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성도의 삶 – 장재형목사

1.구원 경륜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구원 이해의 핵심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적 경륜에서 시작된다. 창세 전에 이미 예정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의도가 구약 시대부터 신약 시대, 그리고 오늘날 교회 시대를 관통하여 성취되고 있다는 통찰은, 단순히 교리적으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인간의 죄로 인해 깨어지고 파괴된 세상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움직임은 우연이나 돌발적 결정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품어오신 계획의 표출이다. 이 구원 경륜을 이해하면, 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사건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의 가르침에 따르면, 구약의 율법과 제사 제도,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밑그림과 예표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이미 하나님은 열방을 복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고, 율법을 통해서는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셨으며, 선지자들의 예언은 메시아가 오실 것을 쉼 없이 외쳤다. 결국 이 모든 예표와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본격적으로 실현되었다는 점에 장재형목사는 주목한다. 예수님이 단순히 유대교 내의 한 선지자나 교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구원의 길을 여신 참된 메시야라는 사실은, 구원의 경륜이 인간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표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가리켜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었던 구원 계획이 시간과 공간 안으로 들어온 전환점”이라고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 자체가 기적 중의 기적이며, 이는 인간 이성으로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렇지만 이 성육신이 없이는 구원이 실제로 가능한가를 생각해 보면, 성육신이야말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치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 죄를 지었으므로, 죄값을 치르는 당사자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그 형벌을 이겨내고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예수님이 곧 사람이자 하나님이신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장재형목사가 끊임없이 설파하는 복음 이해의 토대다.

그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 전반, 곧 병자 치유, 말씀 선포, 제자 훈련, 그리고 십자가의 길까지 모든 과정이 “구원 경륜의 구체화”라고 본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이나 가르침은 단순한 종교적 카리스마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시각적으로, 체험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모든 기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죄와 질병, 죽음의 권세를 초월한다는 선언이며,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사랑과 용서는 메시아적 왕권의 일면을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이 사역의 절정은 십자가다. 장재형목사는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완성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반드시 누군가가 대신 죽어야 죄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의 제사 제도는 짐승을 잡아 피 흘림으로 죄를 덮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흠 없는 대속 제물로 자기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영원히 청산하신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십자가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해설한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충돌하는 듯 보이지만, 그 두 가지 속성이 십자가 안에서 완벽히 조화된다. 죄에 대한 대가가 치러져야 하는 공의가 있고, 동시에 죄인을 살리려는 사랑이 있다. 예수님의 희생은 공의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최대치로 표현한다. 여기서 신자는 “아무런 공로 없이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사실에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장재형목사는 이 부분을 매우 강조하면서,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 먼저 이 십자가의 사랑과 공의를 선명히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지 않고 윤리나 신학 이론을 앞세운다면, 복음의 핵심이 흐려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모든 대속적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거한다. 만약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그걸로 끝났다면,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극적 순교사로 기억될 뿐이다. 그러나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가 무너졌음이 확정되었다. 이 부활 사건은 구원의 완성을 선언하며, 동시에 신자들에게도 “부활 생명”에 참여하는 소망을 준다. 장재형목사에 따르면 부활은 “신앙의 분기점”이다. 부활이 사실이기에 기독교 신앙은 현실적 힘을 얻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기에, 그분을 믿는 자들도 죽음 뒤에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고, 지금 이 순간에도 죄의 권세에서 자유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사역은 장재형목사의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현실 세계 안에서 전개된 사건”이다. 성육신, 공생애, 십자가, 부활, 승천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구약 시대부터 예표된 메시아적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선언한다. 이 구원의 핵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신자는 죄 사함과 자녀 됨의 권세를 얻는다. 그러나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구원이 멈추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구원은 단회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과정이다. 의롭다 함을 받은 다음에는 성화와 제자도의 길이 열리며, 그것을 실제로 가능케 하는 분이 바로 성령이다. 예수님의 땅위 사역이 구원을 “열어 놓은” 것이라면, 성령의 시대는 그 구원을 “체화”하는 국면이다. 이 부분이 계속되는 논의에서 핵심이 된다.

2.성령 시대와 성도의 성장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이후, 교회 역사에 나타난 가장 큰 전환점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단지 교회 출발의 한 장면이나 사도들의 체험으로 축소해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구원 경륜이 예수 안에서 정점에 달했다면, 오순절을 기점으로 그 구원이 널리 확산되고 깊이 있게 적용되는 시기가 열렸다고 본다. 예수가 죄 문제를 해결하셨고 죽음을 이기셨다면, 이제 그 구원의 열매가 모든 믿는 자에게 실제가 되어야 하는데, 그 중심에 성령의 사역이 위치한다.

