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바울의 사역과 디모데의 부르심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장면에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사명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았다. 요한복음 21장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뉜다. 첫 번째 단락은 선교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 단락은 목양에 관한 것이며, 세 번째 단락은 때, 곧 종말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세 주제를 따라, 주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남기신 심오한 당부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핵심은 혼돈 없이 우리의 맡은 바 사명을 다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다시금 자신이 누구이며 그들이 무슨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는지 깨닫게 해주셨다. 그 내용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우리는 부활의 주를 믿는 이들로서, 선교와 목양, 그리고 종말을 바라보는 가운데 분명한 사명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 말씀에 이어서, 교회에서는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지난 시간까지 마쳤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아름다운 데살로니가 교회에 주어진 종말론에 대한 깊은 가르침과 경고, 그리고 실제적인 목회적 권면이 담겨 있다. 이는 오늘 우리 교회에게도 유익한 교훈이 된다. 그 후 바울서신 중에서 목회서신이라고 불리는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로 이어지는데, 장재형목사는 이 부분에 주목하자고 강조했다. 목회서신은 바울이 목회를 했던 제자, 즉 디모데와 디도에게 목회에 관한 가이드를 준 편지들이다. 교회의 운영, 목양의 자세, 성도들을 돌보는 방법, 교회의 질서 등 여러 가지를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문서가 바로 이 목회서신들이다.
장재형목사는 신학사적으로 목회학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도 덧붙여 설명했다. 가톨릭교회(구교)에서 종교개혁(Reformation)이 일어나 개혁교회, 곧 개신교가 출범했다. 루터, 칼뱅(칼빈), 츠빙글리 등이 대표적인 종교개혁자들이다. 이후 개신교 정통주의(Protestant Orthodoxy)가 등장했고, 그에 대한 반발로 자유주의 신학(liberalism)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해체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를 보고 다시 프로테스탄티즘 정통주의로 돌아가자는 ‘신정통주의(Neo-Orthodoxy)’가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교회교의학』을 쓴 칼 바르트, 그리고 폴 틸리히, 에밀 브루너, 라인홀드 니버 등의 신학자들이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들 가운데 칼 바르트는 스위스 바젤에 있었다.
투르나이젠(Eduard Thurneysen, 1888-1974)이라는 신학자는 스위스 바젤 출신으로, 목회학을 정립하여 한 시대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는 바젤대학교에서 공부했고, 나중에는 베를린대학교에서도 가르쳤다. 그의 대표작인 『목회학』은 실제적인 목회현장 속에서 어떻게 목회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장재형목사는 젊은 시절, 투르나이젠의 책에 심취했으며, 유럽을 방문할 때면 바젤을 꼭 가보고 싶어 했던 추억을 회상했다.
목회학은 신학의 여러 분야 중 실천신학(practical theology)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신학을 공부하면, 1학년 때 기초를 배우고2학년 때 성서신학과 교회사(역사신학)를 배우며, 3학년 때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즉 교리를 배우고, 4학년 때 실천신학을 배운다. 설교학과 목회학 등은 실천신학 영역이다. 그리고 이 실천신학의 뿌리와 기초는 바로 성경이다. 그중에서도 바울의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에 교회 목양의 핵심과 뼈대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돌보는 이들에게 목회서신은 매우 중요한 지침서가 된다.
