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과 하나님 나라, 장재형목사

장재형 목사는 주기도문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를 중심축으로 삼아,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인간의 일상적 필요, 그리고 영성과 사랑의 실천을 연결한다. 익숙한 한 문장이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과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열쇠임을 그는 강조한다.

이 기도는 단순한 생계 청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흐름 속에서 경제적 필요와 타자를 향한 사랑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드리는 깊은 신학적 고백이다. 그의 결론은 명확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소유(having) 중심이 아니라 사랑(loving)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주기도문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로 시작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목적을 규정한다. 이 땅의 삶은 하늘나라라는 본체의 그림자이자 그 완성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그런데 이 장엄한 선언 바로 뒤에 “일용할 양식”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놓인다. 성경은 인간의 생계 필요를 외면하지 않지만, 그 필요가 절대 가치가 되도록도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서 주기도문에만 등장하는 단어 ‘에피우시오스(epiousios)’가 중요해지는데, 이는 탐욕적 축적이 아니라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갈 만큼의 충분함”을 의미한다.

누가복음은 하나님 나라–일용할 양식–용서라는 구조 속에 이 기도의 깊이를 드러낸다. 특히 “밤중에 친구에게 떡 세 덩이를 구하는 사람”의 비유에서, 장재형 목사는 “세 덩이”가 자기 몫을 넘어 타자를 위한 여분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일용할 양식은 “내 최소한의 생존”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넉넉함”이다. 밤중의 강청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배고픈 손님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 행동이며, 예수께서는 이 사랑의 집요함을 긍정하신다.

이때 having mode와 loving mode의 대비가 선명해진다. 소유 중심의 삶은 결핍을 전제하지만, 사랑 중심의 삶은 나눔을 통해 풍요를 드러낸다. 성령은 인간의 욕망 구조를 변혁해, 나만을 위한 양식이 아니라 “세 덩이의 빵”을 구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분이다. 그래서 기도의 궁극적 선물은 성령이며,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타자를 위해 담대히 구하게 만든다.

결국 “일용할 양식”의 기도는 물질을 포함해 사랑, 용서, 인내 같은 보이지 않는 자원 전체를 포괄하는 요청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파송된 존재로서 우리가 오늘 살아갈 힘과, 이웃에게 나누기 위한 여백을 구하는 기도이며, having에서 loving으로의 회심을 이끌어 낸다. 그리고 이 기도의 핵심은 “나만 위한 생존”에서 “누군가를 살리는 세 덩이의 빵”을 향한 영적 전환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에는 하나님 나라, 역사, 경제, 영성, 용서, 성령, 그리고 사랑 중심의 존재 방식이 한데 응축되어 있다. 이 기도를 삶 전체로 실천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앞당기는 사랑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아포카라도키아

davidj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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