성령 시대에서 핵심은 “보혜사”라는 명칭에 담긴 의미다.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께서는 성령을 보혜사, 즉 다른 말로는 “도우시는 분, 변호자, 위로자” 등으로 소개하신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성령은 단지 위로하고 돕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과 신자의 내면을 책망하고 각성시키며, 신자를 성화의 길로 이끌어가는 분이라고 강조한다. 예수님이 이미 죄를 짊어지셨으므로, 성령은 이제 그 죄의 본질을 드러내고 예수의 의를 믿도록 하는 데 적극 관여한다. 세상 임금인 사탄은 이미 패배했으므로, 성령은 믿는 이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확신케 하여 담대히 살아가도록 돕는다.

장재형목사는 “성령 내주” 개념을 자주 언급한다. 예수를 구조로 영접하면, 성령께서 그 심령 안에 거하심으로써 신자가 더 이상 고아처럼 방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자 안에 있는 성령이 말씀을 깨닫게 하고, 죄를 미워하게 하며, 거룩을 사모하게 만든다. 이것은 단지 교리적 차원이 아니라, 실제 체험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장재형목사는 오래된 선교 경험을 통해, 복음을 처음 듣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성령의 내주를 경험하는 과정을 여러 번 지켜봤다고 말한다. 그때 사람들은 이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삶을 재정비하고, 기쁨과 확신, 자유를 누리게 된다. 이 변화는 곧 성령의 능력을 반영한다.

성령이 단지 내면적 은혜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신자를 공동체 생활로 이끄는 점도 장재형목사는 주목한다.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오순절 이후 사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입어 담대히 복음을 전했고, 교회는 사랑과 나눔으로 가득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는 성령이 공동체적 성격을 띠신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신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교회는 단지 개인 경건의 총합이 아니라, 살아 있고 호흡하는 신앙 공동체가 된다. 교회는 성령의 역동을 통해 한 몸을 이루고, 다양한 은사들이 발현되며, 상호 보완적으로 사역을 수행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교회 공동체가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섬기는 데 있어 필수적 통로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성화”다. 구원은 단회적 칭의(의롭다 하심)와 그 이후 평생에 걸친 성화로 구성되는데, 성화는 신자가 하나님의 형상을 조금씩 회복해 가는 과정이다. 장재형목사는 성화가 개인 노력만으로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죄성과 연약함을 지닌 존재이므로, 성령이 도와주지 않으면 결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성령은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지적하고, 그 죄를 내면에서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공급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말씀 묵상과 기도의 자리로 초청하고, 사랑과 섬김을 실천할 수 있게 부추긴다.

여기서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장)나 은사(고린도전서 12장 등) 개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같은 덕목들이 신자의 성품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고, 은사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특정 신자들에게 주시는 다양한 능력이다. 장재형목사는 성령의 열매와 은사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은사가 충만하더라도 열매가 없다면, 그 은사는 교회 내에서 분쟁을 일으키거나 남용될 위험이 있다. 반면 열매만 강조하고 은사를 완전히 무시한다면, 교회가 가진 영적 역동성이 약해질 수 있다. 성령 안에서 둘 다 고루 작용할 때, 교회 공동체와 신자 개인의 삶이 풍성해진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성령 시대의 또 다른 열매는 “선교와 전도의 동력”이다. 예수님의 지상명령(마태복음 28장)에 따라, 교회는 복음을 만민에게 전해야 할 책무가 있다. 문제는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선교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장재형목사는 전도가 영적 전쟁의 영역이기도 하므로, 성령의 능력 없이는 지속적 열매를 거두기 어렵다고 말한다. 성령이 신자들에게 담대함과 지혜를 주어, 사람들의 영혼을 향해 복음을 선포하게 만들고, 필요한 언어와 문화적 장벽도 넘게 하신다. 이는 초대교회가 로마 제국 전역으로 복음을 확장하던 과정에서도 분명히 나타난 패턴이다. 따라서 교회가 성령의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선교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고, 신자도 성령의 음성을 좇아 자기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성도들이 성령을 소멸하거나 근심케 하면 안 된다”는 성경 구절을 자주 인용한다. 성령은 영이시지만, 실제 인격이기도 하므로, 공동체나 개인이 불순종과 죄로 가득 차면 성령의 활동이 제약된다. 반면 성령께 자발적으로 순종하고 마음 문을 열면, 더 큰 은혜가 임하고 변화가 일어난다. 결국 성령 시대의 신앙생활이란, 구원받은 성도가 날마다 성령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힘으로 죄를 이기며 선을 행하고, 예수를 높이며 사는 것이다. 교회도 이 원리에 따라 움직일 때, 세상에 강력한 복음 증거자로 설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 과정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열린 구원을, 성령을 통해 매일 실제화하는 여정”이라고 표현한다.