목회서신 다음으로 빌레몬서가 있는데, 바울이 개인적으로 한 사람(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이지만, 공동체가 함께 읽어야 할 소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바울이 기록한 13권의 서신(로마서부터 빌레몬서까지) 다음에는 히브리서가 이어지는데, 히브리서는 저자가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아 오랜 논쟁이 있었다. 바울서신과는 편지 형식도 다르고, 바울 특유의 첫인사와 끝인사 등 일반적인 서신 격식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히브리서 마지막에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히 13:23)라는 구절이 있어, 일부 학자들은 바울이 디모데와 밀접한 관계를 늘 강조했던 점을 들어 히브리서를 바울의 저작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렇듯 바울이 아꼈던 동역자 중 한 사람인 디모데에 대해, 바울서신 곳곳에서 그 이름이 나타난다. 바울의 목회자 그룹 중에서 실제로 목회를 맡았던 이들로서, 디모데와 디도가 특히 두드러진다. 물론 이름 없이 헌신한 무명용사들도 많았을 것이다. 로마서 16장에서만 봐도 바울의 수많은 동역자들이 언급된다. 바울은 팀 미션을 중요하게 여겼고, 여러 동역자와 함께 선교와 목양이라는 사명을 감당했다. 그 중에서도 디모데는 바울의 편지들에서 무려 6곳(고린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에 공동 저자의 이름으로 기록될 정도로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이 디모데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면, 그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에서 더베와 루스드라 지역을 다시 방문했을 때 얻은 동역자다(행 16:1-3). 모친은 믿는 유대인이었고 부친은 헬라이인이었는데, 외할머니 로이스도 신실한 신앙인이었다고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밝힌다. 디모데는 성품이 온유했고, 어려운 상황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교회 내부에서는 거짓 교사들이 교회를 흔들었고, 외부적으로는 핍박이 있는 상황에 처하다 보니 위장병까지 앓을 정도였다(딤전 5:23). 디모데후서 1장에서 “네 눈물을 생각하여”(딤후 1:4)라고 말할 만큼 눈물도 많은 인물이었다.
1차 선교여행 때 바울은 바나바, 마가와 함께 안디옥에서 출발해서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그중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하는 기적을 행했고,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격화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사람들의 잘못된 반응을 막았고 계속 복음을 전파했다. 그러자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쳐 죽이기에 이르렀는데, 시체를 성 밖에 버릴 만큼 끔찍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을 ‘일으키셨다’(행 14:19-20). 루스드라라는 지역 이름은 ‘양의 무리’란 뜻이지만, 그곳에서 바울은 죽을 만큼의 고난을 당했고, 다시 살아난 기적을 경험했다. 그리고 2차 선교여행에서 다시 그 땅을 찾았을 때, 거기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았다. 바울에게 루스드라는 피와 눈물이 서린 지역이었지만, 주께서 그 땅에서 디모데라는 귀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신 것이다.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2년간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다가 잠시 풀려났을 때(약 AD 63~65년경)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옥에서 나온 바울은 다시 선교여행을 떠났는데, 그 여정 중 그레데(크레타) 섬에 디도를 두었고, 에베소에는 디모데를 남겨두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목회했던 큰 공동체였다. 큰 부흥이 있던 교회였기에 더욱 중요했다. 바울은 서바나(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고(롬 15:28), 또 다른 지역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려 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 안에 거짓 교사들이 침투하여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기에, 디모데가 남아서 이를 바로잡아야 했다.
장재형목사는 디모데전서 본문을 읽어가며,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이 편지의 의미와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바울은 편지 서두에서 먼저 인사를 한다.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딤전 1:1).
여기서 ‘구주’라는 말은 헬라어로 ‘소테로스(σωτήρος, soteros)’이다. 당시 로마 황제에게만 붙이던 칭호였는데,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께 사용함으로써 황제가 아니라 하나님이야말로 온 세상의 참 구주이심을 선포한다. 또한 바울과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는 곧 ‘소망’이 되었다.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딤전 1:2).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자’라 부른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 또한 바울은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일반적인 바울서신 인사에서 “은혜와 평강”은 자주 나오지만 ‘긍휼’(자비)이 함께 들어간 것은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에 두드러진 특징이다. 바울은 1장 전체에서 죄인인 자기를 향해 부어주신 하나님의 자비를 깊이 묵상한다.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긴 이유는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힌다(딤전 1:3). 당시 에베소 교회에서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딤전 1:4)하는 자들이 있었다. 구약과 여러 전승에 기초해 신화나 족보 등을 과장하거나 잘못 해석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복음으로 나아가려는 방향을 흐트러뜨리는 이들이 있었다. 또 영지주의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교회 공동체를 변론과 논쟁으로 어지럽히는 무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회자는 ‘다른 교훈’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이 시대에도 세속주의(secularism)를 비롯하여 여러 이질적인 사상들이 교회 안으로 파고들어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려 한다. 그렇기에 목회자는 교회를 맡은 자로서, 복음을 굳건히 지키고 본질에 충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목양의 근본 사명 중 하나라는 것이다.
