrement ou la quête utopique humaine. La Bible, elle, annonce l’action salvatrice de Dieu qui rétablit toute la création.
Le croyant ne redoute donc pas la fin, au contraire, il l’espère ardemment et vit fidèlement le présent dans cette perspective. C’est le fondement de l’espérance dont parle Romains 8, et c’est la mission de l’Église que de faire advenir cette espérance dans la prière persévérante, aidée par le Saint-Esprit, comme le souligne David Jang : « Celui qui attend patiemment ce qu’il ne voit pas participera enfin à la gloire de Dieu ».
Reprenons le verset 24 de Romains 8 : « C’est en espérance que nous avons été sauvés ; or l’espérance qu’on voit n’est plus espérance ». Que signifie-t-il pour la vie du croyant ? Si la réalité visible est déplorable, le croyant considère la promesse invisible de Dieu comme plus réelle encore. Car « la foi est une ferme assurance des choses qu’on espère, une démonstration de celles qu’on ne voit pas » (Hé 11.1). C’est sur cette promesse invisible que le croyant s’appuie solidement.
Ainsi, le salut, certes déjà acquis, n’est pas encore pleinement réalisé. Le pouvoir du péché et de l’injustice agite encore le monde, la création gémit, l’Église endure la persécution et les conflits internes. Mais l’issue finale de cette bataille est déjà jouée en Christ, par sa résurrection et son retour promis : c’est la bonne nouvelle que proclame Paul.
Le croyant est donc un « pèlerin » qui vit avec sérieux chaque jour en attendant l’accomplissement final. Or, comme le rappelle souvent le pasteur David Jang, nous n’errons pas tout seuls : nous sommes guidés par l’Esprit qui prie et intercède pour nous dans notre faiblesse. L’Esprit a compassion de nos manquements, redresse nos prières, et nous encourage à prendre part à la vision du salut cosmique.
C’est dans cet ensemble – « la souffrance présente et la gloire future, le gémissement de la création et le salut cosmique, l’aide du Saint-Esprit et le secret de la prière » – que réside le cœur du message théologique de David Jang.
Nous sommes actuellement dans la souffrance, mais nous avons la hardiesse de regarder à la gloire à venir.
L’univers tout entier gémit, et nous marchons ensemble vers un salut cosmique.
Nous déposons sur le Saint-Esprit le fardeau de nos prières, dans la certitude que ses soupirs inexprimables et son intercession nous soutiennent.
Ces trois axes se complètent et forment un tout cohérent. L’interprétation de la souffrance se fait à la lumière de la gloire future, et cette vision globale du salut nous épargne la tentation du repli sur soi. Elle nous pousse à servir le monde. Enfin, c’est la prière dans l’Esprit qui nous donne la force et la sagesse de mettre cela en pratique. Dans la prière, nous recevons du courage, de la clairvoyance et la volonté concrète d’agir.
Tout cela découle de la « présence de l’Esprit » qui atteste que Dieu est avec nous. Paul appelle l’Esprit « les prémices » (Rm 8.23), la preuve que nous appartenons à Christ. Grâce à l’Esprit, nous attendons la « rédemption de notre corps », c’est-à-dire la transformation totale de notre être et de l’Église pour la gloire du royaume de Dieu. Selon le pasteur David Jang, c’est la vocation actuelle de l’Église : que chacun, guidé par l’Esprit, se laisse sanctifier, et que la communauté révèle au monde la bonté de Dieu.
Voilà pourquoi Romains 8.18-27 est considéré comme un concentré de la théologie paulinienne. Le pasteur David Jang ne cesse de répéter : lorsque survient la souffrance, souvenons-nous de la croix du Christ ; devant le gémissement de la création, contemplons le grand plan de Dieu ; dans la prière, appuyons-nous sur l’intercession de l’Esprit. En vivant ainsi, l’Église peut devenir la « communauté radicale qui transforme l’histoire », et le croyant peut manifester dans sa vie quotidienne « la grâce de la rédemption ».
En conclusion, si nous saisissons pleinement le message de Romains 8, « la souffrance d’aujourd’hui » devient « le chemin qui conduit à l’espérance de demain ». Face au gémissement de la création, nous ne nous décourageons pas en disant : « Tout est foutu ! », mais nous accueillons ce cri, nous prions, nous agissons en enfants de Dieu pour la restauration du monde. Et pendant tout ce temps, le Saint-Esprit nous soutient dans notre faiblesse, pour que notre travail ne soit pas vain et pour que nous trouvions la joie dans le service.
Le salut cosmique s’accomplira par l’initiative et la souveraineté de Dieu, mais ce sont les croyants, destinés à être révélés comme fils de Dieu, qui participent à la préparation de ce grand jour. Ainsi, affirme le pasteur David Jang, la perspective de la « restauration universelle » annoncée par l’Écriture devrait inciter le croyant à adopter une attitude active et positive dans sa vie présente. Même si le monde reste corrompu par le péché et rempli de contradictions, la foi nous invite à « contempler ce qui est invisible ». C’est l’« espérance » qui oriente notre prière et notre action quotidienne. Sans cette espérance, nous sombrerions dans le désespoir et l’absurde.