이렇듯 성령 시대는 신자들에게 큰 특권이자 책임이다. 특권이라 함은, 성령께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과 동행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구현할 능력을 주신다는 점이다. 책임이라 함은,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거나 죄에 굴복하지 말고, 거룩을 추구하며 선교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복음이 단순히 과거 예수님의 사건만을 기념하는 종교가 되지 않도록, 교회가 성령 안에서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생명력이 달려 있고, 신자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3. 종말론적 희망과 교회 공동체

장재형목사의 신학적 가르침은 구원 경륜과 성령 시대를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최종 목표는 역사와 우주의 완성 지점, 곧 종말에 대한 희망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그는 구원이 개인의 죄 사함에서 시작해 성령 안에서 성화로 이어진다면, 결국 모든 역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하게 될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종말론적 희망은 신자와 교회가 세상을 대하는 관점을 바꾸어놓는다.

요한복음 16장 마지막에서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었다”고 선포하신 대목은, 이미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이 패배했음을 알려주는 대표적 말씀이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에 큰 비중을 두며, 신자들이 고난과 역경을 겪을 때, 단지 위로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 승리의 확신을 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교회와 성도에게 전가되는 것은 미래의 어떤 막연한 일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서 확보된 사실이다. 다만 우리 시각에서는 아직 세상에 죄와 불의가 남아 있고, 사탄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최종적인 완전한 통치가 실현된다.

장재형목사는 이 종말론적 희망이 교회의 사명에도 직결된다고 말한다. 교회는 단지 과거 복음을 보관하는 ‘역사 박물관’이 아니라, 미래 하나님 나라를 예고하고 보여주는 ‘시연장’ 역할을 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정의가 실천될 때, 사람들은 잠시나마 하나님의 미래 통치를 맛보게 된다. 교회가 과오를 범하고 인간적 문제가 드러날 때도 많지만, 본질적으로는 성령께서 교회를 통해 세상에 희망을 전하신다는 게 장재형목사의 신학적 시각이다. 즉, 교회가 이 땅의 현실에 굴복해 타협만 해서는 안 되며, 종말론적 시각을 견지하여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종말론적 희망은 또한 신자 개인에게 살아가는 용기와 견인불발의 태도를 제공한다. 세상의 가치가 악해 보이고, 불의가 번성하며, 여러 고난이 덮쳐와도, 최후의 결말은 하나님 편에 있다. 이것을 믿을 때, 신자는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하게 선을 행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역사의 주도권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확신이라고 표현한다. 눈에 보기에 대단히 혼란스럽고 승산 없어 보이는 상황이라도, 주님이 결국 승리를 선포하실 날이 온다. 교회는 이 사실을 설교와 교육, 제자훈련을 통해 신자들에게 각인시키면서, 사회적 봉사와 선교, 정의 실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비유 중 하나는 “교회는 하나님의 대사관”이라는 것이다. 대사관이란, 어떤 나라가 외국에 세우는 자치 구역으로, 그곳은 법적으로 본국의 일부처럼 간주된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이 세상이라는 타국에 설치된 하나님 나라의 공식 대표부이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미리 맛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예고한다. 종말이 올 때 이 대사관이 본국으로 확장되어 갈 것이지만, 그전까지 대사관은 타국에 존재하면서도 본국의 가치를 지키고 전파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개념을 통해,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면서도 세상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한다.

구체적인 실천 방향으로, 그는 두 가지 축을 제안한다. 하나는 복음 전파, 다른 하나는 사랑과 정의 실천이다. 복음 전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세상에 선포하는 일이며, 사랑과 정의 실천은 교회가 하나님의 통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통로가 된다. 어떤 교회들은 복음을 영혼구원으로만 국한시켜, 사회적 책임을 게을리할 수 있다. 반면, 사회 참여에만 치우쳐 복음 선포의 열정을 잃어버리면, 교회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종말론적 균형감각을 갖추면, 이 두 가지가 조화롭게 작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 나라는 영혼을 살리며, 또한 세상에 사랑과 정의의 흔적을 남긴다.

종말론적 희망은 개인의 죽음과 부활 희망과도 연결된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 신자도 부활에 참여할 것이라는 믿음은, 신자의 삶 전체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인식이 생기면, 삶의 목적과 가치가 세속적 성공에 매이지 않고 영원한 관점으로 확장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성도는 이 땅에서 낯선 순례자이며, 궁극적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이 말은 세상일을 소홀히 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섬기고, 타인에게 복음을 전하며, 개인 영혼의 성화에 매진하라는 동기가 된다.

결과적으로 종말론적 희망을 가진 교회 공동체는 좌절이나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설사 세속적인 기준으로 볼 때 교회가 미약해 보이거나, 신자 개인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역사의 최후 심판과 하나님 나라 완성을 향한 기대가 있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 제시할 수 있는 독보적 가치라고 말한다. 세상은 늘 빠른 성과, 눈에 보이는 성공을 추구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이 최종 심판주가 되시고, 우리의 보상은 하늘에 쌓인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움직일 수 있다. 결국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서 이 종말론적 비전을 공유하면, 교회는 서로 격려하고 세상에 희망을 전달하는 사명을 완수하게 된다.