바울은 변론과 신화, 족보 등에만 집중하는 이들이 얼마나 헛된 말에 빠져 있는지 지적한다(딤전 1:6-7). 그러면서 율법 자체는 선한 것이지만(딤전 1:8), 율법은 죄를 죄로 알게 하여 복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가르친다(딤전 1:9-11). 결국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기에 충분하지만 구원을 주지는 못하기에, 복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몽학선생일 뿐이다(갈 3:24 참조).
그리고 바울은 여기서 다시금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딤전 1:11)이라고 자신이 받은 복음을 설명하며, 그 복음이 자기에게 맡겨진 것에 대한 감사로 이어진다. 곧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라고 고백하는데, 장재형목사는 이 부분을 특별히 강조했다. 바울은 직분을 맡게 된 것을 ‘감사’로 받아들였다. 자신에게 어떤 위치가 주어진 것을 무겁게만 여기거나 부담으로만 여긴 것이 아니라, 구원받을 자격조차 없었던 자가 ‘목회’라는 중대한 사역에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기쁨과 감사로 여겼던 것이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딤전 1:13)이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거스르고 교회를 파괴하는 데 앞장섰던 자인지 드러낸다. 바울은 허물 많고 연약한 자신이지만 주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용서와 구원을 주셨기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참회한다. 이런 바울의 진솔한 고백은 목회자에게나 성도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우리가 다 죄인임을 아는 것에서 목회가 시작된다”고 역설했다. 자신이 죄 사함을 받고 긍휼을 입은 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목회자는 교회 공동체를 사랑으로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표현처럼, 자신이 죄 사함과 회개의 눈물을 안 자만이 다른 이들의 죄와 상처를 품고 돌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 1:16).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였으나 긍휼을 입은 것은, 이후에 주를 믿어 영생을 얻게 될 모든 이들에게 표본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곧 복음은 자격 없고 허물 많은 사람에게까지 임하여, 그를 구원하고 사용하신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장재형목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딤전 1:18)라는 권면이 얼마나 실제적인 목회 현장 속에서 중요하며, 또 동시에 고통스럽고도 아름다운 싸움인지를 역설했다. 교회를 흔드는 ‘다른 교훈’들을 막아야 하고, 복음의 본질을 지켜야 하며, 성도들을 사랑으로 돌봐야 하고, 팀을 이루어 함께 울고 웃으며 사역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간혹 믿음이 파선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아픔도 감수해야 한다(딤전 1:19-20). 이것이 목회의 실제적 풍경이다.
바울은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딤전 1:17) 존귀와 영광을 돌리며 1장을 마무리한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 목회와 신앙의 궁극적 지향점이라고 했다. 결국 우리의 삶과 사역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며, 그 영광은 우리의 어떠함이 아닌 주님의 긍휼과 은혜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2. 긍휼로 세워지는 목회
이제, 장재형목사는 디모데전서를 통째로 관통하는 핵심 주제인 ‘목회’와 그 근간에 있는 ‘긍휼’에 대해 강조했다. 디모데전서 1장에서 바울은 우선 교회를 지켜야 하는 이유, 즉 교회 안에 퍼져 있는 거짓 교훈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밝힌 뒤에, 결국 목회의 동력은 하나님의 자비(긍휼)에서 나온다고 결론지었다. 그가 죄인 중에 괴수였으나 긍휼을 입은 것을 회상하며, 목회자는 자신이 받은 긍휼을 잊지 않고 간증함으로써 공동체를 돌봐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 곧 ‘사랑’을 이뤄내는 힘이라고 역설한다. 디모데전서 1장 5절에서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라”고 했는데, 교회에서의 모든 가르침과 경계의 최종 목적지는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이란, 우리가 주님에게서 받은 그 크신 긍휼을 깊이 깨달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이것이 목양의 본질이다.