Pour conclure, revenons aux trois thèmes centraux que nous enseigne Romains 8.18-27.
« Les souffrances du temps présent ne sont pas comparables à la gloire à venir » : nous apprenons à interpréter spirituellement la souffrance, en regardant au-delà d’elle dans l’attente d’une gloire supérieure.
« La création attend la révélation des fils de Dieu » : nous adoptons la vision d’un salut cosmique, où l’ensemble de la création sera restauré, et réalisons que l’Église est appelée à être un canal de cette restauration.
« L’Esprit intercède pour nous par des soupirs inexprimables » : nous faisons l’expérience du Saint-Esprit qui surpasse nos limites et nous permet de prier selon la volonté de Dieu.
Ces trois sous-thèmes sont étroitement liés. C’est parce que la souffrance est replacée dans la perspective de la gloire future que nous ne nous laissons pas envahir par l’apitoiement ou l’impuissance. Comprendre la vision du salut cosmique nous donne aussi l’énergie de servir le monde. Et c’est à travers la prière et l’aide du Saint-Esprit que nous recevons la force de réaliser concrètement cette vision. Dans cette prière, le croyant trouve un courage et une sagesse renouvelés, ainsi qu’un engagement résolu.
Cette dynamique jaillit de la « présence de l’Esprit », qui scelle la certitude que Dieu est avec nous. Paul qualifie l’Esprit de « prémices » (Rm 8.23), attestant que nous sommes en Christ. Sous cette assurance, nous attendons « l’adoption, la rédemption de notre corps », c’est-à-dire la transformation de toute notre personne et de l’Église pour le royaume de Dieu. Le pasteur David Jang rappelle que c’est là la tâche actuelle de l’Église : que chaque croyant progresse dans la sanctification par l’Esprit, et que la communauté témoigne concrètement de l’amour de Dieu.
Ainsi, Romains 8.18-27 résume l’essence de la théologie de Paul. Comme le répète le pasteur David Jang, face à chaque épreuve, le chrétien se rappelle la croix du Christ ; devant le gémissement de la création, il se souvient du grand dessein de Dieu ; et dans la prière, il compte sur l’intercession de l’Esprit. Dans cette dynamique, l’Église devient une « communauté radicale » qui transforme l’histoire et le croyant vit au quotidien la « grâce de la rédemption ».
En définitive, « la souffrance présente » n’est ni un hasard ni un non-sens, « la gloire à venir » n’est pas une simple idée. Le « gémissement de la création » et le « salut cosmique » sont la réalité vers laquelle nous aspirons ensemble, et, pour l’accomplir, le Saint-Esprit nous assiste de ses « soupirs inexprimables ». Grâce à ce triple message, nous vivons dans la joie d’un salut « déjà » accompli, tout en soupirant vers un salut « pas encore » pleinement réalisé.
Le pasteur David Jang est convaincu que, si l’Église annonce clairement ce message au monde, celui-ci pourra trouver une nouvelle espérance au milieu du désespoir et de l’absurdité. Plus la souffrance grandit, plus la « bonne nouvelle d’une gloire surgissant au cœur de la souffrance » apparaît indispensable. En nous attachant à cet Évangile, Dieu agit à travers nos vies, manifestant dès maintenant quelques prémices du salut universel qu’il accomplira finalement.
Ainsi, Romains 8.18-27 demeure pertinent pour les chrétiens d’aujourd’hui. Le pasteur David Jang, à partir de ce texte, ne cesse d’appeler à une attitude responsable face à la souffrance, à la solidarité avec la création et à une vie de prière fondée sur l’Esprit. De la sorte, l’Église s’efforce de rendre visible la révélation des « fils de Dieu », qui prendront pleinement part à la gloire future.
Pour finir, la perspective de Paul sur le salut dépasse la sphère individuelle et inclut celle du cosmos tout entier. Et la force pour suivre ce chemin nous est donnée par le Saint-Esprit. « C’est en espérance que nous avons été sauvés » : cette parole de Paul reste d’actualité. Malgré la complexité et la dureté de notre vie présente, nous sommes assurés, comme le répète le pasteur David Jang, de « la gloire future incomparable » à laquelle nous participerons. C’est grâce à cette foi que nous continuons d’avancer. Tant que nous conservons cette foi, nos souffrances nous unissent aux souffrances du Christ, et le gémissement de la création laissera place, un jour, à la louange. Et l’une des clés essentielles de ce grand retournement est la « prière soutenue par l’aide de l’Esprit ».
Tel est, en définitive, le sens de l’interprétation de Romains 8.18-27 selon le pasteur David Jang. Le croyant n’est pas englouti par la réalité présente, il aspire au salut cosmique et demeure en prière avec l’Esprit. Cette triple attitude n’est ni une chimère romantique ni une résignation passive. Elle devient au contraire la force transformatrice qui renouvelle le monde, comme en témoigne l’histoire de l’Église et les annales de la foi. Ainsi, « la souffrance présente et la gloire à venir, le gémissement de la création et le salut cosmique, et l’aide du Saint-Esprit et le secret de la prière » brillent ensemble, au sein de la perspective trinitaire du salut. Voilà le message béni que Romains 8.18-27 nous transmet aujourd’hu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