이러한 종말론적 이해는 구원의 전체적 구조에서 마침표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 우리 삶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이끄는 지속적 모티브가 된다. 구약에서 시작된 메시아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로 이어졌고, 성령 시대를 통해 교회와 성도가 그 열매를 맺으며, 마지막 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거대한 내러티브를 한 덩어리로 제시함으로써, 신자들이 교회를 일상적 의무감으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주적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종말론적 희망은 교회와 성도의 정체성을 현저히 높이고, 삶의 방향을 미래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세상의 끝이 곧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가 육체적 생을 마감하거나, 역사의 종말이 올 때, 그 끝은 곧 영원한 통치가 전면화되는 순간이 된다. 그러므로 신자가 절망하거나 체념할 이유는 전혀 없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문제들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결국 선용될 것이며, 교회는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로서 영원 속에서 더욱 빛날 것이다. 이것이 장재형목사가 일관되게 제시하는 종말론적 믿음의 핵심이다.

장재형목사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은 단순히 과거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고 부활하셨다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사건이 시작점이라면, 성령 시대는 구원이 실제 삶에 적용되는 과정이며, 종말론적 희망은 온 우주와 역사의 미래가 어떠한 결말로 수렴되는지를 보여주는 종합적 전망이다. 교회는 이 전체적 구도 속에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며,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해 나간다.

그의 신학적 통찰은 결국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 속에 신자들의 자리를 찾아주려는 시도다. 구원의 드라마가 창세 전부터 시작되어 종말에 완성된다면, 우리는 그 이야기에 필요한 반드시 필요한 배역을 맡은 존재들이다. 성부의 계획, 성자의 성육신과 구속, 성령의 내주와 성화, 그리고 종말론적 희망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면, 복음은 어느 한 지점의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모든 존재를 바꾸어 놓는다. 장재형목사의 강조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복음은 한없이 단순하지만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고, 신학적 지식이 풍부해지는 것만큼이나 실제적 순종과 체험이 필수적이기에, 교회가 그 방향으로 성도를 안내해야 한다.

결국 이 세 가지로 분류되는 신학적 골격은, 구원 경륜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성령 시대와 성도의 성장, 그리고 종말론적 희망과 교회 공동체라는 큰 틀 안에서 완결성을 갖는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열려진 구원은 성령을 통해 신자 개개인과 교회를 거룩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함으로써 역사의 종착점에 하나님의 승리를 드러낸다. 이런 맥락을 붙들 때, 신자들은 오늘의 삶을 단순히 근시안적으로 해석하거나 세속적 기준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계속 이어 나가는 자로서 살게 된다. 장재형목사가 제시하는 통전적이고 구속사적인 시각은 이 시대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방향타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내용을 하나로 묶어보면, 장재형목사는 한국 교회 현장에서 오랜 사역 경험을 바탕으로, 복음의 본질을 흐리지 않고 직설적이며 간결하게 제시하려고 애쓴다. 복잡한 신학 체계나 지엽적 해설 때문에 정작 구원의 단순성이 가려지는 것을 경계한다. 동시에 복음이 단순하다고 해서 얄팍하거나 피상적인 것은 결코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성육신, 십자가, 부활, 성령 강림, 종말의 완성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깊이 파고들면 들어갈수록, 인간적 이해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든 이 복음을 듣고 진지하게 응답한다면,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받아들이고 거듭나며, 종말론적 희망 속에서 현재를 새롭게 해석하게 된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이런 복음의 흐름을 명확히 가르치고, 신자들이 직접 체험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전도와 선교의 동력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 복음의 힘을 맛본 신자는 그것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고, 타인에게도 그 생명력을 나누고자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며, 종말에 이르러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완성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가리켜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구속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라고 자주 설명한다. 우리의 인생은 그 이야기 속에서 각자 맡은 소임을 감당하며,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된다.

이처럼 장재형목사를 핵심 키워드로, 구원 경륜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성령 시대와 성도의 성장, 종말론적 희망과 교회 공동체라는 세 가지 소주제 안에서 다루는 모든 내용은, 궁극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인간 역사와 우리의 삶 속에 펼쳐지는지를 하나의 큰 그림으로 제시한다. 구원은 역사적 사실이자, 신자 각인의 현재적 체험이며, 미래적 완성이라는 삼중적 의미를 갖는다. 복음의 본질은 너무나 단순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심오한지 아는 이들은 날마다 그 진리를 붙들고 성령 안에서 성장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종말론적 시선으로 세상을 섬기게 된다. 이로써 교회는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되며, 결국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종말에 이르러 찬란한 완성에 도달할 것을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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