목회자는 교회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교회를 어지럽히는 외부의 세속적 영향, 내부에서 일어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 쓸데없는 논쟁들, 심지어는 이름 없이 헌신하는 성도들의 고달픔까지도 살펴야 한다. 이를 담당하는 데에는 겸손과 눈물이 필요하다. 바울이 사도행전 20장 17~19절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를 섬겼다고 말한 것처럼, 장재형목사 역시 “목양은 눈물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디모데가 소심하고 눈물 많고, 심지어 위장병까지 앓을 정도였지만, 그를 목회의 현장에 두셨다는 사실이야말로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고전 1:27) 하나님의 역사다.
나아가 목회는 팀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점도 장재형목사는 함께 언급했다. 바울에게는 디모데와 디도 외에도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었다. 실라, 루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에바브라 등등, 너무나 많은 동역자들이 한마음으로 복음 전파와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헌신했다. 교회는 결코 개인의 독주가 되어선 안 된다.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며, 서로 짐을 나누어 지는 것이 교회가 가진 큰 힘이다.
또한 전도(선교)와 목양은 분리될 수 없는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주님이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직접 사명을 주셨을 때, 그 사명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8)는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이었다. 동시에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5)라는 목양 명령도 주셨다. 바울은 1차, 2차, 3차 선교여행을 통해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이 개척하거나 세운 교회를 결코 방치하지 않고 계속 돌아보았다. 다시 방문하거나 편지를 보냄으로써 그 교회들이 잘 서 가도록 목양했다. 복음이 전파되면 반드시 ‘사람’을 얻는데, 이 사람들을 지도하고 돌보는 것이 목양의 핵심이다.
목양은 곧 사랑이다. 사랑 없이 목양이 유지될 수 없다. 이 사랑은 본문에서 말하듯,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부터 나는 사랑”(딤전 1:5)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사랑은 우리가 먼저 수고해서 얻어낸 결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 많은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를 깨달음으로써 시작된다. 그래서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까지 말하며, 늘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가를 회상했다. 그 놀라운 구원과 사랑을 아는 사람이기에, 바울은 누구보다 뜨겁게 복음을 전했고, 동시에 교회가 흩어지거나 무너질까 늘 전전긍긍하며 눈물로 목양했다.
바울서신 중 특별히 디모데전후서, 디도서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렇게 구체적인 목양 지침과 바울의 목회철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디모데전후서를 비롯해 디도서를 읽다 보면, 교회 리더십의 자질, 교인들을 대하는 태도, 예배와 기도의 우선순위, 거짓 교사에 대응하는 자세, 교회의 질서 등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오늘날 장재형목사와 같은 현대의 목회자들이 어떻게 사역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기본 뼈대가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내용을 디모데전서 1장의 말씀과 연결지어, 교회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네 눈물을 생각하여”(딤후 1:4)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목회자의 눈물이 결코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성도들을 지키기 위한 거룩한 헌신의 표징임을 거듭 상기시켰다. 바울은 끝까지 디모데가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이 먼저 받았던 긍휼을 떠올리며 서로 격려하길 원했다.
목회의 가장 본질적 동력은 은혜와 긍휼에 있다. 이 은혜와 긍휼을 받은 자는 감사함으로 교회를 돌보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라고 말했다. 직분은 스스로 쟁취하거나 업적을 쌓아 받은 지위가 아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직분을 맡게 되었을 때, 그것을 영광과 감사로 여기느냐, 혹은 짐으로 여기느냐가 목회의 기초 태도를 결정한다. 바울은 성도들을 핍박하던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복음 전파자로 세움을 받았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매일 감사했고, 그 감사가 사역의 힘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 공동체에 적대감을 품거나 교회를 흔드는 이들이 발생하더라도, 목회자는 끝까지 그들을 바로 잡고, 불가능할 경우엔 교회의 거룩을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1장 마지막(딤전 1:19-20)에 언급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같은 이들이 바로 믿음에서 파선한 자들의 예다. 바울은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함이라”고 표현했다. 사랑으로 품으려 했지만, 끝까지 교회를 훼방하고 복음의 본질을 뒤흔드는 자들은 결국 교회 밖으로 내쫓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단호함 또한 목회 현장에서 필요하다.
결국 목회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장재형목사는 수없이 설교와 강의 속에서 “목회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돌보는 소중한 일이자, 동시에 눈물 없이 할 수 없는 사역”이라고 말해왔다. 바울과 디모데가 보여준, 그리고 바울과 디도가 보여준 관계 속에서도 우리는 목회의 실제를 엿볼 수 있다.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가르침은 결국 논쟁을 낳고 교회를 분열시킨다. 그러나 사랑에 뿌리를 두고, 은혜와 긍휼을 힘입어 전해지는 말씀은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고 공동체를 바로 세운다.
오늘날도 교회는 여러 도전 앞에 놓여 있다. 세속주의, 다원주의, 물질주의, 인본주의 등이 복음의 진리를 무색하게 만들려 한다. 또 교회 내부에서는 신학적 오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거짓된 움직임, 성도들 간의 분열, 코로나 이후의 침체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2천 년 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 결국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부터 시작되는 사랑이다. 거기서 시작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딤전 1:18).
부활하신 주님은 요한복음 21장에서 “내 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셨고, 동시에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는 지상명령을 주셨다. 이 두 사명은 결코 분리되지 않으며, 그 완성을 위해 사도 바울과 수많은 동역자들이 눈물과 헌신으로 선교와 목양을 병행했다. 교회를 맡은 자는, 자신이 받은 긍휼을 깊이 기억하며, 양 떼를 사랑으로 돌보고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오늘도 한국 교회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지역에서 목회자와 성도들을 가르치며, 바로 이 두 가지 사명(선교와 목양)에 대해 성경적 기초 위에서 올바른 자세를 취할 것을 당부해 왔다. 디모데전서를 펼쳐 읽을 때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죄인 중 괴수인 우리에게 임한 ‘긍휼’을 늘 기억하며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감사가 헛된 말이나 논쟁, 족보에 매이는 것을 뛰어넘어, 교회를 세우고 혼란을 잠재우며, 생명을 살리는 참사랑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1장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교회를 지키고 복음을 변증하되, 너 자신도 죄인 중 괴수였으나 긍휼을 입은 자임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목회는 화려한 말로 치장된 것이 아니다. 신화나 족보, 복잡한 논리에 치우친 것도 아니다. 오직 주의 은혜와 긍휼에서 나오는 사랑이 핵심 동력이다. 그러므로 현대를 사는 교회 지도자나 성도들도, 목회의 기본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새기고, 교회 공동체를 논쟁과 변론의 장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의 장으로 세워 나가야 한다.
이 과업이 쉽지 않은 이유는, 에베소 교회 같은 큰 교회가 흔들리듯이 오늘의 교회도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처럼, 디모데가 연약한 몸으로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붙드는 자는 반드시 이길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힘으로 교회를 바로 세우고, 구주이신 하나님과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재형목사가 늘 강조해 온 ‘목회와 선교, 그리고 종말을 바라보는 온전한 자세’의 실제적인 내용이다.
이렇듯 요한복음 21장과 바울이 디모데에게 준 교훈이 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과, 바울이 교회를 지켜야 함을 강조하며 보여준 자기 고백은 모두가 목회학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다. 교회는 사랑으로 양 떼를 돌보고, 동시에 미혹의 가르침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며, 주님 다시 오실 종말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장재형목사가 전해주는 메시지대로 ‘하나님의 자비’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죄에서 건짐받은 우리가 받은 긍휼이야말로, 선교와 목회를 지탱하는 영원한 동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